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3. 29. 22:39ㆍ☎열린사진&겔러리☎
인천자부심산악회 강화 교동면 화개산 시산제
강화 교동도 화개산 259.6m 시산제 산행
지난해 (2014년) 석모도 해명, 낙가산 산행 때 관심 있게 보니 교동에 “연육교” 공사 중인 것을 보았다. 그때 속으로 다리 완공되면 언제 꼭 한번 가봐야지 하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마침 (2015년 3월 29일) “인천자부심 산악회”에서 강화군 교동면에 위치한 화개산 259.6m에 시산제 산행을 떠난다고 함께 가잖다.
“교동대교”는 인천광역시 강화군 양사면 인화리와 교동면 봉소리간의 연륙교로 강화도와 교동도간을 잇는 다리다. 이 다리는 총연장 3.44㎞로 총 904억 원의 사업비가 투입되어 2014년 7월 1일 개통 했다.
마침 잘됐다. 그렇지 않아도 꼭 한번 가보고 싶었던 곳이라 기꺼이 참석키로 한다. 부평역에 오전 7시 50분까지 도착하니 이날 ‘화개산 시산제 산행’에 동참한 산악인들이 탄 차량이 자그마치 관광버스 20대다.’ 어마어마한 숫자다. 수십 년 산행을 다녀 봤지만, 내 생전 이렇게 많은 차량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시산제 지내러 가는 것은 처음이다.
이 장엄한 모습 보며 부평지역 산악인들 단결력이 대단하다는 생각을 했다. 내가 탄 차량은 열여섯 번째 차량인데, 한 동네 살면서도 바쁘다는 핑계로 만남이 쉽지 않았다. 그런데 뜻하지 않게 이날 산행에서 만나 반가운 인사 나누는 모습이 화개애애 하고 정겹다.
내가 이번에 교동도엘 꼭 가고 싶었던 이유가 있다. 그러니까 벌써 50여 년 전 일이다. ‘1960년대 낙후된 농촌 발전을 위하여 4-H구락부 활동을 열정적으로 할 때다. 그때 강화 교동에 살던 친한 친구가 있었다. 친구와 나는 파주와 강화에 살았지만 서로 진솔한 편지를 주고받으며, 농촌에 대한 이상의 꿈을 함께 나누며 정보를 교환했었다. 물론 이번 방문에서 비록 친구를 만나지 못한다는 것은 알고 있다. 그렇지만 그리운 친구가 살던 고향에 대한 흙 내음이라도 맡아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교동의 원래 이름은 대운도(戴雲島) 이었다고 한다. 고림(高林) 또는 달을신(達乙新) 이라고도 불렀으나, 고구려 때 처음으로 현(縣)을 두어 고목근현(高木根縣)이라 하고, 신라 경덕왕때 교동 현이라 한 것이 오늘에 이르렀다고 한다.
교동도에는 조선시대부터 왕족의 유배지로 유명했다. 최충헌에 의해 쫓겨난 고려 21대왕 희종을 시작으로 안평대군, 임해군, 능창대군 등 11명의 왕족이 교동으로 유배당했다가 풀려나거나 사사되었다. 그 중에는 조선왕조의 풍운아 연산군이다. 중종반정으로 쫓겨난 연산군은 교동으로 유배된 지 2달 만에 사망했다.
전남의 해남지역이 선비들의 유배지였다면, 교동도는 왕족의 유배지였다. 정쟁에서 패한 인물은 한양에서 먼 곳으로 보내졌다. 그러나 왕권에 치명적일 수 있는 왕족 등, 거물은 가까우면서도 완전히 격리된 곳에서 늘 동정을 살펴야 했기 때문이다. 한양에서 하루, 이틀거리인 교동도는 해안과 가깝지만 급한 조류로 접근이 쉽지 않아 유배지로서 최적의 땅이다. <온라인 검색 자료 참조>
20대의 관광 전세 버스에 탄 차량이 군부대 검문소를 통과해 화개산 등산로 입구에 도착하니 9시 20분이다. 부평에서 한 시간 좀 더 달려 도착했다. 배편을 이용 할 때 같았으면 아마 3시간 정도는 걸려야 했을 것이다. 그랬던 곳에 “천지개벽” 이랄 정도로 달라진 교동대교 연육교 개통이 주는 의미가 이곳 교동 주민들의 생활에 큰 변화를 몰고 올 것 같다.
각 차량별로 들머리 도착과 함께 산행이 시작된다. 서둘러 산행을 마쳐야 시산제를 모실 수 있기 때문이다. 이곳 화개산 등산로는 최근에 시설 공사를 마친 것 같다. 주차장, 화장실, 운동시설, 부대시설 등이 하나같이 손때도 묻지 않았다. 그런가 하면 여기 저기 불도저 케터필터 자국이 남아 있다.
산행 시작 20여분 지나니 이정표가 보인다. (고군리, 면사무소 0.6km, 등산로, 연산군 유배지 150m) 화개산 정상까지 09km이다. 고도는 259.6m다. 등산로는 대체적으로 지그재그로 육산 길로 이어져 어린아이 노약자도 안심하고 쉽게 오를 수 있다.
뒤를 돌아보니 화개산을 오르는 인파가 구름처럼 이어져 오르고 있다. 아마 화개산 유사이래. 이렇게 많은 인파가 산을 찾기는 처음이지 않을까 생각이 든다. 등산로 중간 골짝에는 “한증막 터”가 남아있다. 안내판을 보니 조선후기부터 사용해 오던 한증막인데, 1970년대 까지 교동 주민들이 사용을 했다고 한다.
두 대의 카메라를 들고 산행을 하는데도 나는 한 시간 만에 화개산 정상에 오른다. 정상에는 찾는 이 없이 을씨년스럽게 서있는 육각정이 나를 보고 잠시 쉬었다 가라고 손짓 하며 바라본다. 그 옆에는 산불 감시탐도 있다. 하지만 산불 감시탑에도 사람이 없기는 마찬 가지다.
잠시 시야를 넓혀 사방을 둘러본다. 날씨 좋은 화창한 날 같았으면 그야말로 거리낄 것 하나 없는 “일망무제” 조망 명소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날은 해마다 이맘때면 반갑지 않게 찾아오는 중국발 불청객, 황사 현상으로 하늘이 온통 흙먼지에 가려 조망이 완전 “꽝”이다.
화개산 정상에서 300여 미터 지나면 “봉수산성터” 가 있다. 그런데 성은 없고, 터만 네모 소원 탑처럼 흔적만 남았다. 여기서부터 내려서는 하산 로는 오를 때와 달리 삐죽삐죽 튀어나온 암릉 구간이라 세심한 안전 산행을 요하는 곳이다. 그러나 여기만 내려서면, 눈 감고 걸어도 안전할 정도로 편안하게 널널 하산길이 이어진다.
우리는 “교동중‧고등학교정”에서 이날 화개산 산행을 모두 마치고, 올 한 해 일 년 동안 우리 회원들 “무탈 안전” 산행을 기원하기 위하여 집행부에서 진설한 시산제 제단에서 이날 산행에
참석한 일천 여명의 산악인들이 경건한 마음으로 시산제를 모신다.
이어 인천이 낳은 연예인 “염경환 (은률이 아빠)”의 재취 있고 익살스런 사회로, 타고온 관광버스 차량 1대에서 한 명씩 노래 부르기 장기자랑을 펼쳐 푸짐한 시상과 강화군수께서 제공한 막걸리 잔을 기우이는 가운데, 이날의 “인천자부심산악회 시산제”를 모두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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