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
논설위원·정치전문기자
정책캠프가 대선 주자 간에 정책 개발 경쟁만을 자극한다면 박근혜의 조기(早期) 대선레이스는 한국 사회에 순기능을 할 수 있다. 그러나 과거 사례를 보면 대세론의 조기 질주는 적지 않은 역(逆)기능을 초래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지식인·정치인·관료 군상(群象)이 권력 주변에서 보여주는 궤도이탈이다.
지난해 12월 20일 박근혜 의원이 주최하는 복지정책 공청회가 열렸다. 행사가 시작된 시간은 서해 포격훈련을 앞두고 많은 국민이 떨리는 마음으로 TV를 지켜보고 있을 때였다. 박희태 국회의장은 축사에서 박 의원을 “유력한 미래권력”이라고 칭했다. 그리고는 “박 대표가 오늘 한국형 복지의 기수로 취임했으며 박 대표가 복지의 창시자는 아니더라도 중시조(中始祖) 정도는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국회의장이 당적(黨籍)을 떠나도록 하는 건 여야 간 중립을 취하라는 뜻이다. 입법부 수장이라면 의원의 정책활동을 담담하게 격려만 하면 된다. 그런데 박 의장은 특정 정당의 의원에게 “미래권력” 운운하면서 과도한 찬사를 헌납했다. 국회의장이 이렇게 행동하니 법안을 강행 처리할 경우 ‘집권당의 심부름꾼’이라는 비판을 받는 것이다.
토론자로 나온 정부 핵심부처 Q국장은 “이렇게 뜻깊은 자리에 초청받은 것은 가문의 영광”이라고 했다. 분위기를 부드럽게 하려는 조크(joke)일 수도 있다. 그러나 고위 공무원의 차기 권력 줄서기가 한국 사회의 병폐임을 감안하면 그는 신중했어야 했다. 만약 다른 의원의 정책공청회였다면 “가문의 영광”이란 표현이 가능했겠는가.
박근혜는 권력이란 호랑이를 우리에서 너무 일찍 풀어놓은 게 아닌가 싶다. 앞으로 호랑이가 질주할 때 많은 동물이 뒤를 따를 것이다. 첫째 그룹은 철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권력자의 아들이나 실세 측근에게 달라붙어 그들의 국정농단을 도와주었던 간신형, 사리(私利)를 위해 조직의 정보나 가치를 권력과 바꾸는 거간꾼형, 서로 먼저 권력의 자장(磁場)에 진입하려고 날개싸움을 벌이는 선착순형 철새들이다.
아직은 박근혜 주변에 ‘철새와 여우’가 그리 많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오동 잎 떨어지는 걸 보면 가을이 오는 걸 알 수 있다고 했다. 이곳저곳에서 오동 잎이 떨어지고 있다. 역대 정권에서 보았던 낯익은 철새가 다시 보이기도 한다. 호랑이로부터 철새와 여우를 떼어놓을 수 있는 사람은 박근혜밖에 없다. 질주하는 호랑이를 조련할 수 있는 사람도 박근혜밖에 없다.
10·26으로 박정희 권력이 사라진 후 박근혜는 사람들의 배신에 상처를 많이 받았다고 한다. 그러나 이제부터 박근혜를 위협하는 것은 배신보다는 아부일 것이다. 박근혜는 물러설 수 없는 도전을 시작했다. 그의 투쟁에서 중요한 것은 인의 장막을 경계하는 것이다. 박근혜는 노련한 호랑이 조련사가 될 수 있을 것인가.
김진 논설위원·정치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