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일 날이면 아침 8시 전에 아내와 아들은 각자의 회사로 출근을 한다. 일찍 출근 하려는 것은 혼잡한 교통시간을 피하기 위해서다. 가족들이 출근하고 나면 나만 홀로 남는다. 나는 항상 오전 10시에 회사에서 차가 오면 그 때 출근한다. 그래서 출근하기 전에 아파트 근처 공원에 가는 것이 하루의 시작이라 할 수 있다. 오늘도 어김없이 공원을 찾았다.
울긋불긋 가을 옷을 입었던 나무들은 추운겨울이 오는데도, 우리와는 반대로 옷을 벗기 시작했다. 발길을 옮길 때마다 떨어진 낙엽들의 사연을 듣고, 나뭇가지 사이로 내다보는 아침 해를 본다. 흩날리는 낙엽 따라 어디론가 가고 싶은 충동이 절로 나는 것도 사실이다.30분정도 운동을 마친 시간은 8시가 조금 넘었다.발걸음은 새들이 둥지로 돌아가듯 집을 향해 어느덧 아파트 문 앞에 이르렀다.
문을 채 열기도 전인데 전화벨 소리가 요란하게 들린다. 황급히 문을 열었다.
"여보세요! 어디십니까?" 물었다.
"‘택배회사입니다." 라고 들려온다.
어디에서 옵겁니까? 재차 물었을 때, 외국에서 오는 소포라 했다.지금같아선 외국에서 소포가 올만한 곳이라고는 싱가폴에 사는 큰딸 뿐이다.누가 무엇을 보냈는지 궁금한 마음 쉽사리 지워지지 않는다.
택배회사 직원은 "8시 30분경 배달하겠습니다". 하는 말을 끝으로 전화는 끊어졌다.
오늘따라 얼마 전에 다친 허리의 통증이 심하여 조용히 집에서 휴식이나 취할까, 아니면 글이나 좀 써볼까 망설였는데, 조용한 아침은 소포가 온다는 연락으로 산만해지기 시작했다.
8시 30분이 되었다. 밖에서 현관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똑똑 들린다.
"택배입니다.소포를 받으세요".하니,문을 황급히 열어 주었다.
네모난 하얀 조그마한 상자 하나를 놓고 갔다.
겉 표면에 쓰인 주소를 보니, 카나다에서 폐암으로 투병중인 친구 "송 태용"이란 이름이 나를 쳐다 본다.
순간 나는 몹시 당황했다.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눈앞이 캄캄했다.
너무도 의외의 일이었기 때문이다.
잠시 후 정신을 가다듬고 머리에 떠 올렸다.
아마 이 친구가 세상을 떠났구나! 나에게 마지막 무엇인가를 전해주고 가려고 보냈구나......’
별생각을 다 떠올렸다. 한참동안 소포를 뜯어보지 못했다.
잠시 후 뜯어본 소포 속에 나를 반기는 송 태용 친구의 얼굴이, 친구의 웃음이, 말소리가 들려나왔다. 그것은 봄이나 가을에 입기에 적합한 잠바 두 벌로 변신해 온 것이다. 순간 나는 그 친구의 부드럽고 다정한 얼굴, 따듯한 가슴,맑은 눈빛이 영상처럼 떠올랐다.
왜! 이 친구가 이런 와중에 선물을 보냈을까? 의구심은 아직도 사라지지 않고 있다..
불길한 생각에 잠시 눈을 감고 깊은 생각에 잠겨 보기도 한다.
마음을 진정시킨 나는 전화번호를 찾아 카나다 친구 집에 떨리는 손으로, 떨리는 마음으로 신호를 보냈다. 웬일 인지 전화기도 떨고 있다.
잠시 후 벨소리 멈추고 친구의 아내가 전화를 받는다.
"안녕하세요?"
"송 태용 친구입니다". 하고 물었을 때,"네 안녕하세요?"
답이 오는 목소리를 들었을 때 조금 안도의 생각이 들었다. 친구의 병세가 더는 악화되지 않았음을 친구 부인의 첫 음성을 듣고,예감으로 직감했기 때문이다. 내가 예측한대로 친구의 안부를 물었을 때 부인은 그저 "‘더 나쁘지도 더 좋아지지도 않았어요".’하고 긴 한숨을 쉬는 소리가 귓전에서 울먹인다. 나는 조금 안정된 마음으로 다음 말을 이어 갔다.
‘오늘 택배가 와서 받았는데 그 속에 잠바 두 벌을 받았습니다. 웬일입니까?’ 하고 물었다. 부인의 말인 즉 8월에 한국에 나가려 할 때, 간단한 선물이지만 내게 주려고 준비했던 것이라 한다. 그 친구가 병석에서 내게 보내라고 재촉하며 보냈다는 것이다.
나는 이 세상에서 가장 친한 친구 하나를 꼽는다면 둘도 아닌 하나뿐인 것 같다. 그가 바로 송 태용 이란 주인공이다. 그는 어려서 초등학교 다닐 때부터의 죽고마우였다. 학교에서 돌아올 때면 으례 그 친구 집에 가서 숙제를 같이 하곤 했다. 비오는 날에 고기 잡는 그물이 없던 시절, 두 손으로 개천에서 고기를 잡고. 물장구 치며 놀던 때가 마냥 그립다.
배고플 때면 그 친구 어머니가 보리밥이지만 한상 차려 주면서 많이 먹으라고 권하던 기억은 지금도 잊지 못한다. 허기를 달래주셨던 그 인자한 어머니 생각에 절로 내 어머니 생각마저 어깨를 들썩이게 하는 때도 종종 있었다.
옛 당나라 대홍장은 친구를 얻으면 향을 피우고 절을 하며 조상님께 고하고 그 이름을 금란부에 올렸다고 한다.금란부의 참 뜻은 친구를 얻되 쇠붙이 같이 우정을 단단히 하고, 난과 같이 향기로워야 한다는 말이다. 분명 내 금란부에 적혀 있는 한사람이 바로 그 친구다.
"키케로"는 친구는 나의 기쁨을 배로 하고, 슬픔을 반으로 한다.” 했고, 영국 격언에 "친구와 포도주는 오랠수록 좋다"고 전해온다. 분명 그렇다. 60여년 긴 끈을 이어온 우리가 경험하고 살아온 삶의 역사다, 삶의 지혜다.
오늘이 즐거웠던 것은 우정이란 달에 친구라는 나무가 있어 따가운 세상의 햇살을 막아주었기 때문이다. 세상 제 아무리 힘들었어도 내가 살 수 있었던 것은 옆에 친구가 있었기 때문이란 것이 나를 있게 했다.
어느 속담에 ‘"천국은 연인끼리 가는 것"이고, "지옥은 친구랑 가는 거다"란 말은 친구의 소중함을 일깨워 주는 좋은 말이다.
송 태용이란 내 친구는 내가 슬퍼하거나 괴로워할 때 항상 내 곁을 떠나지 않았고, 이산가정의 쓰라림을 그 누구보다도 같이 아픔을 나누려 온갖 마음을 내게 준 고마운 친구다.
송 태용 친구가
나를 더욱 사랑으로 이끌려한 것은 이유가 있었던 것 같다. 초등학교 다닐 때 4학년부터 할아버지와 같이 살며 밥을 짓고 빨래를 하는 처량한 모습이, 어린 그에게도 애처럽게 보였던지 그런 사정을 알고 부터였던 것 같다. 한동네 살던 그 친구가 6.25사변 후로는 떨어지게 되었고,
고등학교 졸업 후에 그 친구는 카나다로 이민을 간 것이다. 그렇지만 둘 사이 거리는 수만리 떨어져 있어도 태평양을 오고 가는 진한 우정은 변하지 않고 더욱 두꺼워져만 갔다. 그러던 어느 날 이산으로 45년을 떨어져 북에 있는 단 하나 나의 혈육 누이동생의 소식을 알고자 할 때다.
그 친구는 북한 나의 누이동생에게 보내는 편지를 서슴없이 보내주었었다. 하지만 수십 년이 지나도록 함흥차사인 고향 소식은 2년 전 중국에서 만나기로 약속했건만 무산되고 말았다. 내 친구는 그런 사실들에 대해서 나보다 더 조국분단을 괴로워 했다. 비록 카나다로 이민은 갔어도 분단된 조국을 슬퍼하고 나의 괴로움에 가슴을 같이 했다면, 친구를 넘어 형제가 아닌가 싶다.
어느 날 그가 보고 싶어 목 놓아 울 수는 없어도,나는 그리움을 달래는 짧은 글을 안부를 묻는 편지 갈피에 다은과 같이 적어 보낸적이 있다.
보고 싶다 "송 태용"
아!
어쩌다 우린 멀리멀리 헤어졌는가!
자네집이 이웃이라면
우리는 몇 번이나
오고 갔을까.......
카나다는 너무나도
멀고 멀다.
헤어진지 40년이 넘었다.
보고파도 한증막에 들어가 참아야 하듯,참고 살아야하는 우리들 사이였다..
송 태용 친구는 지금 무척이나 어려운 투병생활의 하루하루가 이어지고 있다. 그의 육체는 비록 쇠잔해 있어도 정신은 조금도 흐트러져 있지 않음을 나는 안타까이 생각하며 가슴이 시리다 못해 쓰려온다. 내가 지금 그 친구에게 줄 수 있는 것이 무엇이 있을까, 곰곰이 생각해 본다. 저녁달이 떠서 환한 밤이면 옛날에 어머니가 정화수 한 그릇 상에 떠다 놓고, 절을 하며 소원을 빌었듯이 그같이 할 수 있다면 해볼까.......
아내가 불교를 정성껏 믿으니 부처님께 절하며 사정해볼까,신자는 아니지만 예수님께 기도하며 애걸해 볼까. 별의별 생각을 다해본다. 갑자기 불이나면 우왕좌왕 어쩔 수 없이 당황하듯 아무런 대안이 없다. 그 친구에게 힘이 되어 줄 수 있는 방도가 별로 없는 것은 뻔한 일에 공연히 마음이 흔들려 중심을 잡지 못하는 안타까운 시간만이 흐를 뿐이다.
신문을 보면 가끔씩 암과 투병하여 기적적으로 소생하였다는 보도를 보게 되는가 하면, 교회에선 사실을 간증하는 신도들의 부흥회가 열리고 있는 것을 보면 지금 나는 그 친구에게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나길 기원하면서 다음과 같은 글을 그에게 전하고 싶다.
팔월에 온다더니 12월에 오거라!
이 세상 너 같은 친구 또 있을까!
네 소식에 내가 왜
괴로워하는지 아느냐?
네 아픔에 내가 왜
잠 못 이루는지 아느냐?
이 세상 내 마음 모두 줄 사람
너 뿐이야!
어서 하루라도 빨리
옛 모습을 보여 다오
견우와 직녀는 일 년 한 번 만나건만
너와 나는 반세기 다 되도록
몇 번이나 만났느냐
청천병력 같은 네 소식
안 돼! 안 돼!
너는 꼭 옛날로 돌아와야 해
내 달려가고파
네 모습 보고 싶어
내가 보낸 한지에 먹을 갈아
꼭 일어선다.
글을 써다오
내가 보낸 한지에 내 소원 들어 준다
글을 써다오
팔 월에 온다더니
12 월에 오거라.
네가 소포로 보낸 한 쌍의 잠바
통일 되면 같이 입고
금강산에 가자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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