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평윤씨 선조 13위 상서대 춘향제

2018. 4. 30. 17:31☎파평윤씨네사랑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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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평윤씨 선조 13위 상서대(尙書臺) 춘향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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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425일 오후 1시 경기도 파주시 법원읍 웅담리 330번지에 위치한, 상서대에서는 전국에서 모인 파평윤씨 후손 2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선조 13위에 대한 춘향제를 모시었다



상서대(尙書臺)

 

상서대는 파평산의 동쪽에 위치하고 있다. 이곳은 문숙공께서 여진 정벌에서 돌아오신 후 독서와 낚시로 보내셨던 별저의 유허지이다.

 

이곳에는 상서대(尙書臺)라 조각된 비석이 세워져 있으며, 문숙공(文肅公)께서 손수 심으신 괴목 몇 그루가 있었는데, 6.25사변 때 폭격으로 한 그루는 죽고 두 그루만 남아 있다. 경기도지에는 이 나무가 임진왜란 때 병화로 타 죽은 뒤 다시 새 싹이 자란 것이라는 기록이 있다.


또한 坡州郡史의 거수명목사기에 둘레가 11, 나무 높이가 30여자나 되는 괴목 두 그루가 있는데 웅담리에 있는 이 괴목은 상서대 안에 있고 고려왕조 때의 공신 윤문숙공이 식수한 것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그런데 철종 9년 연천에 사는 前 龍宮縣監 박경선이란 사람이 논에 도수로를 개설하려고 괴목 한 그루를 발목하려 하였으나 우리 종중에서 이를 금지토록 하여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이에 감정을 품은 박경선은 윤씨문중을 모해하고자 윤가들이 단을 만들고 하늘에 제사를 올리고 있다고 밀고 하였다.


그 당시 영의정으로 있던 김좌곤이 포도대장 김병국을 시켜 조사해 보니 문숙공의 제단이므로 박경선을 무고죄를 물어 흑산도로 귀향을 보냈다. 그러자 박경선의 아들 박원중은 이에 원한을 품고 상서대를 붕괴시키려고 단 아래에 또 다시 도수로를 개설하려 하였는데 파주군내 유림들의 상소로 또 다시 영의정 김좌근은 박원중을 함경북도 경원으로 귀향을 보냈다.

 

상서대 경내에는 추원단이 있다. 이 단은 헌종4(1838)에 영평군 행직(鈴平君 行直)之豊宗人과 상의하여 상서대 경내에 소규모의 단을 만들어 문강공 언이(文康公 彦頤)로부터 어사공 순(御史公 純)까지 산소를 실전한 5위의 선조를 제사지내도록 하고 추원단(追遠壇)이라 명명하였다 박경선이 윤씨문중을 모함하기 위해 단을 만들어 하늘에 제사를 지낸다는 말을 피하기 위해 비석을 모시고 매년 105일에 단사(壇祀)를 지내왔다.

 

그후 희배(羲培), 지풍(之豊), 병식(秉軾) 등의 주선으로 위토도 마련하였다. 6.25사변 때 폭격으로 인해 단과 재실이 파괴됨에 따라 당시의 대종회장이셨던 우경(宇景)과 석훈(奭勳)10604월에 단을 바로하고 더 넓게 쌓았다.

 

문숙공(文肅公) 윤관(尹瓘) 장군(將軍)은 시조이신 윤신달(尹莘達)5세이시며, 6세 문강공 언이(文康公 彦頤), 7시랑공 돈신(侍郞公 惇信), 8유수공 상계(留守公 商季), 9녹사공 복원(錄事公 復元), 10어사공 순(御史公 純), 11문현공 보(文顯公 珤), 12양간공 안숙(良簡公 安淑), 13영평군 척(鈴平君 陟), 13판서공 리(判書公 莅), 13영평군 척(鈴平君 陟), 14충간공 승순(忠簡公 承順), 14세 문충공 승례(領議政 承禮)13위와 웅비(雄碑)등 모두 14위가 모셔져 있다.


상서대를 끼고 흐르는 개울의 절벽에는 윤관대원수의 애첩(雄丹)이 순절했다는 전설이 담긴 웅담(熊潭)과 웅단이 몸을 던진 바위 위에 낙화암비(洛花岩碑)가 세워져 있었으나 2011728일 집중호우로 인하여 낙화암비가 유실된 것을 파평윤씨 대종회의 주선으로 상서대 경내에 다시 세웠다.

 

현재 상서대(尙書臺)에는 위 열세분의 선조님들의 碑位가 있으며 음력 310일에 제향을 올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