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말이지 올 겨울은 남들은 그렇게도 운좋게 잘도 만나게 되는 눈 산행길을 한번도 만나지 못하고 조금은 허무한 마음으로 또 한 해를 보내며 설 명절을 보내야 한다는 생각을 하니 너무도 아쉬움이 남아 섣달 그믐날이면 남들은 신바람을 앉고 고향가는 차를 타고 달려갈텐데 ... 하는 부러움을 앉고 섣달 그믐날도 꼬박 근무를 하지요 남들처럼 고향이라도 멀리 있다면 고향간다는 핑계라도 대고 내가 운영하는 독서실 문을 닫고 달려 갈 수 있으련만 그넘의 고향 마져도 넘어지면 코 닿을 차로 달려가면 한 시간을 조금 더 달려가면 그만이니 나 설 기분 내자고 한창 열 올리며 공부를 하여야 할 학생들 면학분위기 저해를 주면 안되지요
그래서 나에겐 오직 낙이 있다면 늘 어린 시절 소풍갈날 잡아놓고 마냥 정신없이 손꼽아 기다리는 동심이 되어 그넘의 수요산행일만 하두 손꼽아 기다리다 보니 이제 나이를 한 살 더 먹어서인가요 아니면 노인성 질환의 일종인가요? 어떤때는 월요일만 되면 다음날이 산행을 가는 수요일처럼 착각이되어 나 혼자 배낭을 챙기다 망신을 당하는 일까지 더러더러 생기고 있네요 그렇게 몇일전 부터 배낭을 꾸려놓고 기다리 있다가 만난 수요산행길 이날은 몇 년전 한 번 다녀온 삼성산 산행길인데 늘 나를 인도하는 조대장께서 이날도 또 또 다른 삼성산 산행코스를 보여줄것이란 기대를 잔뜩하며
일행들과 만나기로 한 관악역에 도착을 하니 설 명절 연휴 다음날이건만 그래도 이날도 또 18명이란 인원들이 만나 반가운 인사를 나누고 안양 유원지 방향을 향하여 가고 있는데 아니 하늘에 웬 스모그인지 아니면 황사인지 또 아니면 안개인지 하늘이 온통 희뿌연 모습으로 멀리 바라보이는 산들을 바라보니 한 마디로 조망이 영 아니네요 그렇게 기대를 하였던 눈길 산행은 아니더라도 하늘 만큼이라도 파란 하늘을 만날 수 있었으면 산행을 하며 그렇치 않아도 아름다운 삼성산 암릉길 산행길 사진이라도 예쁘게 찍을 수 있을텐데 하는 기대를 하였건만 이날 산행길은 또 하늘도 우리들 가는길을 열어 주지 않으실 모양입니다
아무래도 올 봄은 예년에 비하여 더 많은 황사가 중국에서 몰려 올것이란 예보대로 벌써 미세한 황사의 현상이 나타나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을 하니 증말이지 중국넘들 땜시 우리나라 봄이면 깩 소리 한 마디 못하고 중국의 황사 바람에 피해를 당하는 재산적 손실이 이루 말 할 수 없었는데 더 하면 올 봄은 증말 얼마나 더 그넘의 중국풍 황사에 시달려야 할지 정말 난감하기 짝이 없네요 그러니 인근에 있는 우리나라가 이 정도 피해를 입을 정도이니 정작 당사국 중국 국민들은 얼마나 고통을 겪고 있을까를 생각하여 보면 벌써 봄은 아직인데도 숨이 턱턱 막히는듯한 기분이 드네요 그러니 이날 산행도 재빛 하늘에 조망은 영 아니니 산행 들머리 구간 부터 영 기분이 아닌 상태로 산행을 시작하게 되네요
야! 이 중국 떼넘들아! 올림픽 치르려면 당장 그 사막에 나무 좀 심어라 왜?
니넘들 땜시 애꾸지게 우리나라가 황사로 곤욕을 치러야 한단 말이냐?

이곳 등로 구간은 안양시가 명상의 숲을 조성하여 시민들에게 다양한 체험을
할 수 있도록 많은 조형물들을 세워 시민들을 배려하는 모습이 아름답고 좋네요

소나무숲으로 이루어진 계단길 피톤치드 향이 술술 피어 오르는 오전 10시때 이지요

마치 우주선 캡슐을 탄듯한 착각을 하게 하는 조형물

네델란드 작가 작품[전망대]
높이 15m 빙글 빙글 걸어 전망대 꼭대기까지 올라가는 거리가 145m 나 되네요
전망대 정상에 오르면 안양시는 물론 삼성산과 일대를 한 눈에 조망 할 수 있어요

기와로된 움집 나홀로 산행이 었다면 잠시 내려가 확인을 하고 싶지만 달려가는 일행들 놓칠세라 아쉽네요

이곳 삼성산 들머리 구간도 또 빼놓치 않고 암릉길로 이어지고 있었어요

바로 건너편 367봉 제 2 전망대 조망이 좋치 않아 줌으로 당겨봤어요

하지만 이곳 삼성산 구간에 걸쳐 이어지고 있는 암릉길은 다행이 바위가 둥글둥글형에 손으로 바위를
짚었을때 미끄럼이 없고 암벽을 타기에 아주 편안한 촉감을 주어 암벽을 타는데 안전하게 느껴지네요

초등학교 5학년 거형석군이 산행길 내내 조대장 뒤를 잘도 따라 암릉길 바위구간을 오르고 있네요


이곳 절고개 구간에 오면 늘 막걸리를 팔고 있는 목로주점이 있었는데 이날은 보이질 않네요

직벽으로 이루어진 암벽을 우회하지 않고 조대장이 암벽을 오르며 시범을 보이고 있어요

한 시절에는 이렇게 암릉 구간을 만나면 다리가 후들거려 옴짝달짝을 하지 못하고 자지러지듯 했던 시절이 있었는데 위대한 산행
길 지도자 조대장을 만나 산행을 하며 이제는 산행길에 적당히는 암릉구간이 있어야 재미를 느낄 정도로 내가 많은 발전을 했네요

무서븐 아줌마 산님들 남자들 보다 더 적극적이며 열정적이 모습을 보여주며 산행을 하고 있어요

첩첩산중이네요 오르고 나면 또 나타나는 암벽구간 하지만 누구도 불만을 없어요

건너편 삼막사에서는 천도제를 올리는듯 염불 소리가 산행길 내내 삼성산 일대를 온통 울리고 있네요

모처럼 만난 육산길 그런데 이미 겨울이 녹아내려 질펀한 등로가 장난 아니
네요 차라리 힘은 들어도 암릉길이 훨씬 더 산행하기가 편안하게 느껴 지네요

저 ~ 소나무

상불암 국기봉에 휘날리는 태극기 아래서...

암봉을 넘고 나면 또 지속하여 이어지는 칼날같은 암릉구간

하나도 안전 둘도 안전 일행들을 안전하게 통과 하도록 후미에서 도와주고 맨 나중에 암릉을 타고 내려오는 거시기님

이곳 상불암 이정표를 지나 아주 넓은 오솔길 숲에서 일행들이 둘러 앉아 금강산도 식후경 점심 식사를 하고서 본래의 계획은 그냥 깃대봉을 향하여 진행 하려 하였으나 이날 산행이 다소 빠르게 진행이 되어 우리들은 다시 저 아래 한 참이나 내려다 보이는 삼막사로 하산하듯 떨어져 내려가 삼막사 경내를 돌아보기며 해우소에 용변도 보고 이어지는 산행길을 한 템보 정리를 하며 삼막사 경내를 돌아보게 되지요

칠보전

옛 산행자료 참조
그런데 이 세분의 부처님 코를 만지면 아들을 낳는다고 하여 불자들이 어찌나 부처님 코를 만지고 쓰다듬었는지 부처님 코가 납작하게 달아있고 딸기코가 되어 있더라고요 / 믿거나 말거나 아기 못 낳는 사람들이 와서 소원을 빌면 자식을 낳을 수 있다는 전설이 전해오고 있어요

건강한 삼막사의 명바위 남근바위
그런데 그 옆에는 정말 리헐하게 생각되는 여근석 바위도 있어요 무엇 보다도 여근석에는 물이 흥건히 고여있었으며 어디 그뿐인가요
어떤 사람들이 그 여 심속에 동전을 꽤나 많이 올려 놓고 소원을 빈듯한 흔적을 볼 수 있네요 아들딸 구분 말고 쑥쑥 많이들 나세요 ㅋㅋ

남근석과 여근석이 있는 칠성각은 삼막사에서도 조금 더 올라가야 하는데 마애삼존불이 있는 곳에 석굴사원 형태로 칠보전을 조성하였다. 아담한 규모가 예쁘기도 할뿐더러 남근석, 여근석과 함께 자리하여 불교신앙과 더불어 민간신앙의 소박한 일면을 보여주는 재미난 곳이다.
여근석에 고인물은 마르는 법이 없다고...
사실 다산(多産)과 풍요를 상징하는 남근석이나 여근석을 숭배하는 우리네 민간신앙은 많은 곳에서 찾아 볼 수가 있다. 그러나 주로 남근석 위주이고 여근석이 보란 듯이 자리한 곳은 드문 것이 사실이다.
특히 남근석과 나란히 하고 있는 이 삼막사의 여근석에는 적당한 빗물이 고여 있는데 이곳을 지나는 등산객의 말을 빌리자면 항상 고여있어 절대 마르는 법이 없다고 한다. 이쯤 되면 영험하기론 두말 할 필요가 없는 남녀근석이 틀림이 없어 보인다.
원효대사가 삼막사를 창건하기 전서부터 민간신앙의 숭배대상이었다는 안내문에는 사월초파일과 칠월칠석날에는 신성한 뜻(?)을 품고 전국 각지에서 많은 사람들이 모여든다는 말이 덧붙여져 있었다.
삼막사에서 내려오면 1번 국도와 합류하는 지점에 있는 칡냉면집은 살얼음이 두텁게 언 상태로 나오는데 산행후의 허기짐을 시원한 풍미로 만끽할 수 있어 많은 등산객들과 인근 손님들이 찾는 곳이다


삼막사 가는길

三龜字



삼막사 3층 석탑
2층 기단위에 3층 석탑을 올린 이 탑은 하층 기단과 상층 기단에는 아무런 조각이 없다 탑 몸돌과 지붕 몸돌은 각각 하나의 돌로 구성 되어있다 탑 몸돌의 각 면에는 모서리 기둥이 새겨져 있으며 지붕돌의 아래에는 각 층 마다 3층의 지붕 받침이 있으며 낙수면의 경사가 급하다 두꺼운 처마는 수평으로 처리 되었고 전각으리 반전도 뚜렸하지 않다 상륜부는 1979년에 보수한 것이다

삼막사 경내
서울과 수도권 시민들의 휴식처인 관악산. 그 관악산 줄기가 끝나는 곳에 삼성산(455m)이라는 작은 봉우리를 만들었다. 또 삼성산은 삼막사라는 유서깊은 사찰을 품고있다. 신라 문무왕 시절 원효, 의상, 윤필 3분의 성인이 막을 치고 수도를 하였다는 일화가 있다고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그럼에도 관악산이나 연주암에 가려진 탓일까 인근 주민들을 제외하곤 그다지 알려지지 않은 이 곳. 그러나 이 산은 시원한 계곡을 끼고 있을뿐더러 한번 오르면 탁 트인 조망이 일품이라 한번 찾은 이들은 곧 다시 찾는다고 한다. 많은 등산객이 몰리는 휴일에는 삼막사에서 점심공양을 무료로 제공하기도 해 많은 사람들이 점심까지 이곳에서 해결하고 내려가곤 한다. 더구나 이 삼막사 칠성각 앞에는 기묘한 남근석과 여근석이 나란히 마주하고 있어서 여행객들에게 묘한 흥미를 일으키게 한다.

육관음전

범종루


일행들에게 삼막사에 대한 소개를 하고 있어요
삼막사(三幕寺) 전통사찰 9호
삼막사는 지금으로 부터 1300녀년전 신라 문무와 17년(677)에 원효,의상,윤필등 세성인이 암자를 지어 정진한 것이 삼막사의 근본이며 삼성산이라도 이름도 이때 만들어 졌다고 한다.그후 도선국사(827 ~ 989)가 불상을 모셔 관음사로 부르다 사찰이 융성해지며 도량의 짜임이 중국 소주의 삼막사를 닮아 삼막사(三邈寺)를고 부르다 언제 부터인가 삼막(三幕)으로 바뀌었다
고려 충목왕 4년(1348) 나옹대사와 인도 승려 지공이 이곳으로 오니 선풍이 크게 일었고 조선조 무학대사에 의하여 동쪽에 불암사, 서쪽의 진관사, 북쪽의 승가사와 함께 한양 남쪽의 비보사찰로 그 역활을 하였다. 이후 태종때 주중창이 있었으며 임진왜란시 왜구가 침범하여 절에 불을 질렀으나 법당건물이 타지않아 왜구가 참회하고 떠났다고 전해진다.근대에는 종두법을 실시한 지석영의 형 지운영이 이곳에 백련암을 지어 은거 하였다.
현재 조선후기 건축양식인 망해루와명왕전(경기도 문화재 자료 제 60호)등이 있으며 고려시대 삼층석탑인 일면 살례탑(경기도 유형문화재 제 112호) 과 사적비(경기도 유형문화재 제 125호) 남녀근석(경기도 민속자료 제 3호) 마에삼존불(경기도 유형문화재 제94호)과 삼귀자,감로정등 다수의 비지정 문화재가 있어 삼막사의 역사를 알려주고 있다

반월암도 지나고

마에부도도 만나고


삼성산 정상 송신소


기암


조망


깃대봉 정상이 보이네요

깃대봉 정상에서 멀리 관악산 연화봉이 보이지만 조망이 흐려 줌으로 당겨 보았어요

외로운 기암

소나무 사이로 본 연화봉

이곳 구간 암릉길은 각별히 세심한 주의가 필요 하지요

조심 조심 안전하게


넘고 또 넘고 넘어도 이어지는 암릉길에서

기암

번뇌바위
제2 광장에서 서쪽으로 오르면 만날 수 있어요 / 근디 요즘 만우님은 두문 불출이네 보고 싶은데



코끼리 바위


제 2광장 방향으로 완만한 하산길

이제는 하산길 대부분이 편안안 등로길로 이어지고 있어요


참나무 숲도 지나고


드디어 일행들이 이날 산행의 날머리 구간인 관악산 공원 일주문을 나서는것으로 이날의 모든 산행이 끝이 나지요

산행이 끝난후 우리들은 서울대 입구에서 신림역 가는 버스를 갈아타고 하차하여 지난 년말 한국의 산하 운영자님과 관리자님을 모시고 송년회를 하였던 명일집에 들려 이날도 하루 산행을 총 평가를 하고 또 다음 산행지 춘천 용화산에서 만날것을 약속을 하며 가벼운 뒷풀이로 이슬에 맥주 두어잔을 마시고 일행들 각자의 일상으로 돌아 왔지요 그러다 보니 이날 산행이 조금 일찍 끝나게 되어 사무실에 도착을 하니 울 도영 할마이 아니 무슨 바람이 불어서 이렇게 일찍 돌아 오셨느냐며 이죽 거리는 비아냥인지 아니면 진심인지 빨리 올라가 샤워 하고 오시라는 친절을 접하고 보니 증말 사람 오래 살고 볼 일이란 생각을 하게 되네요 ㅋㅋㅋ 도영 할마이 감솨 함돠 그리고 이어서 난 새벽 2시까지 꼬박 서부전선 이상없이 근무를 마치고 귀가를 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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