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단산 약산에 올라 임진강건너 북한땅 사진에 담아오다 (사진)[제34호]
2006. 3. 5. 11:12ㆍ☎열린사진&겔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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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단산 약산에 올라 임진강건너 북한땅 사진에 담아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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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4월 25일 오늘은 내가 활동하고있는 산악회에서 전북고창 선운산 으로 산행을 가는날이다 그런데 나는 부득이 나의 초등학교 모교 후배가 자유로 오두산 전망대 통일동산 인근에 "一松亭"이라는 큰 음식점을 개업을 하여 먼저 그곳에 참석하여 내가 직접휘호를한 서각 현판글[一松亭]을 달아주고 또 한곳 사돈댁 고희연에 참석을 하여야 한다 마음은 선운산을 가야하는데 그렇치 못하고 애경사 참석을 하려하니 마음이 영 찝찝함을 금치못한다 두곳의 행사 모두 정오 12시이다보니 어차피 차를 몰고 길을 나서야할 입장에서 다소 시간적인 여유가 있다 그래서 집에서 10 정각에 출발을 하여 자유로를 달려 오두산 통일전망대가있는 주차장에 인근에 도착을 하니 11시가 되고있다 두곳의 행사시간까지는 아직 한시간여가 시간이 남어있다 가만히 생각을 하여보니 행사장엔 약간 늦더라도 일단은 산행을 한번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금단사 입구에 가서 고향친구에게 확인을 하니 약산 1봉과 2봉을 산행을 하는데 왕복 보통사람들은 2시간이면 충분한 여유를 가지고 한다는 이야기를 한다 순간적으로 그렇다면 나라면 아마 잘하면 1시간 20여분이면 충분할것 같다는 생각이들어 나는 차를 금단사 사찰까지 몰고올라가 주차장에 세워놓고 서둘러 배낭을 꺼낸다 나의 차에는 언제나 배낭이 산행준비를 가춘 상태로 싫려있기때문에 언제나 맘만 먹으면 산행을 할 수 가있다 때문에 나의 산행길은 대부분 자투리 시간을 때우는 경우들이 많다 하지만 남들처럼 늘어지게 하루를 비록 산행을 다 하지는 못하드라도 일단 이렇게라도 산해을 하고나면 그 느끼는 기분은 아마 모르는 사람들은 잘 이해를 할 수 가 없을 것이다 이렇게 시작된 산행길은 이곳 오두산 통일 전망대 개발계획에 의겨 내가 오르고있는 산까지도 모두 밀어내어 통일관련 시설을 이곳에 건설하려 하였으나 조계종측의 신도들과 스님들의 반대로 무산되어 그 좋던 아름다운 산이 일부 뻘겋게 파혜쳐저 보기흉한 흉물스런 모습으로 들머리길이 되어있어 처음 이곳을 오르는 사람들은 실마을 하기가 쉽다 그러나 이곳 검단산과 약산은 높이가 해발 300여미터의 낮은 산인데다 이곳 인근에는 높은 산들이 없어서 산은 비록 낮지만 정상에 오르면 날씨가 좋은날은 멀리는 북한의 송악산과 무속인들이 신봉하는 덕물산이 보이며 북한산 삼각산이 보이고 남산타워와 63빌딩까지 바라보이고 강화의 마니산과 서해바다에서 갈라지는 임진강과 한강의 지류를 코앞에서 볼 수 가있어서 확트인 전망이 아름답기로 소문이나있다 법화전의 모습 사찰의 건물이라고는 오직 이 법화사 하나만 쓸쓸하게 남어있고 옛날에 있던 부대건물들은 모두 낡아서인지 헐리워져있고 새로 증축을 계획하고있는지 주변에는 건축자제들이 어지롭게 널려있다 한강과 임진강이 내려다보이는 경승지에 위치한 이름난 옛절이다 신라때 검단조사가 세웠다고 전해진다 검단조사의 생존연대는 확실하지 않으나 동국여지승람에 검단산에 검단사에 있다고 기록되어 있어 고려때 세웠다고 전한다 법화전안에는 19세기 말에 그려진 불화3점이 있으며 그중 검단조사상은 이절의 창건역사를 알 수 있는 귀중한 자료이다 사찰의 번성함을 알아볼려면 그곳의 장 항아리를 보면 알 수 가 있는데 이곳 검단사는 시골의 웬만한 가정집 장독 보다도 빈약하게 초라하여 보인다 오두산 전망대 개발계획에 의거 이곳 검단산까지 파혜처져 버릴 위기에 놓였다가 간신히 기사회생으로 남어있는 검단산의 모습이 흉물스럽게 파혜쳐저 보는이들의 눈살을 찌푸리게한다 검단산 정상에서 바라본 심학산과 시원하게 뚫린 자유로의 모습 이 자유로가 처음 개통하였을때 운전을 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자유로 이 길을 한국의 아웃토반이라고 말들을 하였는데 이미 몇년만에 자유로도 이제 출퇴근 시간대엔 극심한 교통전쟁을 치르는 도로로 변하고 말았다 반듯 반듯하게 농지정리된 농촌의 모습 이곳에서 생산되는 약산 (감칠미)는 전국 쌀 품평회에서 최우수 쌀로 인정을 받아 이러한 소문을 듣고 찿아오는 외지 손님들이 오두산 전망대와 온천길에 나섰다가 쌀을 사려는 사람들이 밀려들고 있다고한다 내 고향마을이라서가 아니라 나는 외지에 나가서 살면서도 우리가정의 주식인 쌀 만큼은 언제나 이곳 약산미를 선택을 하여 먹고있다 그 품질의 정도는 아마 시식을 하여보지 못한 사람들은 모를것이다 이곳부터 검단산 정상에서 약산으로 이어지는 산행로인데 육산으로 이어지고 있으며 굴곡이 거의 없고 능선길로 이어지고 있으며 주변에는 울창하게 덮고있는 수목으로 마치 수목원 터널길을 걷고있는듯한 기분을 느끼게된다 이길에 들어서면 아무리 키가 큰 사람도 전혀 사방팔방으로 확트인 주변을 조망을 할 수 가없어 답답하기도 하다 하지만 시원한 나뭇 그늘을 걸으며 오손도손 곧곧에 설치된 운동기구와 벤취에 앉아서 휴식을 취하노라면 마치 어느 공원에 온듯한 또 다른 산행멋을 느낄 수 가있다 서해바다 강화도에서 임진강과 한강이 갈라지는 기점 (3더풍)의 확트인 시원한 바람과 조망을 맛볼 수 있으며 한강변 김포평야 지역과 임진강건 북한땅 개풍군과 개성까지 바라보이는 조망 때문에 서울근교에 살고있는 시민들이 자유로변 관광길에 나서 오두산 통일전망대를 관람하고 이곳 검단산과 약산에 올라 등산을 한후 인근에 산재하여있는 전국에서 가장 시설이 크고 유명한 온천욕을 즐기는 코스로 이름이 널리 알려져있다 각광을 받고있는 그리 힘들지 않는 산행코스로 노약자를 동반하여도 무방한 안전한 산행길 코스이다 나홀로 산행을 하고있는데 어머니와 함께 자녀가 단란하게 가족산행을 나온 남매의 모습이 너무 귀엽고 대견하고 아름다워 남매의 모습을 사진에 담어본다 (아무쪼록 티없이 밝고 아름답게 성장하기를 바라며... 이곳이 나의 어릴적 추억으로는 그렇게도 유명한 열쇄고개이다 한시절 나는 이곳 열쇄고개를 하루 두번씩이나 넘나들며 풋나무 갈퀴나무를 해서 지고 작은키에 마을로 내려오려면 지게다리가 땅에 닿아 몇번이나 나뭇짐을 지고 아래로 굴렀는지 모른다 나의 어릴적 그시절의 기억엔 열서ㅣ고개는 배곱은 피난의시절을 지나는 눈물고개였다 단장의 미아리고개같은 눈물의 열쇠고개에 오늘 내가 이렇게 배낭을 메고 나홀로 산에 올라 옛날을 회상하며 어린시절의 추억을 그리며 잠시 추억에 젖고있다 그 때 그시절 나와 함께 이고개를 넘나들며 나무를 하여 지고 열쇄 고개언덕에 올라 청춘의 꿈을 꾸었던 친구들중 (홍경이도 구일이도 종기도 영재)도 이미 오래전에 모두들 이세상을 떠나고 그 시절 키도 작고 힘이약하고 요령만 있어 나무도 제일 할 줄도 모르고 힘겨운일은 언제나 친구들이 나를 도와주었던 쓸모없는 사람 나만 오늘 홀로남어 열쇠고개 언덕마루에 앉아 지난날의 추억에 젖어 친구들과 함께하던 추억에 젖으며 가슴찡해옴을 느끼고있다 내가 이 열쇠고개의 추억을 오르내리던 시절은 나의 인생중 한창의 개화기 18~20세의 무서울것이 없는 시기였는데 어느덧 내가 환갑의 나이로 열쇄고개에 앉아 흐르는 세월의 허망함을 느끼며 나이먹는것을 서러워하며 두려워 하고고 있다니...아! 흐르는 세월의 무상함이여... 아래 보이는 푸른 잔디가 월드컵때 각국 선수들과 우리나라 대표팀들이 훈련장으로 이용하던 파주 축구 트래이닝 쎈터이다 오늘도 어느팀들이 축구장에와서 운동을 하고있는 모습을 보려 주변에는 차량행렬과 인파로 붐비고있다 이곳부터 임진강 건너 북한땅 개풍군의 농촌모습이다 북한땅은 1960년대 당시나 현재나 한결같이 눈에 보이는 산은 모두다 민둥산 벌거숭이가 되어 마치 나체를 드러내 보이는 모습을 하고있다 1960년대 그시절엔 사실 우리나라도 6.25전쟁으로 농촌이 피폐되어 농촌에서 땔감을 산에서 나무를 하여다 불을 땠기때문에 사실은 우리나라 현실도 북한과 똑같이 헐벗은 벌거숭이 산이었었다 그러다 1965~7년도경 고 박정희 대통령시절에 박대통령께서 [사람은 자연보호 자연은 사람보호]라는 녹화정책을 주장하면서 세계식량농업기구에서 보내오는 밀가루를 조림사업[사방공사]에 동원된 주민들에게 품삯으로 주며 심어논 나무들이 근 40여년의 세월이 흐르면서 하늘이 보이지 않을정도로 녹화가 이루어졌다 지금 생각을 하여보면 그때 그시절엔 솔직히 배곱은 시절로 사람이니 자연이니 하는 소리가 한낱 배부른 사람들의 허구에찬 소리로 밖에 들리를 않었지만 밀가루 품삯을 받는 이유로 유난히 형제들이 많은 우리집은 아버지도 나도 내동생도 모두다 사방공사에 자진동원되어 나무를 심었었다 아마 당시에 내가 심은 나무만 하여도 아마 수천주는 넘을것 같다 그리고 군대를 다녀오고 고향을 떠나 외지에서 직장생활을 하며 가정을 꾸리고 살어온지 30여년 만에 이렇게 우리나는 녹화천국이되어 살기좋은 나라의 모습으로 바뀌었다 그런 맥락에서 지금생각하여보면 나도 애림녹화를 위하여 공로를 한 셈이다 그런데도 북한땅은 40여년전과 동일하게 바라보이는 산들이 모두 벌겋게 속살을 내보이고 있으니 고향이 파주가되어 수도없이 이곳 지역을 지나다니는 국민의 한사람으로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수 가 없다 차라리 북한당국이 없으면 없어서 못한다고 우리 남한 한국에 도와달라고 솔직하게 이야기라도 할것이지 그잘남놈의 이루어지지도 않는 인민공화국 똥뱃장만 부리며 외면하는척하며 뒷구멍으로 도움을 요청하는 마치 돈도없으면서 허세를 부리는 졸부들의 땅땅거리는 꼬락서니들같아 마치 그들의 행동이 속보이고 웃기는 이율배반적인 행동으로 보이는것이 나만의 생각일까? 한나라의 국민수준 살림살이를 엿보려면 그 나라의 산을 보면 알 수 가 있다는 소리를 들으며 살었는데 오늘 내가 북한땅을 바라보며 느끼는 감정이 역시 그 말이 틀림없는 명언같다는 생각이든다 북한지역 주민들은 아직도 땔감을 나무를 의존하고있으니 어떻게 나무가 자랄 수 있단 말인가? 잘자꾸어진 조림사업이 한여름의 장마에 홍수를 막아주고 또한 습도조절을 할 수 있고 땅을 기름지게 하여 농작물 풍작을 예고하는것인데 저렇게 시뻘겋게 속살을 내보이는 환경에서 무슨놈의 농사 풍작을 예상할 수 있을것이며 기대할 수 가 있단말인가? 북한이 수년간에 걸쳐 흉작이드는것은 너무도 당연한 자업자득의 결과라 생각이든다 당장만 생각하고 조림사업은 하지도 않고 땔깜으로 무작정 나무를 베어내고 있으니 쯔쯔쯔 언제나 저 헐벗은 북한땅에 조림이 이루어져 치산치수 역활을 기대할 수 있을것인지 아무래도 나의 당대에서 북한 사회가 잘 사는 모습을 보기는 요원한 바람인것같아 마음이 서글프다 북한당국의 지금이라도 늦지않었다 이제부터라도 산에 나무를 심어야한다 산에 나무를 심어 가꾸는 일은 오랜세월의 정성과 시간이 흘러야 결과로 나타나는것이다 서투른 더이상의 이루어지지않는 이상일랑은 과감하게 내팽개쳐 버리고 그리고 오늘 한 그루의 나무를 심기바란다 내가 어릴적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를 외치며 멸공 반공을 외쳐댓는데 이제는 그 원수로 생각하던 북한동포가 마치 친형제같은 생각이들며 안타깝다 그만큼 세월의 흐름이 흑백논리의 냉전식 적대감도 무너트리고 있는것 같다 북한이 잘 사는 모습을 보고싶으니 말이다 개업식에 얼마나 인파가 몰려드는지 나는 현판을 써서 달아주고도 점심도 못얻어먹고 배를 곯고 돌아왔다 하지만 후배의 사업장이 인산인해를 이룰 수 있다면 나하나 배곯는것이야 참어야 한다 그렇치않어도 하루가 지난 오늘 아침에 후배에게서 전화가 왔다 선배님 너무너무 죄송하다구 이렇게 좋은글을 선물 주셔셔 빛이났는데 식사도 하지못하셔서 어떻게 하시냐고 그러면서 수일내에 별도로 한번 초대를 하여 거창하게 한상 올린다고 약속을 한다 (어이 후배! 거창하게 안먹어도 먹으것 보다 배부르니 아무쪼록 사업번창하시길...) 혹시 나의 산행기를 보시고 이곳 일송정에 드시는 산님들 계시면 꼭 제 이야기 하세요 아마 후배가 고기 한갈비라도 더 올리겁니다 또 모르죠 장삿속이란...혹시 박아지나 안씨우면 다행일지도... 그런일 있을땐 꼭 이야기하세요 농담입니다 (제 자랑을 너무 늘어놓은것같아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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