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 10. 7. 23:50ㆍ☎사람사는이야기방☎
본가 추석맞이 제례를 마치고 저녁에는 처가댁 방문길
올 추석은 제겐 아주 쓸쓸한 추석이었어요 제게 손위 한 분 계시던 큰 형님을 여의고 그리고 또 한 분의 큰 누님이 계신데 조상님 묘소에 제례를 모시고 누님댁을 방문하고 보니 그렇게도 정정하시던 큰 누님께서 너무도 안색이 안좋으시고 병색이 완연하신 모습을 뵙고 돌아서는 마음은 아내와 아들 아이 앞에 이루 말로 다 할 수 없었지만 제겐 너무나 슬픈 추석날이 지나가고 있네요 하지만 이미 한 다리건너 동생의 입장이다 보니 누님의 아들 내외에게 누님의 안위를 당부 드리고
또 다시 1975년도 결혼하여 지금까지 한번도 빠지지 않고 의례껏 찿아가 뵙는 처가댁 방문길 장인 장모님을 뵈러 달려 가게 되지요 우리 장인 장모님 개성인근에 사셨는데 6.25사변으로 인하여 이웃 마을에서 서둘러 결혼이라 이름짓기 식으로 결혼을 하시고 장모님은 당신의 인척은 물론 친인척 분들도 한분도 아니 계신 이남 지금의 경기도 고양시로 피난을 나오시어 그곳에 뿌리를 내리고 살아 오시는 동안 슬하에 2남 3녀를 두어 출가를 시켜
그 자녀들 슬하에 8명(친손자 2명) 외손자(6명)을 두시는 세월을 사시면서도 우리 장모님 당신의 친정집 한번 가보지 못하시고 홀홀단신 얼떨결에 결혼하신 장인 어르신 따라 남하여 사시면서 그 살아오신 장모님 인생을 생각하면 말씀은 다 하시지지 못하시만 얼마나 가슴 앓이를 하시며 살아 오셨는지 내가 장모님에겐 큰 사위인데 아직도 저에겐 하대말씀을 쓰지 않으실 정도로 착하게 사시는 분이시지요
언제나 온순하시고 당신은 늘 감추시고 내놓지 않으시는 지고지순하신 우리 장모님 그 외로운 장모님 뵈러 결혼 31년간 줄곧 한번도 빠지지 않고 찿아가고 있지요 내가 처음 결혼 하였을 당시 75년도에는 지금 보다 훨씬 형편이 많이 힘이 드셨지요 그래서 인가요 열식구 벌지 말고 한 식구 입 더랬다는 옛말처럼 당신의 큰딸 나의 아내를 나에게 23살에 시집을 보내셨으니 우리 장모님 그 어린 당신의 딸 큰 사위라고 짜리몽땅에 별 볼일없는 직업도 변변치 못한 사람에게 시집을 보내실 정도였으니
우리 장모님 큰 딸 시집 보내고 얼마나 가슴앓이를 하셨을지 그 심정 내가 자식을 낳아 키우다 보니 장모님 맘을 더욱 깊이 이해를 할 것 같습니다 그렇게 고생 고생 죽도록 하신 장모님을 추석이다 생신이다 설명절이다 일년에 고작 대 여섯번 방문을 하면서도 두분 장인어르신 장모님 흡족한 마음에 선물 한번 사들고 가지 못하는 못난 큰 사위된 마음도 늘 오늘같이 처가댁을 방문을 하는날은 어깨가 처지네요 마음은 늘 잘 하고 싶은데 ~~~두분 생존하여 계실때 한 몫을 해야 될터인데...
장인 장모님 이 큰 사위넘 조금만 더 어깨 펼 수 있을때 까지 늘 건강 유의 하시며 두분 행복하게 사세요 꼭 한번 두분께 보란듯이 효도하고 싶습니다 추석날이라 큰 사위 작은사위 막내사위 가족 온다고 늘 분주하게 맛있는 음식을 장만하시는 우리 장모님 그리고 처남들과 처남의 댁 정말 사위란 이름이 부끄러울 정도로 늘 과분한 환대에 감사를 하지요
올해가 장인 어르신 팔순이시라는데 큰 사위 되어 가지고 당당하게 팔 순 잔치상 하나 차려드리지 못하는 마음이 넘넘 부끄럽고 죄송하네요 그 마음 작은사위 막내사위 딸들 모두 하나같은데 올해는 유난히도 세상살기가 많이 힘이 들어 선뜻 누구하나 나서질 못하네요 사실은 내가 앞장서 나서면 다들 따라 올터인데도 말입니다 장인 어르신께 한번 지나가신 팔순은 인생에 두번 다시는 오지 않은 기회라는것을 뻔히도 잘 알면서 ~~~
장인 장모님 죄송합니다 용서하여 주십시요
처가댁에서의 밤 휘엉청 밝은 추석 보름달이 떠오르고 있네요
우리 처가댁 마을은 서울과 인접하여 있으면서도 그린벨트지
역이 되어 아직도 수십년전에 그 오막살이집 그대로 이지요
그래서 처개댁 마을의 대 보름달도 더욱 외롭게 뜨는것 같은 마음이지요
캄캄한밤 졸고 있는 농촌 가로등
처가댁 창문에도 불빛이 비춰오고 있지요
김씨네 세딸들
장모님께서 맛있게 차려내신 딸 식구들 접대에 한잔들 하신 김씨댁 세딸들 내친김에 한 잔씩들 걸치시고 태산이 넢다 하되 하늘 아래 뫼이로다 되지도 않는 시조를 읊어대며 아무래도 한 바지락 퍼질러댈것 같은 험악한 분위기네요 그래서 그 험악한 분위기 주제파악한 나 얼릉 우리들 모처럼 산책이라도 하고 오자고 들쑤석 거리니 초록은 동색이라더니 얼씨구 좋다 지화자 좋다 따라 나서지요
근디 웃기는건 나의 쬘병 둘째 막내 사위들이 마치 죽으러 도살장 끌려가는 쇠새끼들 모양 목을 맬수는 없어 하는양대로 그냥 두고 따라오게 맹그니 시상에 한 1킬로는 떨어져 느림보 거북이 걸음을 걷는지 아니며 뒤로 가고 있는지 능률이 나지 않은 약간 산책을 어귀적 어귀적 따라 오고 있네요
막내 처재의 아들딸들과 함께
막내처재 아이들(하영 예영)그리고 우리 손자넘 도영이와 함께
엄마 아빠들은 야간 산책 보내놓고 저희들끼리 무궁화 꽃이 피었
습니다 오락으로 도심의 아이들이 시골 마을에 흠뻑 빠져들었네요
동서와 막내처남
이어지는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큰 처남의 아들 대유가 아주 동생들을 잘 데리고 놉니다 대유는 올해 고 3인데도
대학은 일찍암치 수시로 합격을 해 놓았으니 여유만만한 모습이 아름답습니다
으이그 울 도영이가 술래네요
야간 산책으로 동네 인근 돌자고 했지만
왜 인지 아내와 처재들이 이곳 마을에서 자라며 다녔던 초등학교가 보고 싶어 나는 무조건 왕복 10여킬로가 넘는 초등하교로 가려니 일행들 모두가 반대를 하네요 하지만 나는 늘 앞장을 서 학교가 어디인지도 모르고 그쪽 방향으로 선두로 가고 있으니 아내도 처재들도 동서들도 아들 아이도 모두들 따라 오네요
아내가 코 찔찔 흘리며 다녔던 홍도 초등학교
아마도 그래서 아내는 홍도야 울지마라가 되어 뻑
하면 찔찔 잘짜는 찔찔이 여편네가 됬능가 봅니다
그렇게 안 온다고 아니 달밤에 체조를 하는거야 왜 난데 없이 홍도 초등학교는 가냐며 발버두을 치던 아내 결국 자기가 다닌 초등학교에 40여년만에 그것도 아닌 밤중에 남푠들 델구 찿아와 화환한 웃음을 지으며 감회가 새롭다 하네요
세딸 그리고 세 사위들과 함께 홍도 초등학교정에서 ~~~아 이곳에 난 빠졌네요
대단한 사람들의 홍도 초등학교 방문을 기념하면서 ~~~
처재와 함께 그네도 뛰어 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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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내처재와 막내 동서가 달밤에 체조를 하고 있지요
큰 언니 작은 언니도 달밤에 체조를 하고요
돌리고 돌리고
돌리고 돌리고 ~~~
얼레리 꼴레리
야간 디카 촬영의 한계를 극복한 3자매 / 그녀들은 퍽이나 용감했어요
학교 인근 마을대한 체육대회가 지난 후
외로운 가로등
이렇게 우리들은 아내의 초등학교를 기습적으로 야간에 방문을 하였었지요 낮에 방문을 하였었으면 교장 선생님도 만나 뵙고 아내와 처재들의 학력 증명서라도 한통씩 떼어 가지고 올 수 도 있었는데 울 도영 할마이 초딩 학교 코 찔찔 흘리고 다닐때 혹시 바닥에서 일등은 하지 않았는지? 그것도 알고 싶고 교우관계는 어땠는지 그것도 알고 싶고 ~~~ 다음번엔 꼭 교장 성상님을 만나뵈고 와야지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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