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4. 27. 15:23ㆍ☎열린동영상겔러리☎
‘이준익 감독’과 함께 떠난 1박2일 영월 여행
글 : 청파 윤도균
이번 우리 부부의 영월 여행은 미리 예정된 여행이 아니라 얼마 전 차를 새로 산 작은아들이 ‘현대자동차 The Brilliant Korea 명사와 함께 떠나는 아주 특별한 여행 이준익 감독과 함께하는 라디오 스타 영월 기행’ 이벤트에 운 좋게 당첨되어 올해 고희를 맞는 아버지와 환갑을 맞는 엄마에게 여행권을 양보하며 두 분 함께 다녀오시라고 해 떠나는 아주 특별한 여행이다.
2013년 3월 22일 오전 7시 시청 앞 8번 출구를 나오니 바로 ‘현대자동차 The Brilliant Korea 명사와 함께 떠나는 아주 특별한 여행 이준익 감독과 함께하는 라디오 스타 영월 기행’을 떠나는 두 대의 차량이 대기하고 있다. 이번 여행에는 전국에서 35쌍 부부가 참여하였다는데 참가 인원 대부분이 젊은 사람 일색일 것 같아 나이 든 나로서는 조금은 쑥스럽고 멋쩍은 생각이 들지만 그렇다고 돌아가기엔 너무 아까울 정도로 마음이 끌리는 여행이라꾹 참고 차에 오른다.
그런데 차에 올라 함께 여행 떠날 일행들을 만나니 뜻밖에 많은 분이 연세가 지긋한 부부들이 참가해 마음에 위로하며 현대자동차에서 제공한 두 대의 관광버스에 나누어 타고 친절이 넘쳐나는 현대자동차 직원 여러분의 안내로 함께 떠나는 일행들이 상호 간 가벼운 인사를 나누고 영월까지 달리는 차에서 이준익 감독의 영화 “라디오 스타” 한 편을 DVD로 감상하다 보니 벌써 우리 일행을 싫은 차가 영월 시내에 들어서 잠시 일행 중 몇 분이 영월로 바로 오신 분들을 태우고 우리는 곧바로 이번 여행의 첫 방문지 장릉 (10:40)에 도착하니 그곳엔 벌써 우리 일행과 1박2일 동안 함께 여행을 하실 영화 “왕의 남자!”를 감독해 1,000만 관객을 끓어 모으는 데 성공하며 명 감독 반열에 오른 “이준익”영화 감독님을 만나 반가운 인사를 나눈다.
그런데 내 생각에 이준익 감독님처럼 선망받는 유명 인사는 우리네 서민과 달리 상당히 근사한 패션으로 약간은 티를 내시는 분이 아닐까 생각을 했는데 뜻밖에 이날 내가 처음 본 이준익 감독은 마치 일상에서 늘 함께 생활하던 사람을 만난 것처럼 친근한 모습의 서민적 스타일에 다소 왜소한 체격에 유난히 길이가 길게 느껴지는 키에 잘 어울리는 청바지 그리고 허름해 보이는 바바리를 걸치고 그다지 길지 않게 콧수염을 기르고 청년들처럼 꾹 눌러쓴 모자 스타일이 어쩌면 그렇게 잘 어울리는지 어딘가 마음이 끌리며 호감이 간다.
여행을 자주 하다 보면 그 여행에 대한 평가를 즐거움이 얼마만큼 있고 없었느냐에 따라 여행의 척도를 짐작하는데 그러려면 우선 중요한 것이 나에게 맞는 좋은 여행지 선택이 우선이고, 그다음이 누구와 함께 여행을 하는가에 따라 여행의 분위기가 달라질 수 있다. 그런데 이번 나의 1박 2일 이준익 감독과 함께하는 영월 여행은 아직 여행 시작도 안 했지만, 첫인상 “선입견”부터 어쩌면 이번 여행이 오래오래 나에게 아름다운 추억으로 기억될 것 같은 예감이 드는 가운데 “장릉” 관람에 들어간다.
장릉에 오르려면 10년 전만 해도 홍살문 지나 정자각에서 올라가는 길이 있었는데, 지금은 그 길을 없애고 잔디를 입혔다고 한다. 왜냐면 하도 겨울철 미끄럼 사고가 빈번하게 발생하기 때문이란다. 관리소에서 매표하고 장릉 입구에 들어서면 왼쪽으로 단종 역사관과 재실이 있고 그 옆에 ‘삼촌인 수양대군’에게 사약을 받고 비참한 죽음을 당하고 버려진 채 나뒹구는 단종의 시신을 현재의 능 자리에 몰래 묻어준 호장 엄홍도를 기리는 정려각(嚴興道 旌閭閣)이 있다.
이곳에서 락촌비각(駱村碑閣) 지나 100여 미터에 이르는 데크목 계단 길을 조금은 거친 숨을 몰아쉬며 오르고 나면 곧바로 평편한 금강송 소나무 숲 사이로 꼬불꼬분 시멘트길이 이어지며 단종의 장릉 묘역을 전방 100여 미터 앞둔 지점 벤치에 앉아 영월군 문화관광 해설사님으로부터 장릉 이야기를 듣던 중 능역 가는 길 오른편에 기존 소나무보다 확연히 여리고 앳돼 보이는 소나무 두 그루가 있는데 이 소나무를 1987년 제17회 단종제에 맞춰 사랑(단종의 비 정순왕후의 능)에서 10년생 소나무를 옮겨 심고 정영송 (精靈松)이라 명하였다 한다.
아마도 이곳에 정영송 (精靈松)을 옮겨 심은 영월 사람들의 마음엔 ‘비운의 왕 단종의 영혼’이라도 달래 드리려고 정순 왕후의 능에서 두 그루의 소나무를 옮겨심은 것이 아닌가 생각을 하며 우리 부부는 마음속으로 부디 다른 소나무보다 두 그루 정영송이 더 활기차게 자라 장릉의 큰 소나무로 자리 매김 하는 날을 간절히 기도한다.
그동안 여행을 하며 우리나라 많은 곳의 능을 돌아봤지만, 오늘 영월에서 처음 본 장릉 관람에 대한 소감이 왜 이렇게 가슴 아픈지 우리 부부는 묘역 앞에 서서 목례로 참배를 드리고 기념사진을 찍고 내려오는 길은 오를 때와 달리 중간 지점에서 배식단사 방향으로 질러 내려오니 바로 홍살문이 있고 홍살문 지나 왼편에는 정조 때 박팽년의 후손인 영월 부사 박기정이 수축한 우물로, 단종제를 올리는 한식 때 제정(祭井)으로 사용했다는 영천이 있고 홍살문에서↱면에 정자각이 있다.
그런데 이곳 장릉은 홍살문과 정자각이 이상하게↱. 하도 그 이유가 궁금해 문화관광 해설사 분에게 질문하니 ‘장릉이 이처럼 조금은 독특한 형식의 정자각을 세우게 된 사유는 단종의 억울한 죽음과도 무관치 않다고 한다. 우리나라 대부분 조선왕릉은 홍살문과 정자각이 일직선상에 세워져 있는데 이곳 장릉은 다르다.
단종의 천 년 유택 장릉 돌아보며 잃어버렸던 역사를 다시 배우다.
우리나라 조선왕릉 40기가 2009년 6월 30일을 기해 인류문화유산으로 가치를 인정받아 “유네스코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이곳 장릉은 조선 6대 단종(재위 1452∼1455)의 능으로 숙부인 수양대군에게 왕의 자리를 빼앗기고 청령포에 유배되어 17세 되던 해에 죽임을 당했어도 후환이 두려워 단종의 시신을 거두는 사람이 없었는데 영월 호장(戶長․) “엄 흥도”가 단종의 시신을 수습해 현재의 능이 있는 곳 (강원도 영월군 영월읍 영흥리 1090~1 단종로 190)에 암매장하고 장사를 지냈다 한다.
그 후 조정에서 단종에 대한 제사와 무덤에 대한 의견이 여러 번 있었지만, 미뤄 오다 비로소 선조에 이르러 상석·표석·장명등·망부석을 세웠으며 숙종 7년(1681)에 노산 군을 노산 대군으로 칭하였고, 숙종 24년(1698)에 복위시켜 이름을 “장릉”이라 하였으며 무덤에는 병풍석과 난간 석을 세우지 않았고 능의 양식은 간단하게 적은 “후릉”의 양식을 따랐으므로 석물은 왜소하다.
“후릉”은 조선 2대 왕인 정종과 그의 정비 정안왕후를 모신 능이다. 그런데 왜 하필 후릉 양식을 따랐을까? 단종은 두 번의 복위운동으로 2년 만에 상왕에서 노산 군으로 그리고 다시 서인으로 폐해지고 결국 유배지인 영월에서 17세 어린 나이에 짧은 생을 마감했다. 아마 이런 사연 때문에 숙종은 장릉을 후릉의 예로 조성하라고 했을 거라고 전한다.
당시 모든 조선시대 왕릉은 서대문 밖 10리 ~ 100리 사이에 묘를 쓰는 것이 원칙인데 장릉은 한양에서 자그마치 500리나 떨어진 강원도 영월군 영월읍 영흥리에 능이 있다. 장릉은 남한에 남아있는 40기의 왕릉 중 서울에서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 왕릉이다. <참조 영월군 문화해설사 설명>
이렇게 비운의 슬픈 임금 단종의 능역 장릉을 돌아보고 나니 ‘금강산도 식후경’이라 얼마 전 ‘강호동의 1박2일 팀’이 이곳 “장릉 보리밥집”에서 식사하는 장면 촬영을 하고부터 영월의 명소가 되었다는 ‘장릉 보리밥’집에서 보리밥 비빔밥 점심을 먹는데 그렇지 않아도 비빔밥 좋아하는 나는 마치 게눈 감추듯 맛있게 먹고나서 주인장이 내놓는 차 한 잔을 마시고 오후 일정에 들어 이번에는 ‘단종의 비사 와 전설 ‘이 남아있는 영월 청령포(寧越淸泠)’로 이동한다.
단종의 2개월 유배지 청령포(寧越淸泠)를 찾아서
1457년 6월 (17세 어린 단종이)곳 영월로 유배를 온다. 조선 6대 임금인 단종은 숙부인 수양대군에게 왕위를 빼앗기고 상왕으로 물러나 있다가 영월 청령포로 귀양을 오게 되었다. 단종은 여량부원군(礪良府院君) 송현수(宋玹)의 딸과 결혼한 후, 정순 왕후로 책봉된 부인과 함께 행복한 나날을 보냈으나 결국 일 년 반 만에 생이별하게 되었다.
단종은 첨지 중추원사(僉知中樞院使) 어득해(魚得浿)와 군자감정(軍資監正) 김 자행(金自行) 그리고 판내시부사(判內侍府事) 홍득경(洲得敬) 등 군사 50명의 호송 속에 서울 광나루에 있는 화양정을 출발하여 일주일 만에 유배지인 영월 청령포에 도착하였다.
청령포는 3면이 푸른 강으로 둘러싸이고 칼날 같은 산들이 얽히고설킨 천혜의 유배지로 밤이면 피를 토하듯이 처절하게 울부짖는 두견새의 울음소리와 밤새도록 끊일 줄 모르고 흐르는 포구의 거친 물소리만 들려오는 첩첩산중이다. 이곳에서의 어린 임금의 귀양생활은 형언할 수 없을 정도로 처참하였다. <청령포 노래비 참조>
우리 일행은 '두견새 우는 청령포 노래비가 있는 곳에서 승선료 2,000원을 내고 빤히 건너다보이는 샛강을 배를 타고 약 2-3분여 건너 청령포에 도착해 크고 작은 자갈 모래사장을 지나 청령포에 들어서니 금강송 숲으로 우거진 경관이 얼마나 뛰어나게 아름답던지 단종의 ‘슬픈 비극 역사’를 간직한 곳이란 사실이 무색할 정도다. 우스갯소리로 잘못 생각하면 유배가 아니라 휴양 오신 걸로 착각할 정도다. 청령포엔 우리나라에서 가장 크고 아름다운 소나무로 알려진 ‘관음송 (수령 600여 년 단종의 슬픈 말소리를 듣고(音), 비참한 모습을 봤다고(觀) 해서 생긴 이름)’이 있는 명품송이 있는 곳이기도 하다.
청령포 서쪽엔 육 봉의 험준한 기암절벽이 우뚝 솟아 있고 삼면이 강으로 둘러싸여 마치 섬처럼 형성된 곳으로 이곳에 유배된 단종이 한양을 바라보며 시름에 잠겼다고 전하는 ‘노산대, 망향 탑, 돌무더기’등 슬픈 전설의 역사가 남아 있는 유서 깊은 곳으로 청령포 전체가 울창한 금강송 숲으로 270° 구비 돌아 흐르는 서강과 어우러져 자연경관이 뛰어난 명승지다. <영월군 문화해설사 말씀 참조>
이렇게 슬픈 역사의 아픔이 서려 있는 청령포를 아내와 함께 걸으며 생각을 한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정치하는 사람들의 파벌, 당파 싸움질에 ‘죄 없는 단종 같은 성군’을 유배시켜놓고 삼촌인 자신이 임금의 왕위에 오르다니….‘천하 망나니 패륜아 수양대군’의 반정에 너무 화가나고 그로 말미암아 17세 어린 나이에 사약을 받고 영월에서 생을 마감한 단종께서 2개월여 유배지에 머무시던 거소를 돌아보며 나도 모르게 눈시울이 젖는다.
청록다방 노란 계란 노른자 동 동뜬 쌍화차 맛 잊을 수 없어
청령포 관광을 마치고 우리는 다시 영월읍으로 나와 이번에는 “청록다방”에 든다. 이곳 청록다방은 우리 일행과 1박2일 여행을 하고 계신 ‘이준익 감독’의 영화 “라디오 스타”를 촬영할 때 이곳 청록 다방에서 영화를 촬영했던 다방이다.
‘라디오 스타’영화의 대강 이야기는 이미 ‘한물간 철없는 록스타(박중훈)와 그의 매니저(안성기)’사이에 가슴 훈훈한 재밌는 이야기를 영화화한 이야기로 ‘88년도 가수왕’에 올랐던 왕년의 유명 가수가 그 후 인기가 뚝 떨어져 유명무실한 카페촌에서 기타나 튕기는 신세가 된 ‘록가수(박중훈)와 그의 매니저(안성기)’가 우여곡절 끝에 강원도 영월 방송국 라디오 DJ를 맡으면서 일어나는 코믹스런 이야기를 주제로 한 영화다.
그런데 운 좋게 이준익 감독의 영화 “라디오 스타”가 대 히트 하면서 이곳 청록다방은 전국에 널리 알려져 1970~80년대식 우중충한 건물에 조금은 후진 다방인데도 이곳 청록 다방으로 ‘노란 계란 노른자 동동 뜬 쌍화차’를 마시려 찾아드는 손님들로 성업을 이루게 되었다는데 우리가 도착했을 땐 벌써 이준익 감독께선 마치 ‘왕의 남자!’처럼 중앙 테이블에 자리 잡고 영화 쌍화차를 드시며 우리에게도 ‘이 집에선 먹을 것은 쌍화차’밖에 없다고 쌍화차를 권한다.
그리고 보니 나도 ‘호랑이 담배 피우던’수십 년 전 마셔보곤 지금까지 두 번 다신 못 마신 ‘노란 계란 노른자 동동 뜬 따끈따끈한 쌍화차’에 호감이 가 아내와 함께 쌍화차를 주문해 마시는데, 정말 이곳 청록다방의 쌍화차 맛은 말로 뭐라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로 독특하다. 아마 이번 여행에서 돌아가면 어쩌면 두고두고 이곳 청록다방 ‘노란 계란 노른자 동 동뜬 쌍화차’ 맛을 그리워할 것 같다.
아주 오랜만에 향수 속 같은 청록다방에서 기막힌 쌍화차도 음미했겠다. 이번에는 인근 영월 서부시장 관광을 위하여 발길을 옮기는데 이곳 서부시장도 마찬가지로 영화 “라디오 스타”찍을 때 주 배경지여서 서부 시장 입구 거리엔 아름다운 벽화가 조성되어 있고 이곳이 영화 ‘라디오 스타 촬영지’임을 삼척동자도 알아볼 수 있도록 서부시장 고층 건물 옥탑에는 ‘한물간 라디오 스타’ 배역을 맡았던 ‘박중훈과 그의 매니저 역을 했던 안성기 씨’인물 그림이 우리를 반긴다.
그런가 하면 또 이곳 영월 서부 재래시장은 요즘 꾸준히 시청률을 끓어 올리며 인기가 급상승하는 “MBC 아빠 어디가”란 프로그램에 아빠와 함께 출연한 꼬마 주인공들이 이곳 서부시장에서 저녁 준비 재료를 사며 “천방지축 천진난만”스런 연기를 보였던 곳이 되어 이곳 역시 꼬마 어린이들 인기 여파로 최근 전국에서 많은 관광객이 영월을 찾으며 차츰 침체했던 재래시장 경기가 살아나고 있다고 한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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