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년 지기 우정이 다시 뭉쳤다.

2013. 7. 15. 22:07☎열린사진&겔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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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년 지기 우정이 다시 뭉쳤다.

 

가난이 죄가 되어 초등학교를 졸업, 또는 중퇴하고 중, 고교에 진학하지 못한 농촌의 무지렁이 청년들을 “5.16 군사혁명에 성공한 박정희 대통령”께서 낙후된 농촌 현실을 잠 깨워 “생각하는 농민, 과학 하는 농민”을 육성하자는 취지로 문을 연 ‘파주군 고등 농민’ 학원에 스무 살 전후의 청년들이 1965년 어느 날 입학을 했다.

 

그 시절은 우리나라가 북한보다도 훨씬 더 못사는 나라가 되어 웬만한 부농이 아니면 자녀를 상급학교에 진학시키기 어려운 환경이라 농촌마을 구석구석 동네마다 농번기를 제외하면 농한기엔 빈둥빈둥 노는 청, 소년들이 학교에 다니는 학생 숫자보다 몇 배 더 많을 정도로 귀중한 노동력이 손 놓았던 시절이었다.

 

그래서 그 시절 청년들은 배움이 있는 곳이라면 누가 시키지 않아도 스스로 만학의 열정을 불태우려고 배움의 기회를 찾아다니던 시절이라 ‘파주군 고등 농민학원’에서 만난 우리는 주간에는 열심히 새로운 농업 기술을 터득하기 위하여 공부하며 6개월이란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기간을 함께 ‘동고동락’하다 보니

 

나름대로 마음 맞는 친구들끼리 더욱 돈독한 우정의 싹을 틔우게 되어 6개월을 끝으로 ‘파주군 고등 농민학원’을 졸업할 때는 오랫동안 사귀었던 정든 친구들과 헤어지기 섭섭해 동무들끼 기념사진을 찍으며 그 사진에 “잊을 수는 없다.”라는 글씨를 새겨 넣어 각자 한 장씩 나누어 가진 인연들이다.

 

요즘 같았으면 헤어지는 마당에 그 흔한 친목 모임 하나 만들어 운영하며 끈끈한 우정을 나누었을법한데도 순진한 청년들은 그렇게 ‘파주군 고등 농민학원’에서의 인연을 끝으로 헤어지고 말았다. 그렇다고 헤어 지금까지 일체의 연을 끊고 살아온 것은 아니고 남자들의 “병역의 의무, 결혼과 사회생활”의 역경의 터널을 지나노라 그때 그 우정을 언제 한번 제대로 불사르지 못했다.

 

그렇다고 48년 동안이란 세월동안 일절 연락을 하지 않고 살았던 것은 아니고 그래도 인연의 끈은 놓지 못하고 친구들 가정에 애, 경 지사 행사가 있을 때면 서로서로 연락해 자주는 아니어도 ‘가뭄에 콩’나듯 우정의 명맥을 유지해왔지만, 그 외 언제 한번 별다른 술자리 한번 가져 보지 못해 오다.

 

그랬던 우정들인데 그 좋았던 청년 시절의 청운의 꿈을 모두 다 묻어버리고 난 지금 친구들 하나같이 환갑, 칠순에 이르러서야 처음으로 5인의 우정이 (2013.7.13) 초복 날을 정해 “파주시 금촌 읍 아동리에 있는 어느 허름한 보신탕집”에서 만났는데, 한창 혈기왕성하게 꽃 피던 청년 시절 만나 준수한 용모를 자랑하던 친구들의 모습에 하나같이 서리가 내리고 그 곱던 얼굴엔 꽤 굵은 인생 계급장 주름살이 골 깊게 패 있다.

 

그런가 하면 더 러의 친구들은 건강이 좋지 않아 큰 수술을 한 친구도 있고, 더 러의 친구는 그런대로 건강을 유지하며 오늘을 살고 있는데 단 한 가지 남자의 자랑인 “내놓라 잘 사는 친구”도 없고 그렇다고 꼬질꼬질 궁핍한 생활을 하는 친구도 없다.

 

그런 50여 년 지기 친구들이 처음으로 함께 자리를 마련해 만남의 회포를 술잔에 담아 한 잔이 두잔 되고 한 병이 두병되고 그러는 사이 늘어난 술병이 여나므병이 될 즈음 아쉬움을 뒤로하며 다음 기회에 만남의 날을 (2013.9.28)을 정하고 친목회 이름도 ‘농우회 農友會’라 정하고 5인의 (김재건, 최석구, 안광현, 사장환, 윤도균)이름을 아로새기며 헤어져 각자의 일상으로 돌아가는데,

 

귀갓길 교통편이 경의선 전철을 이용해 돌아와야 하는 (광현, 장환, 도균)은 서울역도 지나고 구로역 지날 즈음 광명에 사는 광현이의 끈질긴 설득으로 중간 하차해 개봉역 인근에서 또다시 이슬 이를 두어 병이나 더 마시고 귀가하니 밤 10시가 지나고 있다. 48년 지기의 만남의 기쁘고 즐겁고 행복한 하루가 온통 술에 젖어 버린 날이었다. 다음 만남엔 술 조금 덜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