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애란 소설] 달려라 아비

2017. 6. 24. 11:48☎열린文學人사랑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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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애란 소설] 달려라 아비

 

 

  작가 김애란(金愛爛)은 1980년 인천에서 태어나 한국예술종학학교 연극원 극작과를 졸업했다. 단편『노크하지 않는 집』으로 제1회 대산대학문학상 소설부분을 수상했고, 같은 작품을 2003년 계간 『창작관 비평』봄호에 발표하며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2005년 대산창작기금을 받았고 제38회 한국일보문학상을 수상했다.

 

  늘그막에 문예창작 공부를 한다고 경인교대 문예창작반에서 문광영 교수의 강의를 듣고 있다. 그런데 교수님은 열강을 하시는데. 아무리 정신을 차리려고 해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는것 같다.' 나 자신을 채찍해보지만 소용이 없다. 마치 "장님 파밭 들어가는 꼴"이다. 해서 결단을 했다. 이해를 못하면 하다못해 타자 실력이라도 늘려보자는 마음으로 최근 내가 읽은 소설을 필사해 보기로 했다.

  최근읽은 책이 2권이다. 그중 하나가  "맨부커 인터내셔널상" 수상을 했고 뉴욕타임즈(NYT) '2016 최고의 책 10권'에 선정된 한강의 소설『채식주의자자』이다. 그런데 이 소설은 읽고 또 읽어도 이해가 난해하다. 세계인들이 명작이라는데 도대체 나는 감동을 모르겠다. 그래서 채식주의는 다음 기회로 미뤘다.

  그리고 먼저 『김애란 소설 달려라 아이』를 필사하기로 했다. 그런데 문제는 필사를 하며 걱정되는것은 혹시 저작권법에 저해(沮害)되는것 아닌가 염려가 된다. 김애란 작가님 만약 작가님께 피해가 되면 즉시 삭제 하도록 하겠습니다.

  다만 일흔넷 노인이 오직 배우고 싶은 욕망에 작가님의 소설이 도움이 되어 책을 구입하여 필사 하게 되었습니다.

 

 

달려라, 아이

 

  내가 씨앗보다 작은 자궁을 가진 태아였을 때, 나는 내 안의 그 작은 어둠이 무서워 자주 울었다. 그러니까 내가 아주  작았던 시절- 조글조글한 주름과, 작고 빨리 뛰는 심장을 가지고 있었던 때 말이다. 그때 나의 몸은 말(言)을 몰라서 어제도 내일도 갖고 있지 않았다.

 

  말을 모르는 뭄뚱이가, 세상에 편지처럼 도착한다는 것을 알려준 것은 나의 어머니였다. 어머니는 나를 어느 반지하방에서 혼자 않았다. 여름날이었고, 사포처럼 반짝이는 햇빛이 빳빳하게 들어오고 있었다. 그때도 윗도리만 입은 채 방안에서 버둘거리던 어머니는 밥을 손이 없어 가위를 쥐었다. 창밖으로는 어디론가 걸어가고 있는 사람들의 다리가 보였고,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마다 어머니는 가위로 방바닥을 내리 찍었다. 그렇게 몇시간이 지난 뒤, 어머니는 가위로 자기 숨을 끊는 대신 내 탯줄을 잘라주었다. 막 세상 밖으로 나온 나는 갑자기 어머니의 심장 소리가 들려오지 않았기 때문에 정적 속에서 귀가 먹는 줄 알았다.

 

  태어나 처음 본 빛은 딱 창문 크기만햇다. 그래서 나는 그것이 우리들 바깥에 존재한다는 것을 깨닳았다.

 

  그때 아버지가 어디 계션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아버지는 항상 어딘가에 계셨지만 그곳이 여기는 아니었다. 아버지는 언제나 늦게 오거나 오지 않았다. 어머니와 나는 펄떡이는 심장을 맞댄 책 꼭 껴 안고 잇었다. 어머미는, 발가벗은 채 심각한 얼굴을 하고 있는 내 얼굴을 큰 손으로 몇번이나 쓸어주었다. 나는 어머니가 좋앗지만 그것을 무어라 표현해야 할ㄹ지 몰라 자꾸만 인상을 썼다. 나는 내가 얼굴 주름을 구길수록 어머니가 자주 웃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때 나는, 사랑이란 어쩌면 함께 웃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때 나는, 사랑이란 어쩌면 함께 웃는 것이 아니라 한쪽이 우스워지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어머니는 잠이 들었다. 나는 외로워졌다. 그러나 세상은 조용했고, 햇빛은 헤어진 애인이 보내온 예의바른 편지처럼 여전히 저쪽 방바닥 위에 놓여 있엇다. 예의바름, 그것은 태어나 내가 세상에 대해 느낀 최초의 불쾌(不快)였다. 나는 주머니가 없어 주먹을 쥐었다.

 

  내겐 아버지를 상상할 때마다 항상 떠오르는 장면이 있다. 그것은 아버지가 어딘가를 향해 열심히 뜀박질하고 있는 모습이다. 아버지는 분홍색 야광 반바지에 여위고 털 많은 다리를 가지고 있다. 허리를 꽃꽃이 핀 채 무릎을 높이 들고  뛰는 아버지의 모습은 누구도 신경쓰지 않는 규칙을 엄수하는 관리의 얼굴처럼 어딘가 우스꽝스러워 보인다. 내 상상 속의 아버지는 심수년째 쉬지 않고 달리고 있는데, 그 표정과 자세는 늘 변함이 없다. 아버지는 벌게진 얼굴 위로 황니를 드러내며 웃고 잇다. 그것은 마치 누군가 아버지 얼굴 위에 일부러 붙여놓은 못 그린 그림같다.

  나는 아버지뿐 아니라 운동중인 모든 살마이 우스꽝스러운 면을 가지고 있다고 새악ㄱ했다. 동네 공원에서 소나뭉에 대고 배치기를 하는 아저씨나, 손뼉을 치며 걷는 아주머니들을 볼때마다 내가 괜히 부끄러워지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 였다. 하지만 그들은 언제나 진지했고 열성적이었다. 마치 건강해지기 위해서는 조금씩 우스워져야 된다는 듯이,

 

  나는 아버지가 뛰는 장면을 한번도 본 적이 없다. 그런데도 내게 아버지는 항상 달리는 사람이엇다. 그것은 오래전 어미니가 내게 들려준 이야기 때문에 생긴 환상일지도 모른다. 내가 그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대, 어머니는 가랑이 사이에 빨래판을 놓고, 거품이 무럭 나는 빨랫감을 힘차게 문지르고 있었다. 어머니는 빨래를 빠는 동안 연신 씩거렷기 때문에 화난 사람처럼 보였다.

 

  아버지는 ㅇ머니를 위해 한번도 뛴 적이 없엇다고 한다. 아버지는 어머니가 헹어지자고 햇을 대도, 보고 싶다고 했을 때도, 나를 낳았을 때도 뚜이오지 않는 사람이었다. 사람들은 아버지를 양반이라고 불렀지만 어머니는 아버지를 바보라고 생각했다. 만일 어머니가 아버지를 오늘까지만 기다리겠다고 마음먹엇다면, 아버지는 항상 그 다음날 온는 사람이었다. 아버지는 늦게 왔지만 수척해진 모습으로 나타났다. 어머니는 이 주눅든 지각생의 눈빛 때문에 항상 먼저 농담을  건네던 여자였다. 아버지는 변명을 하지도, 큰소리를 치지도 않았다. 그저 마른 입술과 새까매진 얼굴을 가지고 '왔을' 뿐이다. 상상하건데, 어쩌면 아버지는 거절을 두려워하는 사람이었는지도 모른다. 미안해서 못 오는 사람, 미안해서 자꾸 더 미안해야 되는 상황을 만드는 사람, 나중에는 정말 미안해진 나머지, 못난 아버지가 나쁜 사람이고 싶었을 만큼 착한 사람이 아니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아버지는 자신이 잘못하고도 다른 사람이 미안한 마음이 들게 하는 진짜 나쁜 사림이었을지도 모른다. 나는 지금도 세상에서 가장 나쁜 사람은, 나쁘면서 불쌍하기까지 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나는 아버지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알 수 없다. 아버지가 남기고 간 것은 몇몇 사실들뿐이다. 사실만큼 그 사람을 잘 말해주는 것이 없다면, 아버지는 분명 나쁜 사람이지만, 그게 아니라면 아버지는 내가 아직 모르는 사람이다. 아무튼 중요한 것은 그렇게 느꼈던 아버지가 단 한번, 세상에 온힘을 다해 뛴 적이 있었다는 것이다. 그것은 아버지가 돈을 벌겠다고 상경한 지 몇 되지 않았을 때 의 일이다.

 

  아버지는 서울에 온 뒤 가구공장에 쥐직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아버지는 같은 사람이 돈을 벌겠다고 고향을 떠날 생각을 햇다는 것이 이상하게 여겨질 수도 있다. 하지만 아버지는 그때 많은 사람들이 가고 있는 쪽으로 가고 있을 뿐이었다. 그곳에서 아버지는 간간이 어머니와 편지를 주고받았다. 항상 더 많이 쓰는 쪽은 아버지였다는데, 어머니가 혼자 상경한 아버지에게 화가 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던 어느날 어머니가 아버지의 셋방에 찾아왔다. 늘 사이가 나빴던 외할아버지와 대판 싸운 뒤 감행한 가출이었다. 어머니는 편지봉투에 적힌 주소 하나만 가지고 미로같이 구불구불한 길을 더듬어 아버지가 세든 방을 찾아냈다. 갈 곳도 없고 며칠만 있을 요량이었다. 그러나 아버지의 요량이 같을 리는 없었다. 아버지는 어머니가 올라온 그날부터 어머니에게 끝없는 구애를 하기 시작했다. 젊은 피에 좋아하는 처녀와 한방에서 떨어져 잤으니 그럴 법도 했다. 아버지의 애원과 짜증과 허세는 며칠 동안 반복되었다. 그러자 어머니도 아버지가 가여윤 생각이 들었고, 어쩌면 가날만은 '평생ㅇ 이 남자의 하중을 견디며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는지도 몰랐다. 결국 어머니는 아버지를 허락했다.단, 지금 당당 피임약을 사와야만 한이불을 덮겠다는 단서를 달고,

 

  아버지가 뛴 것은 그때부터였다. 아버지는 달동네 맨 꼭대기에서부터 약국이 있는 시내까지 전속력을 다해 뛰었다. 오줌 마려운 듯 벌게진 얼굴로 아버지는 입이 찢어져라 웃고 있었고, 아버지를 보ㅗㄱ 놀란 개가 짖자 온 동네 대귿ㄹ이 일제히 짖어대기 시작했다. 아버지는 뚜고 또 뛰었다 상기된 얼굴로 장발을 휘날리며, 계단을 넘고,. 어둠을 가르며 바람보다 빨리, 아버비는 허겁지겁 뛰어가다 연탄재에 발이 걸려 넘어지고 말았다. 온몸에 하얀 재를 뒤집어쓴 아버지는 그 즉시 벌떡 일어나, 지금 달려가고 잇는 곳이 훗날 어디를 향하게 될지도 모른채 죽어라 뒤어갔다.

 

  ......아버지 생애, 그때마큼 삘라ㅣ뛰어본 적익이 있을까? 나는 아버지가 어머니를 안기 위해 달동네를 단숨에 뚜어내려가는 상상을 할 때마다. 아무것도 보지 못하고 들리지 않았을 아버지에게 "아빠! 보기보다 잘 뛰내?!"라고 소리치고 싶어진다.

 

  아버지는 그날 너무 급하게 달려오느라 피임약의 복용법도 자세히 알아오지 않았다고 한다. 어머니는 하얀 재를 뒤집어 쓰고 온 아버지에게 몇알씩 먹는 게 맞는지 물었고, 아버지는 "두 알이라고 했던 거 같은데......"라고 말하며 머리를 긁적거렸다. 어머니는 그후 몇달간 피임약을 하루 두 알씩 꼬박꼬박 챙겨먹었다고 한다. 그 몇달단 하늘이 노랗고 구역질이 나는게 어쩐지 이상했다고, 그랬던 어머니가 약사에게 물어 피임약을 한 알로 줄이고, 양동이에 언 물을 깨뜨려 달빛으로 뒤물을 하고, 그 차가움에 소스라치며 약 먹는 걸 까먹기도 했던 어느날, 어머니는 임심을 햇고, 아버지는 어머니의 부풀어오르는 배를 보고 얼굴이 점점 하얘지다가, 아버지가 되기 전날 집을 나가 그후로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

 

  달리기는 새애돠 장소를 불문하고 가장 인기있는 스포츠라고 한다. 달리기는 심폐계에 적절한 자극을 주어 심페지구력을 향상시킬 수 있는 전신운동으로, 걷기와 뛰기의 복합된 형태로 이루어졌다고 한다. 다릴기는 특별한 기술이나 고도의 스피드를 필요로 하지 않으며, 장소나 기후에 구애받지 않는 다는 장점을 갖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달리기는 강한 지구력을 필요로 하는 운동이라고 한다. 다른 것은 잘 모르겠다. 다만 나를 떠난 사람이,  나를 떠난 곳에서 오래 달리고 있는 이유를, 그 힘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아버지는 달리기를 하러 집을 나갔다. 나는 그렇게 믿기로 했다. 전쟁터에 나간 것도, 다른 아내를 원한 것도, 어느 나라 사막에 송유관을 묻으로 간 것도 아니라고, 다만 집을 나갈 때 시계는 챙겨가지 않은 모양이라고,

 

  내겐 아버지가 없다. 하지만 여기 없다는 것뿐이다. 아버지는 계속 뛰고 계신다. 나는 분홍색 야광 반바지 차림의 아버지가 지금 막 후꾸오까를 지나고, 보루네오섬을 거쳐, 그리니치 천문대를 향해 달려가고 있는 모습을 본다. 나는 아버지가 지금 막 스핑크스의 왼쪽 발등을 돌아, 엠파이어스테이트빌딩의 백십번째 화장실에 들러, 이베리아반도의 과다라마산맥을 넘고 있는 모습을 본다. 나는 깜깜한 어둠속에서도 아버지의 모습을 잘 식별할 수 있는데, 그것은 아버지의 야광 바지가 언제나 반짝이고 있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뛴다. 물론 아무도 박수쳐주지는 않았을 것이다.

 

  어머니는 농담으로 나를 키웠다. 어머니는 우물에 빠진 내 뒷덜미를, 재치의 두 손가락을 이용해 가뿐이 잡아올리곤 햇다. 그 채치라는 것이 가끔은 무지하게 상스럽기도 했는데, 내가 아버지에 대해 물을 대 그랬다. 아버지가 나에게 금기는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