2007. 7. 24. 00:21ㆍ☎사람사는이야기방☎
추억의 여름밤 풍경
산돌배 / 조성구
앞마당엔 아버지가 금이 간 시루(오지그릇) 밑에 벽돌을 괴이고,
마른풀에 불 붙여 활활 타오르게 하고, 그 위에 쑥대를 올려 연기를 피어 낸다.
어릴적 모깃불 광경이다.
쾌한 쑥 내음이 채워지는 마당 가운데 들마루가 있고 저녁상이 올려지는데,
그 귀한 암닭 한마리에 아끼던 찹쌀을 넣고,
집 식구들 먹기에 모자르지 않도록 멀국 될 물을 충분히 붓고 삶는다.
막 꺼낸 고기를 찬 물 번갈아 손적셔 가며 찢는 어무니 손 길이 바쁘고,
누이와 큰 형수는 채반상 위에 간장이며 푸성귀 반찬을 올려 챙긴다.
먼저 다리쪽을 가려 노 할머니 진지상에 올리면,
할머니는 수저를 들었다 놓았다 하시며 식구들 눈치 보시다,
이내 넙죽 아버지 그릇으로 이전시킨다.
" 아이구 엄니 잡수시지유 -"
" 아녀, 아녀 - 농사 짓느라 땀 흘리고 얼매나 곯았것냐 - 먹어 아범 "
닭 한 마리라야 얼마나 될까?
요즘 것 들, 페리카나니, 삼계탕이니 하며 걸핏하면 닭 한마리 쉽게 먹는 시절인데.
이 얘기 얼마나 이해 될까만,
이렇게 식구 수 대로 둘러앉아 기르던 닭 잡아 보신(?)하는 날이 그리 흔한게 아니었다.
하나 둘, 숫갈 놓으면 금방 떠 온 샘물을 한 사발씩 들이키고 바람 좀 쐴까?
신발 찾으려는데,
<수박들 좀 먹거라>
엄니가 오늘 밭에서 따온 짱구수박 덩이를 내온다.
서릿발처럼 서린 수박이 이가 시리도록 시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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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 할 일, 모자라는 농약 얘기, 소 여물얘기 두런두런 밤은 깊어가는데...
모깃불이 다 탓는지 연기가 쉬원찮아지면, 이내 모기들의 공략이 시작된다.
<탁! 탁!>
손에 든 부채로 어깨며, 정갱이를 내리쳐보지만 어디 잠시뿐-
<아이구 어무니, 모기 뜯는데 들어가 주무시지유->
< 엉, 그래 그래 오냐 >
어무니 와 큰형수 안방에 노할머니 모기장 펼쳐 드리고
안에 모기 들어 갈세라 침구넣고 펴는 솜씨가 재 빠르다.
다음엔 마루에 아버지 어무니 모기장 치고 건너방엔 형수 내외 모기장,
나머지는 들무에서 자던 사랑채에 가서 자던 알아서 할 일이다.
<아가 큰 애(손녀) 오줌 뉘이고 재우거라. 수박 먹어 오줌 쌀 텐데 ->
노 할머니가 손주 며느리를 챙기는 주무시기전 일상 말씀이다.
그래도 어머니가 안되었는지 살며시 막내인 나를 부른다.
<돌배야-모기따면 일루 들어와아- >
<괜찮어유우- >
들마루에 누워 하늘을 본다.
은하수가 아직은 왼켠에 있어서, 추석이 될라면 달 남짓 거리다.
누워서 은하수가 얼굴 한 가운데 오면 대개 추석이니 ....
이따금 날아 다니는 개똥 벌래와, 철 빠르게 귀뚜라미 소리인가 싶더니
그냥 풀 벌래소리다.
< 찌르르 - 찌르르 - 쿨 쿨- 음냐 음냐! 찌르르->
그렇게 여름밤은 깊어만 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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