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둥산 억새 기대가 크면 실망도 커 [사진&동영상]

2009. 10. 13. 12:32☎청파산행과여행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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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행일시 : 2009년 10 월 11 일 (일요일) 날씨 :  맑음          

산  행 지 : 민둥산 1,120m 강원 정선군 남면, 동면

 산행코스 : 증산초교 - 임도- 쉼터 - 정상- 지억산갈림길 - 발구덕마을

 교통수단 : 대절 전세버스 = 전철

 산행인원 : 27명

산행시간 : 5시간

  

오늘은 한 달에 한 번 부부들이 모여 산행을 하는 우리산내음 부부산방 산행일인데 우리나라 5대 억새 명소로 알려진 강원도 정선 남면과 동면에 위치한 민둥산 1,1120m을 가는 날이되어 전날밤 새벽 2시 퇴근하여 겨우 1시간 반 정도 토끼잠을 자고 일어나니 새벽 4시가 조금 지나고 있다. 마음은 약 30분 정도 더 곤한 잠을 자고 싶지만 그 30분 더 자려고 하다 내쳐 잠들어 버리면 일행들과의 약속된 산행을 망쳐 펑크를 내게 될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들어 내친김에 벌떡 일어나 새벽들이 냉수로 머리 감으니 정신이 명쾌하고 산뜻하다.

 

그런데다 이날은 아주 모처럼 도영이 할마이가 아들들에게 사업장을 맡기고 함께 산행을 간다고 서둘러 대고 있으니 더더욱 미리미리 일행들과 약속한 시간에 도착 하기 위하여 부평역에서 5시 41분에 출발하는 전철을 타고 신도림에서 다시 2호선을 갈아타고 사당역 10번 출구에 도착을 하니 벌써 한껏 민둥산 억새꽃 산행 기대에 부풀은 회원님들 대부분 약속시간 몇 분전까지 다 모여 모두 27명의 회원님들이 전세버스를 타고 민둥산을 향하여 달려 가는데

 

평소 나 홀로 원정 산행 산행 같으면 잠을 못 잣다는 핑계로 산행지 도착 할때까지 부족한 수면을 취할 수 도 있지만 이날 부부 산행은 평소 나와 친형제 이상으로 두터운 인과 관계를 유지하며 내 인생에 벗이되이 되어준 고마운 마음에 벗들이 함께 산행을 하고 있으니 민둥산으로 달려가는 3시간 반여 시간 내내 그동안 못다한 이야기들 나누며 시간가는줄 모르고 기쁘고 즐겁고 행복한 시간을 나누다 보니 우리 일행을 싫은 전세버스는 민둥산 억새 축제 현지에 도착하여 민둥산 들머리 입구에 우리 일행들을 하차를 시킨다.

 

그런데 하차를 하고 보니 벌써 전국에서 억새 만발한 민둥산을 보기 위하여 모인 산행 인파가 얼마나 많이 모였던지 들머리 초입부터 마치 겨울철이면 선자령 산행길에 볼 수 있는 인파의 행렬처럼 이어지며 너도 함께한 일행들 단속 하며 들머리 초입부터 가파르게 이어지는 코스 전구간에 이어 행렬이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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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둥산 들머리 입구 아주작은 목교를 건너며 본격적인 산행이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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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머리 초입부터 급하게 이어지는 빡쎈 코스를 오르는

산행인파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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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지자체들 마다 다양한 이정표를 설치를 한 것을

보았지만 이곳 민둥산 이정표는  더욱 시선을 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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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로는 둥근 나무 계단길도 오르고 또 때로는 먼지가 폭삭 거리는 등로를 오르느라 코를 막고 오르기도 하고 또 쭉쭉 뻗어오른 낙엽송 군락지를 지나노라면 강열한 피톤치드향이 절정이뤄 그 향이 얼마나 상큼 하던지 늘 도심속 공해에 찌든 우리네 서민들에게 이 피톤치드 향이야말로 바로 그 어떤 보약 보다도 더 좋은 선물이 아닌가 생각하며 감사한 마음으로 한껏 가슴을 열어 보약을 마시며 간다.

 

그러면서도 평소 산행때와는 달리 모처럼 도영이 할마이가 함께 산행을 하고 있으니 나는 사진을 찍으며 아내가 친구 일행들과 저 만큼 뒤에서 산을 오르고 있는 거리를 유지하며 아주 모처럼 편안한 마음으로 널널 산행으로 서두르지 않고 촬영을 하면서 오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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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오랗게 곱게 물든 활엽수 나무가 더욱 정감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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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철에 한껏 그 자태를 뽑냈을 이름모를 야생화들이 그 결실을 맺고 있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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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하의 계절 여름과 가을을 실감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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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따라 유난히 파아란 하늘이 우리 부부 일행 산행을 축하라도 하여 주듯 더욱 선명하고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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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볕 반사에 한층 더 아름다움을 자랑하는 잎새의 모습도 만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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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선두 일행들은 임도위 공터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다는데 느림보 거북이 도영이 할마이는 그렇치 않아도 느린 사람인데 이날은 두 친구 초보 산꾼님들과 보조를 마추며 오르다 보니 세월아 네월아 부지하세월을 낚는듯 마냥 마냥 오르고 있다. 평소 산행 같았으면 나도 벌써 저 만큼 성큼성큼 올라 벌써 민둥산 정상을 오를법한 일이지만 적어도 이날 부부 산행 만큼은 그동안 쌓은 실력을 발휘하여 산행을 잘 하는 부부들은 조금 느림보 거북이가 되어 일행들과 보조를 마추며 이런 저런 세상사는 이야기도 나누며, 하하 호호 그윽한 피톤치드 향내를 맡으며 발길 가는대로 후미 일행들과 보조를 마추며 널널 산행이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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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두로 오른 일행들이 후미조 일행들을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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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도에서 잠시 휴식을 취한 후 다시 마지막 빡쎄게 이어지

는 구간만 치고 오르면 곧이어 민둥산 억새를 만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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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로 풀섶에 핀 들국화 한포기에서 그윽한 향기가 진동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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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풀사랑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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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먼지 풀풀나고 가파르게 고도를 높이는 등로를 오르는 사람과

하산하는 사람들이 범벅이 되어 더욱 고생을 하며 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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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파아란 하늘 문이 열리고 스산한 바람결에 억새가 춤을 추는 모습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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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치 솜사탕을 상상케 하는 구름,과 코발트색 하늘 그리고 억새가 더욱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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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입에 보이는 군데군데 핀 억새꽃 모습으로 보아서

아마 정상은 대단 하리라는 기대를 하게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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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대가 크면 실망도 더 큰것 사실 올 가을 민둥산 억새는 평년과 비교하였을때 영 아니다 그러다 보니 우리 보다 하루 먼저 강원도 모신문에 올라 소개된 민둥산 억새 사진을 보고 얼마나 감명을 받았는데 하루뒤에 내가 본 똑 같은 장소의 사진과 비교를 하여 보니 세상에 그 사진은 벌써 몇 년전 사진을 가지고 민둥산 억새를 호도하고 있었던것을 알 수 있었다. 기자가 쓴 현장 사진은 몇 년전 수목 벌채 작업을 하기전 사진인데 내가 찍은 사진은 말 그대로 억새 군락지에는 나무하나 없는 그런 사진에 억새는 기자의 사진처럼 억새가 하얗게 바람에 일렁이지 않고 짜리몽땅 키에 아직 하얀 억새꽃이 피기 전의 모습과 대조를 이루고 있었다. 하기사 옛말에 "팔이 안쪽으로 굽다다" 했으니 강원도 기자도 아마 그런 마음에서 기사를 쓴것이 아닌가 유추하여 본다. 그래도 그렇치 기사는 사실에 입각해야 하는것이 기자의 윤리이고 기사의 생명이 아닐런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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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 민둥산 정상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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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로 좌우로에 억새를 보호 하기 위한 목책이 양편으로 이어져 그 안에 억새 군락지가 생육하고 있지만 무슨일인지 올 가을 민둥산 억새는 매스콤이 호들갑을 떨며 뉴스를 내 보내고 있는 풍경과는 달리 억새는 사람의 키를 넘지도 않고 짜리 몽땅한 내 키 보다도 훨씬 작고 억새 또한 기대 이하 현장이 이어지고 있을뿐이다. 억새가 장관을 이루려면 무엇 보다도 억새꽃 길이가 강아지 꼬리처럼 길고 이드르하게 늘어져야 하는데 무슨일인지 올 민둥산 억새는 억새는 겨우 10여cm 정도 짧다란 길이에 아직 시기 상조인지는 모르지만 억새꽃 또한 볼품이 없다.

 

그러다 보니 이곳 민둥산을 ?았다 하산을 하는 사람들 그리고 우리 일행들처럼 오르고 있는 사람들 하나같이 이구 동성으로 너도 나도 올 가을 민둥산 억새는 아니라고 손을 내 져으며  "명성산,오서산,신불산"의 억새를 상기 시키며 이제 민둥산 억새는 가고 말았다며 안타까워 하고 있다. 그런데 이날도 우리들이 민둥산 정상 찍고 다음 코스로 이동을 하는데 핼기가 몇 바퀴나 민둥산 정상에 사람꽃으로 만발한 풍경을 찍고 돌아가는것을 보았는데 이날 밤 9시 뉴스에 보도된 민둥산 억새 보도를 하는데 역시 나의 예측은 빗나가지 않았다. 억새 뉴스를 보도 하면서 전체적인 그림은 내 보내지 않고 몇 포기 억새 사진을 배경으로 인터뷰하고  단편적인 보도로 민둥산 억새를 호도하여 보도 하고 있었다.

 

 

정상은 보나마나 인파로 붐빌것이 예상되어 목책 기둥위에 자동으로

카메라 조정을 하여놓고 나도 일행들과 함께 단체 사진을 찍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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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에서도 사회 생활에서도 늘 나와 함께 뜻을 같이 하는 친구들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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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둥산 정상에서

 

아마 모르는 사람들이 보면 아니 무슨 정상 기념 사진을 이런 구도로 찍었느냐고 하실 수 있겠지만 그러나 그것은 이날의 민둥산 정상 상황을 보지 못한 분들이 할 수 있는 오해이고 이날 정상은 그야말로 수백명 인파가 한꺼번에 몰려 정상석을 배경으로 기념 사진을 찍으려 그야말로 아비규환 전쟁을 치루듯 겨우 한 컷을 찍어야 할 정도이다.그러니 당연히 사진 구도고 뭐고 골라찍을 겨를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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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둥산 정상에서 시루봉 방향 조망

 

이곳도 대부분 억새 군락지는 예년의 모습이 아닌 쇠퇴하여 등로 좌우로 별 볼일 없는 억새가 그 유명을 빛 바랜채 보여주고 있다. 다만 중간쯤 억새 전망처 한 곳이 그나마 민둥산 억새의 명맥을 유지 시켜주고 있을 뿐이다. 그러고 보면 올 가을 민둥산은 마치 소문난 잔치에 먹을것 없는 모양새와 어쩌면 그리도 흡사한지 이럴 줄 알았으면 그 먼길을 달려 왜 민둥산을 왔는지 모르겠다는 일행들의 불만도 더러 들려 오고 있다.

 

아름다운 억새를 보기 위하여선 뭐니뭐니 해도 억새꽃 길이가 개꼬리처럼 길게 이드르하게 늘어져야 하는데 올 가을 민둥산 억새는 영 아니 올씨다 이다.그러다 보니 민둥산 억새 산행에 실망한 마음을 앉고 발구덕 방향 하산길에 멀리 행사장에서 구성지게 들려오는 "정성 아리랑 가락" 그 사연이 하산길 내내 심금을 울리며 가슴에 전해 온다.그러면서 한 켠으로 내년에는 비록 억새를 보지 못한다 하여도 정선아리랑 구성진 가락을 듣기 위하여서라도 다시 한번 민둥산을 ?을것을 기약을 한다. 

 

술 잘 먹고 돈 잘 쓸 때는 금수강산(錦繡江山) 일러니 
술 못 먹고 돈 떨어지니 적막강산(寂寞江山)일세.

 

여기서 정선 아리랑에 얽힌 이야기를 인용 게제를 한다.
 

 

정선아리랑의 유래  


  정선(旌善)아리랑은 '아라리'라는 이름으로 정선을 중심으로 강원도와 경북 북부지역, 충북지역, 경기도 동부지역에서 오래 전부터 구비전승 되어온 민요다. 정선아리랑의 역사는 지금으로부터 약 600년 전인 조선시대 초기(朝鮮 初期)로 거슬러 올라간다.


  고려가 망한 후 불사이군(不事二君)의 충절을 다짐하던 선비들이 송도(松都)에서 은신 하다가 그 중 7명이 정선(지금의 남면 거칠현동 居七賢洞)으로 은거지를 옮기게 되었다. 이들은 지난날 고려왕조에 대한 충절(忠節)을 맹세하여 일생 동안 산나물을 뜯어먹으며 생활을 했다. 그러면서 입지 시절의 회상과 고향에 대한 그리움의 심정(心情)을 한시(漢詩)로 지어 율창(律唱)으로 부르곤 했다. 이들이 지어 비통(悲痛)한 심정을 담아 부르던 시는 마을 사람들이 부르던 소리 가락에 실려 애절함을 더해갔다.


  대원군이 경복궁을 중수하던 조선 후기부터 아리랑이 전국적으로 널리 퍼지게 되자 명맥을 이어온 정선의 소리에 '아리랑 아리랑...'이라는 음율을 붙여 부르면서 '후렴구'로 자리잡게 되었고, 이를 바탕으로 '정선아라리' 또는 ‘정선아리랑'이라는 명칭을 갖게 되었다.


  일제강점기 당시 사람들은 나라를 빼앗긴 민족(民族)의 서러움과 울분을 애절한 가락에 담아 불렀다. 한국전쟁 이후 남북이 분단되자 반공(反共)의 분위기를 드러냈고, 통일에 대한 간절한 염원을 담아 부르기도 했다.


  정선아리랑에는 시대정신이 그대로 배어있다. 그러면서 남녀간의 사랑과 그리움, 남편에 대한 원망, 시집살이의 서러움, 고부간의 갈등, 산골마을의 지난한 삶, 떼타는 일의 고단함과 유희 등 삶의 희노애락(喜怒哀樂)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이렇게 구전되어온 정선아리랑은 1971년 12월 16일 강원도 무형문화재 제1호로 지정되어 강원도의 대표적인 무형문화유산이 되었고, 체계적인 전승과 보전으로 오늘날 우리나라의 수많은 아리랑 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아리랑으로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다.

 


 강원도 감자바우가 제 아무리 유명하다 하더라도 정선아리랑만큼 한국인들의 가슴 속 깊이 강원도의 서정을 연상시키는 것은 드물 것이다.

 “날 좀 보소 날 좀 보소" 나 “와이리 좋노 와이리 좋노"로 시작되는 발랄하면서도 뚝뚝한 밀양아리랑이나 "문경 새재는 왠 고개인가 구부야 구부야 눈물이 난다"는 신명난 진도아리랑은 부르는 이들에게 기교나 화려함을 요구하는데 비해 정선아리랑은 누구에게나 애처로움과 유장한 느낌이 들게 한다.

 일찍이 조선중기의 인문지리학자 이중환(李重煥)은 『택리지(擇里地)』에서 "무릇 나흘동안 길을 걸었는데도 하늘과 해를 볼 수 없었다." 고 정선 땅의 가파른 산세를 강조하기도 했다.

 오랜 옛날부터 해뜨자 해 넘어가는 두메 산골 정선 사람들은 하루하루 고달프고 쓸쓸한 삶을 정선아리랑 가락에 담아 풀어나갔다. 첩첩 산골에 묻혀 사는 설움, 시집살이에 대한 버거움, 어리거나 늙은 남편에 대한 원망과 그리움 등을 구성진 가락으로, 때론 풍자와 해학으로 달래며 살아왔다.

 정선아리랑은 가파른 산비탈에서는 노동의 고통을 덜어주었고, 잔치 때면 어깨춤에 덩실덩실 잘도 넘어가는 소리였다. 새록새록 잠든 손자 손녀에겐 자장가가 되었으며 남녀간엔 말못할 사랑을 주고받는 언어가 되기도 했다.

 숱한 세월을 거쳐오는 동안 시시때때로 만들어진 정선아리랑 가사는 지금 채록된 것만 해도 천여 수가 넘어 세계 단일 민요 가운데 가사가 가장 방대하다는 평가를 받고있다. 그 소리 가운데는 소외되고 가난하면서도 낙천적으로 살아온 정선 사람들의 정서가 시대마다 서로 다른 빛깔로 고스란히 쌓여 삶의 퇴적층을 이루고 있다.

 정선 사람들은 이같은 삶의 소리를 '아라리'라고 부른다. 이렇다할 뚜렷한 이유가 없으면서도 아리랑 보다는 아라리가 좋다고 하는 것은 오랜 세월동안 지켜온 자신들의 소리가 다른 아리랑과는 달라도 뭔가 다르다는 뿌듯한 자부심 때문이다.

 ‘아라리'라고 불려지던 정선아리랑은 1971년 강원도 무형문화재 1호로 지정되어 강원도를 가장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민요가 되었다.

 

 예전 같지는 않지만, 정선 땅 어디를 가더라도 정선아리랑을 듣는 일은 그리 어렵지가 않다. 처음 만난 할아버지 할머니에게 소리를 청하면 누구나 다 못한다고 일단은 주저하지만 부르기 시작하면 구구절절 한도 끝도 없이 계속 이어진다.

 우리나라 아리랑 가운데 정선아리랑이 오랫동안 구전되면서도 명맥을 잘 이어가는데는 음악적으로도 이곳 사람들의 정서와 잘 맞아떨어지기 때문이다. 최고음과 최저음과의 폭이 그다지 크지 않고 음이 길게 늘어지고 단조로워 가락만 귀익으면 즉흥적으로 가사를 만들어 무한정 붙일 수 있다. 특히 가사 자체가 짧게 구성된 두 줄 짜리 형식이라는 점은 사람들로 하여금 쉽게 단어를 바꿔가며 소리를 만들어낼 수 있게 했다.

 따라서 명확한 음계와 가사를 기본으로 하는 서양 음악과는 달리 정선아리랑은 가사 중심의 노래라는 것이다. 기본적으로 알고있는 가사에 말을 바꿔가며 제 나름대로 만들어 부르다 보니 정선아리랑을 "찍어다 붙이면 되는 소리"라고 하는 것이다.

 정선아리랑은 '긴 아리랑'과 '엮음 아리랑'으로 구성되어 있다. '긴 아리랑'은 가사가 느리고 길게 이어지는 소리로 일반적으로 말하는 정선아리랑의 구조는 긴 아리랑이다.

  정선읍내 물레방아는 물살을 안고 도는데
우리 집에 저 멍텅구리는 날 안고 돌줄 왜 몰라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고개로 나를 넘겨주게

 들리는 소리라고 해야 새소리 바람 소리 뿐이던 옛날, 정선아리랑은 삶과 밀접한 내용을 담아 소재로 해서 불려졌다. 따라서 정선아리랑 가사의 내용은 대부분이 남녀간의 사랑과 그리움, 시집살이의 고됨과 서러움 등이었다. 혼자 부를 때는 청승맞으리 만큼 느리고 구성진 소리지만, 여럿이 돌아가면서 부를 때는 해학적이고 원색적인 가사를 자진 가락으로 흥에 겨워 불렀다.

 흔히 정선아리랑의 후렴으로 생각하는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는 가사 뒤에 일정하게 따라붙는 후렴(Refrain)이 아니었다. 소리를 둘이서 메기고 받다가, 또는 여럿이 한마디씩 돌아가며 부르다가 갑자기 가사가 막힌 사람이 판을 깨지 않기 위해 자기 순서가 되어 “아리랑 아리랑 아리리오 아리랑 고개 고개로 나를 넘겨주게” 불렀다. 이 때는 같이 자리한 모두가 함께 불러주어 나누고 어울리는 소리가 되게 했다.

 긴 아리랑 가사에 다 담지 못하는 삶의 응어리는 사설을 이야기하듯 촘촘하게 엮는 ‘엮음아라리’로 불렀다.

  우리 집의 서방님은 잘났던지 못났던지
얽어매고 찍어매고 장치다리 곰배팔이
노가지나무 지게위에 엽전석냥 걸머지고
강릉 삼척에 소금사러 가셨는데
백복령 구비구비 부디 잘다녀오세요

영감은 할멈 치고 할멈은 아치고 아는 개치고 개는 마당치고
마당 웃전에 수양버들은 바람을 휘몰아치는데
우리 집에 저 멍텅구리는 낮잠만 자네


 앞 부분은 사설로 촘촘 엮어가다가 뒤(밑줄 친 부분)에서는 다시 긴 아리랑 가락으로 부르는 엮음 아라리는 서양음악의 랩과 거의 다를 바 없는 해학과 흥겨움의 골계미를 갖추고 있다.

 정선아리랑은 세상살이의 온갖 시름을 다 담아낼 수 있는 커다란 그릇과도 같다. 이 같은 사실은 음악적인 형식이나 천여 수가 넘는 가사의 내용을 눈 여겨 살펴보면 쉽게 알 수 있다.


 정선은 아리랑의 고장이다. 백두대간이 등줄기를 곧추세운 강원도 땅 곳곳에 정선아리랑 가락을 닮은 소리들이 많지만, 정선 땅에서만큼은 ‘아라리’가 들꽃 향기를 낸다. 정선 땅에서는 누구나 소리꾼이 된다. 깊게 패인 노인들의 주름살도 아라리 가락을 닮았고, 빼곡한 산자락과 그 사이를 에돌아 흐르는 강줄기도 아라리 가락을 닮았다.

 투박하고 애처롭게 두메산골 사람들의 삶을 담아내던 정선아리랑은 오랜 세월을 두고 자연스럽게 전국 방방곡곡으로 퍼져갔다. 산을 넘고 물길을 따라 곳곳으로 흘러가 그곳의 문화적인 특성이 더해져 또 다른 이름의 아리랑을 낳았다.

 출가한 남녀, 소리꾼, 장돌뱅이, 화전민 등등 사람의 발길은 정선아리랑을 자연스럽게 확산시키는데 큰 역할을 했다.

 특히 정선 뗏목의 이동은 정선아리랑을 한강 주변 곳곳에 울려 퍼지게 했다. 정선 아우라지를 출발해 서울의 광나루와 마포나루에 이르는데 보름 남짓 걸리는 한강은 정선아리랑이 흘러가는 거대한 물줄기였다.

 정선에서 일천 이백 리 한강 물길을 타고 내려가는 동안 떼꾼들은 적막감을 달래고 무사한 운행을 속으로 빌며 아리랑을 불렀다. 타고난 소리기질을 갖춘 떼꾼의 눈에 보이는 세상은 또 다른 소재가 되어 아리랑 가사로 술술 이어져 나왔다. 강가의 주막에 들러서 거나한 술판을 벌이며 불러대던 소리도 정선아리랑이었다.

 “황새여울 된꼬까리 떼 무사히 지났으니 만지산 전산옥이야 술상차려 놓게”라는 가사가 생겨날 정도로 이름난 영월읍 거운리의 만지 전산옥이 머물던 주막에서부터


 영월 덕포, 단양 꽃거리, 제천 청풍, 충주의 목계 달천, 여주의 이포, 양평의 양수리, 팔당 광나루 뚝섬 서빙고 노량진 마포 등지는 밤만 되면 정선아리랑이 울려 퍼지던 곳이었다.

 한 때는 정선에서 내려오는 뗏목의 수가 얼마나 많았는지 먼발치에 뗏목의 모습이라도 보이면 객주 여자들은 언제 배웠는지 정선아리랑을 불러대며 유혹하는 진풍경이 벌어지기도 했다.

 뗏목은 강변 사람들의 삶을 윤택하게 했고 그 생활경제권 속으로 드나들던 사람들의 몸은 정선아리랑에 쉽게 젖어 들었다.

 한반도를 동서로 가르는 남한강을 수놓았던 떼꾼과 나루를 중심으로 형성된 경제권은 정선아리랑이 우리나라 수많은 아리랑과 민요에 영향을 준 주인공이요 터전이 되었다.

 우리나라 아리랑의 뿌리가 되는 정선아리랑은 이제 정선에 머문 소리만은 아니다. 한국인이 머문 공간이면 그 구성지고 애잔하면서도 해학적인 정서로 인해 쉽게 빠져드는 소리로 사랑을 받고 있다.

 아리랑 고개 고개로 나를 넘겨주게…. 스스로 넘어 가기에도 벅찰 만큼 느껴지던 고개를 넘기 위해 시름겨워 부르던 정선아리랑은 어느덧 아리랑 아리랑 고개를 잘도 넘어가고 있다.

 

[정선아리랑학교에서 발췌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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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지나 이곳에서 그나마 민둥산 갈대를 볼 수

있지만 예년에 보았던 그 갈대 모습과는 영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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곳곳에서 부부님들이 포즈를 취해주는 모습이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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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나무 인근 숲에 들어가 일행들과 점심 식사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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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을 먹고 나니 방금 우리 일행들이 지나온 민둥산 정상에 보도용 방송 헬기가 몇 차례나 배회하며 취재를 하고 어디론가 날아 가는것을 보며 아 저것이 분명 9시 뉴스로 방송이 되겠지 생각을 하였는데 역시 나의 예상이 적중하여 9시 뉴스에 민둥산 억새 한창이라 보도를 하였다고 친구에게서 귀가길에 전화가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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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산길에 만난 억새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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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르긴 해도 억새 군락지를 지자체에서 야생화나 또는 다른 목적으로 용도 변경을 하는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 무성하던 민둥산 억새 군락지지가 변형되어 앙꼬없는 찐빵처럼 억새없는 민둥산 모습을 보여주며 억새 축제를 하고 있는 모습이 아이러니컬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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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냉지 배추밭도 만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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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둥산 일대에는 나무가 없어 단풍을 볼 수 없지만 발구덕 방향으로 하산 구간에

만나는 산과 임야에도 아직 단풍은 멀은듯 싱그러운 푸르름을 자랑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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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모를 소년과 엄마의 산행길 모습

 

들머리 구간에 본 소년과 엄마가 우리 일행들과 앞서거니 뒷서거니 하면서 산행을 하다 하산구간 종료지점에서 다시 만났는데 해맑은 소년 어쩌면 그렇게 깍듯이 인사를 잘하는지  엄마와 소년의 자랑 스러운 모습을 담아 보았다. 나도 내년쯤은 10살되는 손자 아이와 산행 하는 꿈을 꾸면서 말이다. '건강하게 자라다오! 공부도 열심히 하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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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몇 십년만에 수수 이삭을 햇볕에 말리고 있는 모습도 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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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확하여 놓고 아직 털어내지 않은 콩도 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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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을 모두 마치고 발구덕을 출발하여 정선으로 나오던중 소

금강이라 불리우는 곳에서 잠시 기암절경 풍경을 돌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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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영이 할마이와 함께 필자도 한 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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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는 버스 안에서 순간 순간 스쳐 지나가는 아름다운 기암절경을 스냅 사진을 찍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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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선읍내 모 식당에 도착하니 아직 4시 40분이 지나고 있지만 밀리는 귀가 시간을 대비하여 이곳 음식점에서 정선의 맛자랑으로 방송에 소개 된 콧등치기 국수로 저녁 요기를 하고 귀가길에 올라 일요일이면 가다 서다를 의례히 반복하는 강릉 고속도로 구간을 지나 사당역에 도착하니 9시를 조금넘고 있다.이곳에서 일행들과 아쉬운 작별을 하고 나는 또 다시 지하철을 갈아타며 귀가를 하고 보니

 

이날도 밤 11시가 지나고 있다. 이때 부터 다시 아들에게 업무 인계받아 하루종일 빈 자리 밀린 업무 정리하고 다행이 일요일은 밤 12시에 사업장 문을 닫는 관계로 이날도 서부전선 이상없이 근무를 마치고 귀가하니 새벽 1시가 지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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