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신화는 '한강의 기적'과 동격" / 머니투데이 안정준 기자님 기사 발췌

2011. 3. 10. 12:43☎열린자유글겔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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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투데이 안정준 기자님의 "고 정주영 회장님"에 대한 10주기 기사를 매일 배달되는 "머니투데이"신문을 읽고 너무 감명받아 나 혼자 기사를 읽고 느낀 벅찬 감정을 더 많은 국민들이 함께 공감하였으면 하는 마음에서 "머니투데이" 홈페이지에서 "안정준 기자님"의 "고 정주영 회장님"에 대한 기사를 발췌하여 요즘처럼 어려운 시기에 국민들이 머니투데이 안정준 기자님의 "고 정주영 회장"에 대한 기사를 읽고 어려움을 이겨 나가는데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기사를 편집하여 블로그에 게제 합니다.

 

머니투데이 안정준 기자의 양해를 구합니다.

 

 

범 현대가, '정주영 10주기 행사'로 화합할까

10일 사진전, 14일 추모음악회 등 다양한 행사

머니투데이 안정준 기자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입력 : 2011.03.10 06:55|조회 : 602

 

현대자동차그룹을 포함해 범 현대가는 오는 21일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10주기를 맞아 10일부터 다양한 추모행사를 진행한다.

이 행사는 범 현대가 임원이 참여하는 '10주기 추모위원회'가 진행하고 이홍구 전 국무총리가 위원장을 맡았다.

행사는 10일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리는 '아산 정주영 10주기 추모사진전' 개막식으로 시작된다. 사진전에선 정 명예회장의 생애와 그가 현대를 세계적 기업으로 키워내기까지 활약상이 소개된다. 사진전은 세종문화회관 미술관과 범 현대가 주요 사업장에서 11일부터 기일인 21일까지 열린다.

또한 14일 저녁 '아산 정주영 10주기 추모음악회'가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다. 정명훈 예술감독이 지휘하고 서울시립교향악단이 연주한다. 정명훈 감독이 고인을 기리는 의미에서 직접 선곡한 드보르자크의 '신세계로부터'와 베토벤 9번 합창교향곡 4악장 '환희의 송가'가 연주된다. 정몽구 현대차 회장을 비롯, 현대 일가와 주요 경영진, 국내 정·관계 인사 등 500여명이 참석할 예정이다.

행사는 외국에서도 열린다. 영국 왕립 로열필하모닉오케스트라는 다음달 12일 영국 런던 카도간홀에서 작곡가 류재준씨가 헌정한 '정주영 레퀴엠'을 연주한다. 2001년 정 명예회장 타계 직후 8남인 정몽일 현대기업금융 회장이 위촉해 작곡된 곡이다. 완성까지 무려 6년이 걸렸다.

한편 이번 추모행사에는 현대건설 (80,100원 보합0 0.0%) 인수를 두고 현대차 (184,500원 상승4000 -2.1%)와 갈등을 빚은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도 참석할 가능성이 높다. 이에 따라 추모행사가 범 현대가 화합의 자리가 되느냐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정주영 남긴 씨앗, 대한민국의 거목으로 자라다

고 정주영 명예회장 타계 10년 사이 훌쩍 큰 '범현대가'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했던가. 정주영 명예회장이 타계한 후 시련을 맛본 '현대'가 10년 만에 옛 위용을 되찾고 있다.

장자인 정몽구 회장이 이끄는
현대자동차 (184,500원 상승4000 -2.1%)그룹은 세계 5위 자동차 기업으로 성장했고, 현대제철 (126,500원 상승3000 -2.3%)을 통해 아버지가 못다이룬 일관제철소의 꿈도 실현했다. 6남 정몽준 의원이 대주주인 현대중공업 (447,000원 상승6000 -1.3%) 역시 세계 1위 자리를 지키고 있다.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이 1949년 현대자동차공업사 직원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정몽구 회장, 아버지의 꿈 이루다=과거 10년간 가장 비약적인 발전을 한 '씨앗'은 바로 현대차다. 현대차그룹은 42개 계열사를 거느리며 삼성그룹에 이어 재계 서열 2위로 올라섰다. 10년 전 8위에서 무려 6계단을 뛰어올랐다.

특히 "저렴하지만 품질이 떨어진다"는 평가는 이제 '품질의 현대차'라는 수식어로 바뀌었다. 덕분에 10위권 밖이던 세계 자동차업계 순위는 5위로까지 격상됐다. 국내시장 점유율 82%로 내수시장에서 독보적인 위상을 확보했고 이제는 미국과 중국시장에서도 대접받는 존재로까지 성장했다. 지난해 세계시장 점유율은 8.1%로 높아졌다.

정몽구 회장은 아버지의 못다이룬 꿈도 완성해냈다. 지난해 4월 충남 당진에 일관제철소를 완공, 원재료인 철강부터 자동차까지 생산하는 세계 최초 자동차업체로 발돋움했다. 지난 8일에는 현대건설 인수작업까지 사실상 마무리해 현대가(家)의 뿌리를 되찾았다. 현대차그룹은 '자동차-철강-건설'을 미래 3대 핵심 성장축으로 삼아 새로운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현대중공업 조선업 '신화' 잇는다=500원짜리 지폐 1장과 모래사장 위성사진 1장에서 출발한 현대중공업 역시 비상하고 있다. 현대중공업그룹은 계열사 19개를 포함해 자산 60조원을 기록하며 재계서열 7위권을 기록하고 있다.

매출도 지난 10년새 6배 넘게 뛴 50조원을 달성하며 1983년부터 세계 조선업분야 1위를 고수하고 있다. 특히 지난해에는 사상 처음으로 영업이익과 당기순이익 모두 3조원을 넘기는 기염을 토했다.

현대중공업 역시 지난 10년간 성장세를 이어왔다. 그룹 출범 당시 현대중공업과
현대미포조선 (180,500원 상승2000 -1.1%)으로 시작했지만 2002년 현대삼호중공업을 인수했고 2009년에는 현대종합상사를 되찾았다. 지난해 현대오일뱅크까지 인수하면서 10년 전 떠나보내야 했던 계열사들을 다시 품었다. 덕분에 조선업체에서 금융과 종합상사, 정유를 아우르는 종합그룹의 면모를 갖추게 됐다.

특히 형님 정몽구 회장과는 새로운 차세대 성장엔진도 개발하고 있다. 충북 음성과 전북 군산에 각각 국내 최대규모의 태양광과 풍력공장을 운영하며 그린에너지분야에서 기술력을 인정받고 있다.

◇미완의 숙제, 대북사업=정주영 명예회장이 뿌린 씨앗 가운데 아직 싹을 틔우지 못하는 분야는 '대북사업'. 정 명예회장이 83세라는 고령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소떼를 몰고 북한을 다녀올 정도로 마지막까지 열정을 놓지 않았지만 여전히 답보상태다.

대북사업은 정주영 회장에겐 단순한 사업 이상의 의미가 있다. 강원 통천군 송전면 아산리가 고향인 그가 소를 판 돈을 몰래 갖고 고향을 떠난 사실은 유명한 일화다. 이후 막노동으로 시작해 현대그룹을 일군 정 회장은 90년대 들어 대북사업을 자신의 마지막 사업으로 삼고 1989년부터 북한을 8차례나 방문하는 등 열정적인 활동을 펼쳤다.

대북사업은 꽃이 피는가 싶더니 '대북성금' 논란에 휩싸였고 사업 자체가 존폐 기로에 서게 됐다. 대북사업을 전담해온 현대아산은 자본잠식 상태에 빠지는 등 위기를 겪어야 했다.

여기에 남북간 긴장이 고조되며 관광객 수가 크게 줄어들었고 관광객 피격 사망사건과 천안함 폭침사건이 더해지며 대북사업은 사실상 중단됐다. 하지만 현대그룹의 대북사업 의지만큼은 전혀 변함이 없다. 현대그룹은 정치적인 문제만 해결된다면 언제든지 정 명예회장의 유지를 받들어 대북사업을 재개한다는 입장이다

 

"정주영 성공신화는 '한강의 기적'과 동격"

해외시각은… 미 해리티지센터 그의 이름 딴 연구소도 개설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이 1970년 경부고속도로

개통식에서 박정희 대통령 내외와 함께 테이프커팅을 하고 있다.

해외에서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은 '한강의 기적'으로 불리는 한국 경제발전사의 축소판으로 이해된다.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6·25전쟁으로 잿더미가 된 한국이 세계 초일류 산업국가로 성장하는데 정 명예회장이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정 명예회장에게 '한국 산업근대화의 주역' '한국 재계의 나폴레옹'이란 수식어가 항상 따라붙는다.

홍콩의 경제전문 주간지 '파이스턴 이코노믹 리뷰'는 99년 11월호에서 정 명예회장을 '20세기 아시아 10대 인물'로 선정했다. 이 잡지는 "정 회장은 한국을 막강한 산업국가로 바꾸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해냈다"며 "정주영 신화는 한국 근대사회 성립과 동격으로 봐도 무방하다"며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영국의 권위 있는 경제전문지 이코노미스트도 그해 2월호에서 "한국이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관리체제에 들어간 뒤 정주영 회장이 국가경쟁력 제고 차원에서 기아차를 인수하고 금강산 관광사업을 성사시킨 데 대해 '불가능은 없다'는 신화가 떠오른다"며 "정 회장은 끊임없이 목표를 세우고 목표달성을 위해 전력투구한다는 점에서 나폴레옹과 매우 흡사하다"고 평가했다.

한국과 중국 등 아시아지역의 빠른 경제성장이 주목받으면서 정 명예회장의 전기가 발간되는 것은 물론 그의 경영철학을 연구하는 연구소가 문을 열기도 했다. 중국의 유명 출판사인 삼련서점은 1997년 '세기의 가교 건설자 정주영'이라는 전기화보를 발간했다.

삼련서점은 출판이유에 대해 "정 명예회장이 건설을 외치며 한국 경제발전의 견인차 역할을 한 현대 한국의 건설자이자 20세기와 21세기를 연결해주는 가교 역할을 가장 성실히 수행한 인물이기 때문"이라고 취지를 설명했다.

리처드 스티어스 미국 오리건대 교수도 1998년 경영학자적인 시각에서 정 명예회장의 자서전을 발간했다. 스티어스 교수는 "국제시장에서 치열한 경쟁을 벌이는 다른 나라 기업영웅에 대한 연구저서"라고 밝혔다.

미국의 대표적 싱크탱크인 헤리티지재단도 1999년 10월 정 명예회장의 이름을 딴 연구기금 프로그램을 만들고 '정주영연구실'을 개설했다. 헤리티지재단이 사람 이름을 붙인 프로그램을 만든 것은 1992년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을 기념하기 위한 '로널드펠로'에 이어 정 명예회장이 2번째다.

헤리티지재단은 정 명예회장의 펠로십 프로그램 창설에 대해 "아시아의 위대한 지도자로서 기억되고 존경받을 만한 인물을 원했는데 정 회장이 바로 그런 인물이며, 한국의 성공담을 세계에 알리는데 앞장서온 20세기가 낳은 인물이다"라고 설명했다.

한편 정 명예회장은 한국은 물론 해외경제 발전에도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77년 대영제국 코멘더장을 비롯해 79년 세네갈 공로훈장, 82년 자이레 국가훈장, 98년 노르웨이왕실 코멘더위드스타 훈장, 2001년 푸틴 러시아 대통령 친선훈장 등을 수훈했다

2011년 한국 건설산업에 남아있는 '王회장'

[故 정주영 명예회장 10주기]해외진출 문열고 신뢰·가격 '무기' 쌓아

 

1975년 가을,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은 "무모하다"는 주위의 비아냥 속에서도 일대 결단을 내렸다. 당시 세계 최대 규모의 건설프로젝트인 사우디아라비아 주베일산업항 공사입찰에 참여키로 한 것이다.

그때까지 중동 건설시장은 선진국들의 독무대였다. 입찰에 초청받은 기업은 미국, 영국, 서독, 네덜란드, 프랑스 국적의 9개사. 나머지 한 자리에 "어느 기업이 들어오냐"는 것은 이들 국가의 기업에는 안중에도 없는 얘기거리였다. 소위 '잘나간다'는 일본 건설사도 끼지 못했다.

그 자리를 현대건설 (80,200원 상승100 0.1%)이 차지했다. 당시 사우디 왕족들 사이에서조차 "현대건설이 공사를 따면 내 오른팔을 잘라라"고 호언할 정도로 현대건설의 수주는 불가능에 가까워 보였다.

하지만 이듬해인 1976년 2월16일, 현대건설은 이 프로젝트를 따내며 세계 건설역사의 새로운 이정표를 세웠다. 수주금액은 우리나라 예산의 4분의1에 해당하는 9억3114만달러(당시 환율 4600원).

까다롭기로 유명한 기성금까지 챙기며 그 무렵 최악이었던 국내 외환사정까지 해결했다. '노가다'로 손가락질받던 건설업자가 외채 부도를 해결하는 구국의 장을 펼친 것이다. 지금은 우리 건설업체들이 제집 안방 드나들 듯 하는 중동 건설시장의 문은 이렇게 열렸다.

1984년 고 정 명예회장은 폐유조선을 이용한 '배 물막이공사'로 여의도의 48배에 달하는 서해안을 간척했다. 물막이 마지막 시점 270m를 남기고 유속 약 6m/s의 빠른 물살로 토사가 유실되자 유조선으로 유속을 줄이고 토사를 매입했다.

일명 '정주영공법'으로 불린 이 공사기법은 미국 뉴스위크와 타임에까지 소개됐다. 건설을 종합산업·종합기술로 만든 그는 우리 건설산업의 신화였고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교훈으로 남아 있다.


 

↑해외건설 수주 1호인 태국 파타니 나라티왓 고속도로 공사 모습

 


◇"국내에 안주하면 안된다. 해외에 길이 있다"

1960년대 초반 4.19와 5.16 등 2차례의 정치적 혼란을 겪으면서 정부는 기간산업 개발자금이 부족하자 대규모 토목사업을 벌일 처지가 못됐다. 발전소와 비료공장과 같은 플랜트는 선진 외국건설사들의 독무대였다.

기술력의 차이 때문이었다. 결국 고 정 명예회장은 "해외로 진출하는 길밖에 없다"고 공표했다. 해외에서 글로벌 건설사들의 기술력을 배울 필요가 있고 둔화된 조직에 변화의 바람을 줄 필요가 있다는 판단이었다.

현대건설은 1965년 태국 파타니 나라티왓 고속도로 공사를 수주했다. 이 프로젝트는 우리나라 건설사가 해외에서 수주한 첫 공사로 기록됐다. 이어 제1차 석유파동이 한창이던 1970년대에는 "달러를 벌기 위해서는 오일달러가 넘치는 중동으로 가야한다"고 선언했다.

고 정 명예회장은 특유의 뚝심으로 1975년 이란 반다르 압바스 동원훈련조선소 공사를 수주한데 이어 곧바로 바레인 아랍 수리조선소 공사를 1억3000만달러에 따내며 본격적인 대형공사 수주에 나섰다.

현대건설은 지금까지 전세계 50여 개국에 진출, 730여건에 달하는 공사를 수행하며 3월 현재 790억달러가 넘는 해외 수주고를 기록했다. 단일 기업으로 최초로 800억달러 수주를 목전에 두고 있다.

현대건설의 해외진출은 다른 건설사들을 자극했고 지난해 715억달러로 사상 최대 해외건설 수주고를 달성하는 시발점이 됐다. 지금도 국내 건설사들은 지속적인 건설투자 감소와 부동산경기 침체로 활로를 해외건설에서 찾고 있다.

고 정 명예회장의 결단이 없었다면 현재 우리 건설사들의 해외건설시장 지배력은 떨어졌을지도 모른다.


 


↑'20세기 최대 역사'로 불리는 사우디아라비아 주베일 산업항

 


◇"신용을 잃으면 그것으로 끝장이다"

첫 해외공사였던 태국 파타니 나리티왓 고속도로 공사는 모험이었다. 경험이 없던 탓에 손해가 막대했다.

손해가 눈덩이처럼 불어나자 공사를 계속하는 것 주체가 무모하다는 반발이 있었지만 고 정 명예회장은 "사업은 망해도 다시 일어설 수 있지만 인간은 한번 신용을 잃으면 그것으로 끝장이다"며 고집스럽게 공사를 진행했다. 이는 해외건설시장에서 신뢰를 확보하는 계기가 돼 동남아시아에서 각종 공사를 수주하는 밑거름이 됐다.

해외 건설시장에서 발주처의 영향력은 막대하다. 한번 눈 밖에 나면 해당 국가에서의 수주는 더 이상 기대할 수 없다. 건설사들이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발주처와의 신뢰를 유지하려는 이유다.

이후 대우건설은 1986년 미국이 리비아를 맹폭할 때에도 트리폴리와 벵가지에서 공사를 중단하지 않았다. 현대건설은 1991년 걸프전이 한창일 때 이라크에 진출한 건설사 중 가장 늦게 철수했다. SK건설은 2003년 전후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 당시 미국의 이라크군 폭격 때도 현장을 고수했다.

올들어 현대건설과 대우건설은 리비아 내전사태에도 불구하고 79명이 남아 현장을 지키고 있다. 공사 대금을 받기 위해 현장을 보전해야 하기도 하지만 위기가 닥쳐도 현장을 포기하지 않는다는 의지를 발주처에 확인시켜주고 있는 것이다.


↑이란 사우스파 가스플랜트 4-5단계 전경

 

◇수주 경쟁력은 가격, 품질은 세계 최고

해외건설 초기 우리 건설사들이 해외건설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무기는 '가격 경쟁력'이었다.

부족한 기술력을 가격으로 뒤집고 특유의 성실성과 원가경쟁력으로 공기를 맞추는 것은 물론 발주처가 원하는 품질의 결과물을 제공해야 하는 쉽지 않은 일이었다. 하지만 정 회장은 결국 우리 건설사들의 역량으로 정립했다.

'20세기 최대 역사'로 불리는 사우디아라비아 주베일 산업항 공사는 10억달러에 달했다. 입찰에는 현대건설은 포함한 세계적인 건설사 9곳이 참여했다.

현대건설은 가장 낮은 9억3114만달러를 써내 공사를 수주했지만 이때부터 고민이 시작됐다. 작업현장과 한국이 너무 멀어 원가가 천정부지로 뛸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고 정 명예회장은 한국에서 철 구조물, 콘크리트 등 모든 자재를 가져다 쓰기로 결정한다.

그렇게 현대건설은 공사비와 공기를 절약했고 공사 품질에서도 발주처를 만족시켰다.

현대건설은 2005년 이란 사우스파에 당시 최대 규모인 총 26억달러 규모의 고부가가치 플랜트 공사인 초대형 가스 처리시설 공사를 단일 플랜트 공사로는 세계 최단기간인 35개월 만에 성공적으로 준공했다.

당시 이란 정부의 하타미 대통령이 "사우스파 전체가 완공될 때까지 현대건설은 절대 이란을 떠나서는 안된다. 이곳에 남아 나머지 공사도 모두 수행해 달라"며 눈시울을 붉힐 정도였다.

지금도 우리 건설사들은 해외건설시장에서 가격경쟁력이 무기다. 기술력이 없어서가 아니다. 낮은 가격을 써냈지만 다른 건설사들보다 빠른 시간 안에 공사를 완료할 수 있는 기술력과 역량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플랜트의 경우 3개월 가량 공정을 단축하면 3~4%의 수익률을 향상시키는 효과가 있다. 고 정 명예회장의 경험과 노하우는 현재 우리 건설사들의 경쟁력이 되고 있다.

 

"소풍가는 날처럼 매일 매일이 설렌다"

 

고 정주영 명예회장의 어록

편집자주|대한민국 경제사에 한 획을 그은 고 정주영 명예회장이 타계한 지 오는 21일로 10년을 맞는다. 현대건설을 시작으로 현대자동차와 현대중공업, 현대상선 등 한국경제 성장의 주춧돌이 그의 손으로 놓여졌다. 거목(巨木)의 빈자리가 너무 컸던 탓일까. 정 명예회장 타계 이후 현대그룹은 셋으로 갈라지며 큰 시련을 맞기도 했다. 다행히 10년이 지난 지금 '뿌리 깊은 나무' 현대는 현대건설까지 되찾는데 성공하며 다시 넉넉한 그늘을 드리우고 있다. 맨 땅에서 수십만 명을 먹여살리는 기업을 키워내고 권력 앞에서도 쓴소리를 거침없이 쏟아내던 그를 그리워하는 이가 적잖다. 이에 정 명예회장은 어떤 말을 해줄까. 그가 남긴 말에서 해답을 찾아보자.
 
◇가장 큰 자산은 신용=신용은 곧 자본이다. 중소기업이 대기업으로 커가거나 대기업이 세계적인 큰 기업으로 성장하는 열쇠는 바로 이 신용에 있다. 공신력을 가지고 있어야만 기업이 성장할 수 있는 것이다. (1983년 7월29일 신입사원 하계수련대회 특강에서)

◇기업의 생명은 경쟁=기업이란 자유경쟁체제에서 경쟁을 함으로써 생명력을 가지고 성장할 수가 있는 것이다. 국내에서 독점적인 위치에서 보호를 받고 성장한 기업은 국제 경쟁사회에서는 아무 힘도 발휘하지 못한다. (1981년 현대 간부사원 부인 특강에서)

◇가장 큰 회사보다 가장 깨끗한 회사를=관리든 기업인이든 부정한 수입을 목적으로 하면 필연적으로 일은 비능률에 빠져들고 제품의 단가는 높아져서 경쟁력을 상실할 수밖에 없다. 나는 현대를 가장 큰 회사보다 가장 깨끗한 회사로 만들 목표를 갖고 있다. 우리가 가장 깨끗한 회사를 만들면 한국은 물론 세계에서 가장 높은 공신력을 가지고 가장 효율 있는 회사로 발전해나갈 수 있다. (1983년 현대그룹 간부 특강에서)

◇가난한 사람에게 혜택을=우리나라에는 주식을 사지 못할 정도로 가난한 사람이 많기 때문에 이 주식을 살 능력이 없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혜택이 돌아가도록 하는 것이 더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현대건설 주식의 50%를 아산사회복지사업재단에 내놓았다. (1984.4.26 부산대학교 특강에서)

◇나는 부유한 노동자=나를 세계 수준의 대기업을 경영하고 있는 한국인이라고 남들은 평가하고 있는지 모르지만 나는 나 자신을 자본가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다. 나는 아직도 부유한 노동자일 뿐이며 노동을 해서 재화를 생산해 내는 사람일뿐이다. (1982년 미국 조지워싱턴대학에서 명예경영학 학위 취득 기념 만찬회에서)

◇연조를 따질 필요 없다=기업이 성공하는 요체는 인간관리입니다. 인사가 성공하면 기업은 당연히 성공합니다. 신입사원은 누구나 활기찬 회사, 활기찬 부서에서 일하고 싶어합니다. 그런데 선배직원들이 침체돼 있으면 신입사원은 발전도 못할 뿐더러 회사까지도 싫어하게 됩니다. 이런 의미에서도 인사의 활성화는 꼭 필요합니다. 굳이 연조를 따질 필요가 없습니다. 능력만 있으면 빨리 승진시키는 게 인사의 활성화입니다. (1985.9 사장단회의에서)

◇일찍 일어나는 기쁨=나는 젊었을 적부터 새벽 일찍 일어난다. 왜 일찍 일어나느냐 하면 그날 할 일이 즐거워서 기대와 흥분으로 마음이 설레기 때문이다. 아침에 일어날 때 기분은 소학교 때 소풍가는 날 아침, 가슴이 설레는 것과 꼭 같다. 또 밤에는 항상 숙면할 준비를 갖추고 잠자리에 든다. 날이 밝을 때 일을 즐겁고 힘차게 해치워야겠다는 생각 때문이다. 내가 이렇게 행복감을 느끼면서 살 수 있는 것은 이 세상을 아름답고 밝게, 희망적으로, 긍정적으로 보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1983년 7월29일 신입사원 하계수련대회 특강에서)

◇생각하는 삶=아무 생각 없이 60년을 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생각을 하며 사는 사람은 보통 사람의 10배, 100배의 일을 해낼 수 있습니다. 시공을 같이 하더라도 정신적, 육체적으로 고양(高揚)된 삶을 사는 사람은 물질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10배, 100배를 산다는 말입니다. 노는 자리에 가서 노는지 마는지, 일하는 시간에 일하는지 마는지, 자는 시간에 자는지 마는지 하는 사람을 질타하는 이유도 바로 이 때문입니다. (1980.12 사보 인터뷰에서)

◇담담한 마음을 가집시다=담담한 마음을 가집시다. 담담한 마음은 당신을 굳세고 바르게 총명하게 만들 것이다. 담담한 마음은 좁은 이기에서 출발하지 않는 마음이며 관용이다. 담담한 마음은 도리를 알고 가치를 아는 마음이다. 그것은 융통자재의 평상심을 언제나 잃지 않는 것이며 모든 것을 배우려는 학구적인 노력이며 모든 것을 받아들이려는 빈 마음이며 조용한 가운데 치열하게 자기한계에 도전하는 항상심이다. ('정주영의 현대정신'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