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강 두지나루 황포돗대를 타고 유람하고 오다.
임진강 물결을 타고 유유히 흐르는 황포돗대 조선시대 “황포돗대”원형 그대로 복원한 황포돗대를 경기도 파주시 적성면 두지리 소재 선착장에서 타고 자장리까지 돌아오는 코스는 분단 50년간 민간인 출입이 통제되었던 임진강에서 60만 년 전 형성된 높이 10m의 임진강 적벽의 수려한 절경을 조망하며 거친 듯 하면서도 잔잔하게 흐르고 있는 임진강 강줄기를 따라 수려한 경관을 조망하며 회귀하는 코스이다.
임진강 !
나에게 임진강은 한창 혈기 왕성하던 현역 시절에 향수가 아련히 서려 있는 그런 강이다 지금은 이미 흘러가버린 40여년전 추억이 되었지만 나는 아주 이따금씩 지금도 그곳에 가면 뭔가 내가 그리는 빛바랜 향수같은 조각이라도 남아 있을것 같은 환상에 아주 이따금씩은 불현듯 차를 달려 임진강에 가 보고 싶은 충동을 느낄때가 훌쩍훌쩍 있다. 그렇게 임진강은 나에게 애증과 애환이 서려있는 잊지못할 추억의 강으로 오랫동안 기억에 남아 있는 그런 강이다.
그런가 하면 임진강은 내 고향 파주에 존재하는 두개의 강 (한강,임진강) 중에 하나이기에 더욱 애착이 가는 강이다.건너고 싶어도 건너지 못하는 강,그런가 하면 우리나라의 많은 실향민 가족들이 반세기를 넘어 60년간이나 두고온 고향과 가족들을 애타게 그리며 가고 싶어 임진강 나루터 길목에 진을 치고 살다 그 소원,꿈 마져 이루지 못하시고 하늘길 떠나시면서도 한이되어 다시 돌아보며 떠나신 임진강 나의 내 친구 부모님이 그러셨구 나의 장인 장모님께서도 임진강가에 서면 바로 코앞 장단땅에 그리운 부모형제들을 두고도 평생을 목을 빼고 기다리시다 이제는 두분 다 그 가느다란 희망 소원마져 놓으신듯 고개를 떨구신 모습으로 살고 계시다.
이렇게 나와 임진강의 이야기는 주변 사람들의 애환서린 이야기와 내가 군대 생활을 할때 이야기가 복합되어 40년이란 세월이 흘러 호랑이 담배피우던 시절의 골통품같은 이야기가 되어 버리고 말았다.
그 시절 나의 군 생활 보직이 임진강 건너에 살고 있는 “민통선북방주민”들에게 출입증 발급 업무를 사단 민사처에 근무 하면서 사단장 직인을 찍어 발행해주는 임무를 수행할때이다.당시에는 임진강을 사이에 두고 경기도 파주시 적성면과 연천군 백학면을 사이에 두고 “틸교”라는 나름대로 꽤 긴 다리가 있었었다. 그러나 지금은 이 다리가 철거되고 새로 '비룡교'라는 다리가 건설되어 있다 당시 이 "틸교" 이 검문소에는 헌병과 보안대 요원이 검문 검색을 하였다.
그러다 보니 이 “틸교” 검문소를 통과 하려면 군인은 물론 민간인 신분의 사람들은 지휘고하를 막론하고 출입증이 있어야 통행을 할 수 있었다.그런데 이때 이 출입증 발급 업무를 현역 신분인 내가 실무자 발급 업무 담당자로 역할을 할때인데 임진강 건너 민통선북방에 지역에 속한 (경기도 연천군 백학면과 왕징면,미산면)일대 일부 주민들은 대부분 1년 유효기간 짜리 출입증을 발급받아 이 “틸교” 검문소를 오갈 수 있었는데
매년 한 해가 지나는 년 말이 오면 일 년에 한 번씩 이 지역 주민들에게 1년 유효 출입증 갱신을 하는 시기가 되어 이때는 민간인들이 출입증 발급처 군부대를 내방하여 발급을 받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실무 현역 담당자들이 직접 해당 마을에 출장을 나가 출입증 발급 업무를 하게 되는데 인구가 많은 마을에서는 때로는 업무 폭주로 이장님댁에 하루,이틀 묵으면서 출입증 발급 업무를 지속하였는데,
무려 1개월여 출장 업무를 하면서 출입증 발급업무를 지속하던 일도 거의 끝나는 마무리 시기가 되면 맨 마지막으로 백학면 원당리에서 2박 3일에 걸처 묵으며 출입증 발급 업무를 처리 할때 나의 전임자들과는 달리 내 고향이 파주이다 보니 그래도 “팔이 안으로 굽는다고 했던가” 파주와 인접한 연천군 백학면 일대 주민들 중 웬만한 결격 사유만 없으면 그다지 까다롭게 굴지 않고 ‘민간인 출입증 발급’을 순조롭게 발급해드리다 보니
이런 나의 모습을 지켜 보시던 원당3리 이장님께서는 늘 나를 늘 고맙게 생각하시며 심지어 그곳 당신 동네 아가씨를 나에게 소개해 주고 싶어 하실 정도로 나를 성실하게 보기도 하셨다. 이렇게 근 1개월여에 걸친 출장 업무를 모두 마치고 사단으로 귀가하기 위하여 버스를 타기 위하여 걸어서 백학면 소재지까지 나가려면 시간이 줄 잡아도 2시간 정도를 더 걸어야 하는데 그 추운 12월달 해질무렵 나혼자 걸어서 백학까지 나가는 것을 염려하신 이장님께서는 쉽지 않으니
윤 병장 그러지 말고 원당에서 임진강변으로 조금만 거스러 올라가 강마루에서 내려다 보면 강폭이 유달리 좁아지면서 수심이 얕아 겨울철이면 의례히 임진강물이 꽁꽁얼게 되는데 마침 그때가 겨울철이 되어 임진강물 전체가 꽁꽁 얼어있는 시기가 되어 그리로 가서 임진강을 건너면 빠르게 부대에 귀대 할 수 있다고 가르쳐 주시며 이장님께서 나를 당신의 자전차 뒤에 싫고와서 내려 주며 상세하게 안내를하여 주고 돌아 가실 정도였다.
이렇게 이장님과 작별을 하고 처음으로 내가 나홀로 임진강 얼음을 타고 걸어서 임진강을 도강하여 건널때 혹시라도 얼음이 깨지게 되면 어떻게 될까? 아무도 보지 않는 임진강에 나홀로 동치미를 담그게 되는것은 아닐까 별에 별 생각이 다 들었지만 그렇게 한 두 번 건너다 보니 차차 익숙해져 의례히 그 다음해도 원당에 들어갈때는 임진강을 얼음을 타고 건너며 재미까지 느끼다 나중에는 스케이트까지 챙겨 임진강 얼음판을 도강하며 원당을 오가곤 했었다.
그러다 어떤때는 임진강 중간쯤 건넜을때 갑자기 얼음판에서 ‘꿍꽝’ 거리는 굉음 소리가 마치 천둥소리처럼 크게 날때면 얼마나 소스라치게 놀라 오도가도 못하고 한참이나 벌벌떨다 나중에 조심조심 살금살금 건너곤 했는데 나중에 알고보니 그 소리는 얼음판이 깨지는 소리가 아니라 얼음판에 실금이 가며 그 실금간틈 사이가 다시 얼고 또 다시 반복하며 그런 현상이 생기는것이라 말씀을 하시며 이장님께서는 그 소리를 얼음판이 방귀뀌는 소리라고 우스게 말씀을 하시기도 하셨다.
그런데 나중에 안일이지만 내가 늘 임진강을 도강하여 다니던 그 임진강 얼음판 코스가 사실은 1968년도 북한의 무장공비 일당이 청아대를 폭파하고 요인 암살을 하기 위하여 임진강을 지나갔던 바로 그 루트를 였다는 사실을 알고 얼마나 감개무량 하던지...아마 나혼자 그 코스를 건널때 북한군 일당들이 지나 다녔던 코스라는 것을 알았다면 내가 아무리 강심장이라 하여도 도저히 나혼자 그 코스를 지나 다닐 수 없었을 것이다.
황포돗대 승선하여 바라본 선착장 인근 폄프실 모습
"틸교"를 헐고 그 자리에 '비룡교'를 세웠다.
이렇게 나에게 미운정 고운정 애환의 추억이 서려있는 그 임진강변에 뜻밖에도 2009년 6월 6일 “적성면 두지리 황포돗대 선착장 마을”로 이사를 오신 외사촌 누님이 계시어 누님댁 방문을 위하여 차를 운전하고 오는데 어랍쇼 바로 이곳이 그 옛날 내가 임진강을 도강하여 건너 다니던 바로 그 위치라는 것을 확인하며 얼마나 반갑고 그 감회가 새롭던지 누님댁에서 친목회를 끝내고 이날 함께 자리한 동생들에게
기왕 우리들이 쉽지않게 그동안 말로만 듣던 임진강 “황포돗대” 나루터에 온김에 “황포돗대”나 한번 타고 가자고 제안을 하니 일행들 너도 나도 모두 대 찬성 하여 11명의 일행들이 두지리 나루터에서 추억속의 “황포돗대”를 처음으로 타고 40여년전 내가 임진강 얼음을 타고 도강하던 그 옛날의 추억을 아련히 그리며 바람부는대로 물결치는대로 “황포돗대”를 타고 임진강위에 내가 떠 있다.
황포돗대의 선주 이시며 임진강 황포돗대 안내를 하시는 선장님
이날이 일요일이라 많은 유람객들이 타고 임진강 유람을 하고 있다.
황포돗대 선내에서 일행들이 즐거워 하고 있는 표정이 아름답습니다.
그런데 우리들이 타고 있는 배 “황포돗대의 선장”이시며 해설을 맡아 설명을 하시는 선주님의 해설에 의하면 이배는 40년전 내가 다녔던 고랑포 사미천지역 인근지역 거북바위까지 황포돗대를 타고 내려가다 수심 40cm지점 되는곳에서 배는 더 아래로 내려가지 못하고 뱃머리를 돌려 다시 두지리 선착장으로 회항을 하게 된다고 안내 방송을 하며 이곳 임진강변 주변에 위치한 유서깊은 암벽과 적벽에대한 설명을 한다.
임진강에는 “괘암”이라는 암벽이 있는데 이곳 암벽에 조선후기 문신이자 ‘진서체’의 동방 제 1일자인 미수 허목 선생의 친필로 추정되는 서체가 장좌리 임진강 절벽 암벽에 새겨져 있다고 위치를 가르쳐 주는데 육안으로는 그 서체를 확인 할 수 는 없었으며 그런가 하면 ‘호루고로성’이라는 곳이 보이는데 이곳은 임진강 북한쪽에 위치한 넓은 벌판위에 우뚝솟아 있어 주민들은 이를 보고 ‘재미산’또는 ‘재미성’이라 부르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 유람선 회항하여 돌아오는 황포돗대에서 차근차근 임진강 주변에 대한 설명을 하고 계신 선장님이 가르치는시는 곳이 “고랑포여울목”이라고 하는데 바로 이곳이 1968년 1월 청와대 폭파와 요인 암살을 위하여 31명의 무장공비가 임진강을 도강하여 청아대까지 입성하었던곳으로 그래서 지금은 “김신조루트”로 명명되었다고 하는데 세월이 흘러 주변 환경이 변하다 보니 이곳도 많이 변해 처음에는 잘 알아볼 수 없었다.
그리고 임진강에는 유일하게 세계적인 지질학계의 관심을 보이고 있는 임진강 적벽 중 자장리 적벽과 원당리 적벽을 유람선에서 가까이 볼 수 있다. 그런가 하면 이 임진강 적벽에는 세계적인 희귀식물인 돌단풍이 서식학고 있어 학계의 관심을 고조 시키고 있다고 한다. 이밖에도 쌍룡바위,코끼리 바위, 원당리 흑도,고랑포여울목,청룡 바위,빨래터 바위,거북바위등 볼거리가 아주 다양하다.
생각지도 않게 누가 일부러 스케쥴을 잡아 두었던것처럼 평소 마음에 늘 한번 가보고 싶었던 임진강을 이날 외사촌 누님댁 방문을 하였다가 우연치 않게 “황포돗대”를 타는 횡재를 하며 친목회를 마치고 내친김에 파평면 마산리에 소재한 부모님 묘소 성묘를 드리고 돌아오는 귀가길이 마치 하늘이라도 날 듯 가볍고 행복하기 짝이 없다.
원당방면 조망
자장리 방면 풍경
코끼리바위라고 한다.
멀리 임진강 자장리 방면 적벽이 보인다.
선장께서 이곳이 그 유명한 자장리 적벽이라 알려 주시는데 역광이라 사진에 '고스트'현상이 나타났다.
배가 아래로 아래로 내려오니 자장리 반대편 방향에 원당리 적벽이 보인다.
암벽에 다닥다닥 붙어 서식하는 돌단풍도 보인다.
원당리 적벽
무슨 폭포라고 했는데 물이 겨우 바위를 적시고 있을뿐이다.그런데
이 물이 임진강 발원지인 사미천에서 흘러 내려오는 물이라고 한다.
이 지점에서 우리 일행을 싫은 황포돗대는 회항을 한다.수심 관계 그리고 군 작전 임무상 더는 내려 가지
못한다.마음은 저 아래 임진강 하류까지 황포돗대가 래왕을 하는날이 오기를 기다리며 아쉽게 돌아와야 한다.
우리일행을 싫은 황포돗대배의 황포돗대만 어려운 포즈로 잡아 보았다.
황포돗대 선장님 말씀에 의하면 강 하류 멀리 높게 보이는 산이 개성의 송악산이라고 한다.
황포돗대 회항길에 돌아본 풍경
자장리 적벽
돌아오는 황포돗대에는 왕년의 여왕 이미자씨의 황포돗대
노래가 구성지게 울려 퍼져 분위기에 젖게 한다.
마지막 석양빛을 깃폭에 걸고 흘러가는 저배는 어디로 가느냐 해풍아 비바람아 불지를 마라 파도소리 구슬프면 이마음도 구슬퍼 아아아 ~ 어데로 가는 배냐 어데로 가는 배냐 황포~돛대야
순풍에 돛을달고 황혼 바람에 떠나가는 저사공 고향이 어데냐 사공아 말해다오 떠나는 뱃길 갈매기야 울지마라 이마음도 서럽다 아아아 ~ 어데로 가는 배냐 어데로 가는 배냐 황포~돛대야
우리 일행을 싫은 황포돗대는 임진강 물살을 가르며 구성진
황포돗대 노래를 싫고 두지리 나룻터로 회항을 하고 있다.
행복이 따로 있나요? 아주 작은 황포돗대에서도 행복이 있는걸요
필자도 황포돗대에서 한 컷의 행복을 남기고 갑니다.
두지나룻터에 황포돗대가 닷을 내리고 일행들이 하나둘 황포돗대에서 빠져 나오고 있어요
황포돗대 선착장 조형물
황포돗대 선착장 휴계소
이 사진은 6.25전 이곳 고랑포구의 옛 사진이다.
그런데 이곳 뜻있는 주민들(쇠꼴마을촌장)과 뜻을 같이 하는 각계 많은 분들이 임진강 가치 재발견을 주장하며 임진강 일대를 동식물들이 잘 살 수 있는 터전을 만들어 주면서 이를 보러오는 관광객들에게 우리 조상들이 혼이 살아있는 생활의 모습을 재현하자는 소리를 높히며 우리에게 가장 한국적인 모습 그것은 6.25전의 (화신백화점,우전국,문방구,약방,여관,점포,곡물검사소,우전시장,굼륭조합)등 온통 초가지붕으로 되어있는 옛 사진 모형의 고랑포구에 황포돗대 바리바리 싣고 출렁이는 임진강물따라 나붓기는 황포돗대를 재현하고
우리 조상들이 사는 옛 모습을 재현하여 이 초가집 속에 외국인들이 쉴 수 있는 한국형 홈스테이장으로 개발을 하자며 목청을 높이고 있어 나는 더욱 그분들의 옛 고랑포구 재현의 의미는 무엇인가 깊이 생각을 하며 들여다 보았는데 이분들의 주장은 '두바이처럼 수천억을 들여 이곳에 만들어 놓는다고 우리의 상징인 한국적인 것이 되겠는가? 우리 국민들이 중동 예민에 무엇을 보러갔기에 그토록 처참한 사건이 나는가? 예멘의 상징인 토담집을 보로간 것이다.이집트엔 스핑크스,프랑스엔 에펠타,영국런던에 런던브릿지,미국은 나이아가라 폭포처럼
한국을 ?는 많은 관광객들에게 DMZ 임진강 땅굴만 보여줄 것이 아니라 한국적인 상징물인 그 무엇인가 보여 줄것으로 그것은 손때 묻지 않은 천혜의 보고인 DMZ 임진강에 동식물들이 아우러지는 우리 조상들이 살던 모습의 고랑포구를 재현 가장 한국적인 관광코스로 개발할것을 각계에 건의를 하는 중이었다. 그동안 나는 내 고향 파주에 대하여 미처 이런 생각을 못하였는데 이번 우연치 않게 "황포돗대" 시승하고 내 눈으로 돌아 본 이분들의 DMZ프로그램과 연계한 고랑포구를 다시 옛 모형을 재현하여 한국적 관광화하자는 견해를 보며
우리나라처럼 좁은땅 광관자원이 부족한 나라에서 가장 한국적이며 소박학 문화컨텐츠가 아닌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으리으리하고 번쩍번쩍 빛나는 호텔대신 우리땅에서 농사로 걷운 짚으로 초가지붕을 이은 초가집에서 외국 관광객들이 묵으며 한국 전통음식으로 대접을 하고 반세기가 넘어 60년간이나 DMZ 비무장 지대가 되어 자연 그대로 살아 숨쉬는 생태계를 보존하며 이를 광광 상품화 한다는 이지역 뜻 있는 주민들의 계획이 결코 무주공산으로 그칠 공상의 꿈이 아니라 가장 현실 가능한 신선한 프로젝트라는데 공감을 하며 나에 힘이 도움이 될 수 있다면 적극 내 고향 파주지역 주민들께서 추진하고 있는 사업에 동참을 하고 싶다.
혹시라도 내가 다녀온 임진강 “황포돗대”시승을 원하시는 분들은 참고 하시기 바랍니다.
승용차를 이용할 경우 ‘네비게이션’에 ‘경기도 파주시 적성면 두지리 216-5’를 치고 오시면 되며, 대중교통편 이용시 임진각에서 매 시간 정시에 “황포돗대” 선착장행 버스가 출발을 하는데 요금은 승선비 포함 10,000원을 받고 있으며 또한 선착장으로 직접 오시는 분들은 성인 8,000원 소인 6,000원 요금을 받고 있다. 이밖에 자세한 질문을 하려면 문의전화 031-958-2557~8번으로 하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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