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자 아이(도영이) 손 잡고 용산국립박물관을 다녀 왔지요[사진]

2006. 7. 10. 18:45☎사람사는이야기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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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자 아이 손 잡고 용산국립박물관을 찿아서


 

 

 

 

 

 

왕관

 

 

 

 

 

 

 

 

국립중앙박물관

 

지난 60년간 민족문화의 전당으로서 역할을 수행해온 국립중앙박물관이 2005년 10월 28일 용산으로 이전 · 개관하게 되는 역사적인 순간을 맞이하여 홈페이지를 새롭게 개편하였습니다. 용산 새 국립중앙박물관은 세계적인 규모에 걸맞게 우리의 문화유산뿐만 아니라 중국, 일본, 인도네시아, 중앙아시아 등 주변 문화와의 연계 속에서 우리 문화를 조명할 수 있는 박물관으로 거듭나기 위해 아시아관을 신설하였고, 활기찬 국제 문화교류를 통해 세계적인 박물관으로 국민 여러분께 다가갈 것입니다.

 

또한 박물관 본래의 기능 중에서 교육 기능을 강화하기 위해 교육시설을 대폭 확대하고,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을 준비하였으며, 어린이박물관을 새롭게 신설하였습니다. 새 박물관에서는 다양하고 새로워진 전시 관람은 물론 편안하고 즐거운 마음으로 각종 음악회, 연극 등의 공연을 관람하실 수 있도록 전문공연장인 극장 ‘용’도 운영합니다. 복합문화공간으로 태어나는 용산 새 박물관의 개관을 기다려 주신 국민 여러분들께 감사드리며, 앞으로도 국립중앙박물관에 대한 깊은 관심과 사랑을 부탁드립니다.

 

이용시간평일:09:00-18:00, 토요일:09:00-19:00

 

 

국립중앙박물관 어린이박물관


 

국립중앙박물관 [어린이 박물관]은 아이들이 직접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지며, 가슴으로 느끼는 고고학 중심의 체험식(Hands-on) 박물관입니다. 국립중앙박물관의 유물과 똑같이 만들어진 유물을 직접 만져볼 수 있답니다. 어린이들과 가족을 위한 열려있는 전시학습의 고간, 유물을 보는 새로운 눈이 열립니다. 어린이들이 우리문화유산에 대한 흥미와 호기심을 갖고 보다 능동적으로 관찰하고 체험하며 배울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이는 국립중앙박물관과 같은 대규모 박물관에서는 세계에서도 그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것입니다. 다양한 체험식 전시품과 교육프로그램을 통해 초등학생들은 옛사람의 삶과 지혜를 배우고 익히는 유익한 기회가 될 것입니다.

<유의사항
어린이박물관은 체험중심의 박물관이기 때문에 관람인원을 제한합니다. 인터넷 사전예약은 개인 및 단체가 1~100명까지 가능합니다. 현장 접수 관람객은 관람당일 박물관 매표소에서 관람권을 발급받으셔야 하며, 인터넷으로 예약하신 관람객도 가져오신 접수증을 매표소에 보여주고 관람권을 구입해야 합니다. 전시장에 관람객 수가 많은 경우에는 자리가 날 때까지 기다리셔야 합니다.

 

이용시간평일:09:00-18:00, 토요일:09:00-18:00, 일요일:09:00-18:00, 휴관 : 매주 월요일, 1월 1일

부가정보예약가능, 주차가능, 카드가능, 인터넷 사전예약 - 개인 및 단체 1~100명까지 가능

 

국립중앙박물관에 대한 추가 자료

 

한국 최대 규모의 대표적 국립박물관. 소장 유물은 15만 2030점(2004년 5월)이다. 현재는 국립중앙박물관이 2005년 10월 28일 용산으로 이전 · 개관하게 되는 역사적인 순간을 맞이하였다.국립중앙박물관은 역사의 고증 또는 문화예술의 참고가 될 만한 유형문화재를 수집 보관하여 일반에게 공개 관람시키는 한편, 유적·유물 등을 조사, 연구하기 위하여 문화관광부장관 소속하에 설치되었다.

조직은 관장 밑에 학예연구실과 사무국이 있는데, 학예연구실은 유물관리부·고고부·미술부·역사부로, 사무국은 섭외교육과·총무과·관리과로 나뉘어 있다. 그 밖에 도서실을 운영하고 있는데, 고고학·미술사·역사학 분야에서 8만여 책의 자료를 소장하고 있는 전문도서관으로, 2004년 7월 1일 용산 새 박물관 4층에서 재개관하였다.

한국 최초의 박물관은 1908년(순종 2) 창경궁 내에 설치된 이왕가박물관(李王家博物館)으로 왕실의 재정 뒷받침을 받아 고미술품과 고고유물을 수집하여 1909년 일반에게 공개하였다. 1915년 조선총독부는 경복궁 안에 건립했던 미술관을 조선총독부박물관으로 개관하였으며, 1938년에는 덕수궁 석조전 서남쪽에 이왕가미술관을 건립하여 이왕가박물관에 있던 미술품을 덕수궁으로 옮겨와 일본 근대미술품과 함께 전시하였다. 이 미술관은 8·15광복 이후 문화재관리국 산하의 덕수궁미술관으로 운영되다가 1969년 국립중앙박물관에 통합되었다.

지방에서는 1926년 경주고적보존회 전시관이 조선총독부박물관 경주분관으로 편입되었고, 1939년과 1940년에 부여와 공주 고적보존회 전시관들도 각각 분관으로 편입되었다. 광복 후 1945년 12월 조선총독부박물관을 인수하여 국립박물관으로 개관하였다. 1950년 6·25전쟁 때는 소장품을 부산으로 옮겨 분산시켰고, 서울 남산에 있던 국립민족박물관을 국립박물관 남산분관으로 흡수 통합하였다.

전쟁 후 1953년 경복궁으로 복귀했다가 본관이 남산분관 자리로 이전하였다. 1955년 남산에서 덕수궁 석조전으로 이전하였고, 1972년 지금의 <국립중앙박물관>으로 명칭 변경하고 경복궁 안에 새 박물관을 건립 이전하였다. 한편 1975년 8월에는 지방분관을 지방박물관으로 독립시켜 문화관광부 직속기관으로 개편하였다.

1986년 8월 당시 중앙청(옛 조선총독부) 건물을 고쳐 이전 개관하였다가 1995년 8월 옛 조선총독부 건물이 철거되자, 중앙박물관도 이전을 추진하여 용산구 용산동6가에 새 박물관을 짓기로 결정하였다. 용산 새 박물관이 개관할 때까지 경복궁내 중앙박물관 사회교육원을 증·개축하여 전시관으로 사용하기로 하고 1996년 12월 개관하였다. 2004년 10월에는 2005년 10월까지 약 1년 동안 용산 새 박물관 개관준비로 국립중앙박물관이 휴관에 들어갔다.

 

용산 새 박물관은 지상 6층 지하 1층의 연건평 4만 616평으로 1만 4000여 점의 유물을 전시할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 소장 유물은 국내의 역사·고고학·미술사·민속 등에 관한 자료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 그 밖에도 민족항일기에 평양지방에서 발굴된 낙랑유물과 중앙아시아 지역에서 수집된 서역유물이 소장되어 있고, 신안 해저에서 끌어올린 방대한 양의 중국 원나라 유물 등이 있다.

유물의 전시는 고고학·미술사·역사 전반을 통한 한국문화 발전의 큰 줄기를 이해할 수 있도록 계획하였으며, 특별전시를 통해 특수한 국내외 문화를 재조명하고 있다. 국내전시 외 해외에서도 한국 전통문화에 대한 이해를 높이기 위하여 세계박물관협의회(ICOM) 회원으로서 여러 나라에 한국문화재 대여전시회 등을 여는 한편, 각종 특별전시회를 열고 있다.

국립중앙박물관은 또한 1946년 경주 호우총 발굴 이래 여러 차례 유적·유물 발굴과 각종 학술조사를 실시하여 보고서를 간행하고 있으며, 박물관특설강좌·박물관대학 등을 운영하여 전통문화의 보급에도 힘쓰고 있다. 용산 새 국립중앙박물관은 세계적인 규모에 걸맞게 우리의 문화유산뿐만 아니라 중국, 일본, 인도네시아, 중앙아시아 등 주변 문화와의 연계 속에서 우리 문화를 조명할 수 있는 박물관으로 거듭나기 위해 아시아관을 신설하였다.

또한 박물관 본래의 기능 중에서 교육 기능을 강화하기 위해 교육시설을 대폭 확대하고,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을 준비하였으며, 어린이박물관을 새롭게 신설하였다. 새 박물관에서는 다양하고 새로워진 전시 관람은 물론 편안하고 즐거운 마음으로 각종 음악회, 연극 등의 공연을 관람하실 수 있도록 전문공연장인 극장 ‘용’도 운영한다.


답변참고 >> http://kr.dic.yahoo.com/search/enc/result.html?pk=11196900&p=국립중앙박물관%20&field=id&type=enc

 

▲구한말 이왕가박물관
한국 최초의 근대 박물관은 1908년 9월 순종황제가 창경궁 내에 설치한 이왕가박물관(李王家博物館)이라 할 수 있다. 이 박물관은 1909년 11월 일반에게 처음 공개됐다. 일제시대인 1938년에는 덕수궁 석조전 서남쪽에 이왕가미술관이 건립돼 이왕가박물관에 있던 미술품이 덕수궁으로 옮겨졌다. 이 미술관은 해방 이후에도 문화재관리국 소속의 덕수궁미술관으로 존속되다가 1969년 5월 국립중앙박물관에 흡수ㆍ통합되기에 이른다. 저명한 고대사학자 고 이홍직(李弘稙.1909-1970) 박사는 이왕가박물관 출신이다.

▲식민지시대 조선총독부박물관
조선총독부는 1915년 물산공진회(物産共進會)를 경복궁에서 열고, 그 연장선에서 같은 해 12월 1일 총독부박물관을 개관했다. 근대화의 상징인 물산공진회라는 포말이 식민지 조선에서 박물관을 낳은 것이다. 해방과 함께 총독부박물관을 접수한 정부는 최초의 국립박물관을 설치, 1945년 12월 3일 서울 경복궁에서 국립박물관이 개관했다. 초대 박물관장은 김재원(金載元. 1909-1990) 박사. 김 박사는 해방과 더불어 총독부박물관을 접수함으로써 국립박물관 역사의 초석을 놓았다.


따라서 올해로 국립중앙박물관은 개관한 지 60주년이 되는 해이기도 하다. 개관 후에는 처음으로 광복 1주년을 기념, '중요출토유물 특별전'이 열렸다. 그로부터 해마다 '고구려 고분벽화 특별전' '고구려 유물 특별전' '옥새 조약문서 특별전' 등이 열렸다. 또한 1946년 고구려 광개토대왕 호우가 출토됨으로써 호우총으로 명명된 경주 지역 고분을 발굴하는 등 우리 손으로 행한 최초의 발굴이 진행됐다.


하지만 발굴기술이 없어 미처 본국으로 돌아가지 못한 마지막 조선총독부박물관장 아리미쓰 교이치(有光敎一)를 한국인이라고 속이고, 그의 지도 아래 발굴을 했다. 백수를 바라보는 아리미쓰는 아직 생존해 있으며, 얼마 전까지도 조선총독부 시절에 그 자신이 발굴한 조사성과를 정리하기도 했다.

▲수난의 시기, 한국전쟁
한국전쟁은 국립박물관에도 시련과 수난이었다. 지난한 이전(移轉)의 역사가 시작된 것은 여기에서 비롯된다고 봐도 무방하다. 전쟁 시기 국립박물관을 비롯한 서울을 점령한 북한군에 의해 문화재가 북송될 위기에 처했던 때도 있었다. 또한 9.28 서울이 수복된 이후에도 박물관은 2만여 점의 소장품과 함께 부산에 '피난'해 있어야 했던 시절도 있었다.


1953년 휴전과 함께 서울로 귀환해 경복궁으로 복귀한 박물관은 그해 10월 다시 남산으로 이전했다. 이곳은 1950년 12월 국립박물관으로 흡수통합된 '민족학박물관'(국립민속박물관 전신)이 들어서 있던 곳으로 경복궁 안에 있던 박물관 건물은 구황실사무총국(舊皇室事務總局)으로 이관됐다. 남산의 국립박물관에서는 1954년 '한국 현대회화 특별전'이 열렸다.

▲덕수궁 석조전 시대
1954년 6월 남산 민족박물관 건물이 연합참모본부 청사로 사용됨에 따라 11월 국립박물관은 덕수궁의 석조전으로 다시 이전, 이듬해 2월 재개관했다. 이 석조전 시기에는 해외에 우리 문화재를 알리려는 노력이 본격화되기 시작한다. 1957~59년 미국 8개 도시에서 국보급 문화재 해외전시회를 가졌고, 1961~63년에는 영국.프랑스.네덜란드 등지의 서유럽 국가에서 '한국 고대문화전'을 개최, 전쟁으로 황폐화된 한국이 오랜 전통의 '문화국가'라는 사실을 해외에 알리려 했다.


또한 이 시절에는 '수정으로 본 동방미술'(1956년), '구라파 전시 고미술 귀국 보고전'(1962년) '백제 무령왕릉 유물 특별전'(1971년) 등 40여 차례의 특별전이 열리기도 했다. 1968년 7월에는 당시 문교부(현 교육인적자원부) 소속에서 문화공보부(현 문화관광부) 소속으로 직제가 개편됐고, 1969년 5월에는 성격이 비슷한 국립박물관과 덕수궁미술관이 통합.개편됐다.

▲다시 경복궁으로
1972년 7월 국립박물관은 현재의 공식명칭인 '국립중앙박물관'으로 간판을 바꿔 달고 같은 해 8월 현재의 국립민속박물관 자리로 이전해 8월 25일 개관했다. 17년 동안 터잡고 있던 덕수궁 석조전을 떠나 다시 경복궁으로 돌아온 것. 이 시기에 박물관은 국립지방박물관 건립을 개시하는 등 양적ㆍ질적으로 발전을 거듭하기 시작한다. 1977년 전남 신안 앞바다에서 중국 원대의 난파선이 발견된 것을 기회로 이듬해 광주에 국립박물관이 건립됐고, 이를 계기로 지방 주요 도시에 국립박물관이 지속적으로 건립되기 시작한다.


이러한 지방 국립박물관의 설치는 진주, 청주, 전주, 부여, 대구, 김해, 제주 등으로 이어지다가 2002년 국립춘천박물관을 마지막으로 현재의 '1시ㆍ도 1 박물관' 체제가 마무리됐다. 한편, 경복궁 안으로 돌아온 국립중앙박물관은 1976년 2월~7월 일본의 도쿄.교토.나라에서 '한국미술 5천년전'을 개최하고, 1979년 5월부터 1981년 10월까지 미국의 샌프란시스코.시카고.보스턴.뉴욕.워싱턴 등지에서 '한국미술 5천년전'을 여는 등 활발한 해외전시 활동을 벌였다.

▲조선총독부건물 철거
경복궁으로 돌아온 지 14년이 지난 1986년 8월 21일 국립중앙박물관은 옛 조선총독부 건물이었던 중앙청 건물을 개ㆍ보수해 네 번째로 이전했다. 연건평 1만8천여 평, 22개 전시실에 전시유물만 6천여 점으로 규모도 크게 확장됐다. 또한 한국유물 뿐만 아니라 중국, 일본, 중앙아시아 유물까지 전시돼 국제적 박물관의 성격을 띠기 시작한다. 1994년에는 한해에만 176만2천여 명의 관람객이 박물관을 찾았다.


그러나 문민정부가 들어서면서 '일제잔재' 청산의 분위기가 무르익을 무렵, 중앙청 건물이 일본 제국주의 압제의 상징인 조선총독부 건물이라는 지적도 거세졌다. 당시 갓 출범한 김영삼 정부가 조선총독부 건물을 철거하기로 함에 따라, 1993년 국립중앙박물관은 다시 서울 용산 가족공원으로 이전이 결정됐다. 그리고 마침내 1995년 8월 15일 광복 반세기를 맞아 국립중앙박물관이 10여 년 동안 둥지를 틀었던 옛 조선총독부 건물은 전격적으로 해체ㆍ철거되기에 이른다.

▲새 용산시대
국립중앙박물관은 대신 1996년 당시 경복궁 안의 사회교육관 건물을 증축해 용산 이전 작업이 시작되기 직전까지 자리를 틀었다. 이것이 다섯 번째 이전이다. 지난해 7월 20일부터 90일 간 개최한 경복궁에서의 특별전을 마지막으로 10월 17일 공식적으로 폐쇄된 후, 이전 작업을 완료한 국립중앙박물관은 현재 오는 10월 28일 '새 용산시대'의 서막을 올렸다.

 

 


 

 

용산중앙국립박물관 관람기

 

세상 살기가 좋아져서 일까요? 감히 옛날 우리 어려서 같았으면 감히 생각지도 못할 어린이 조기 교육 바램에 이제 겨우 5설 지난 우리집  손자 아이 도영이가 일주일 중 6일은 아침 8시 반이면 집을 나서 유치원엘 갔다가 오후 2시반에 다시 유치원에서 놀이방으로 가 놀이방에서 놀기도 하며 한글공부 영어 공부를 마치고 나면 오후 6시가 지나야 놀이방에서 손자 아이가 집으로 돌아오는 그야말로  "ㅋㅋㅋ 손자 녀석이 오줌넣고 뭐 볼새도 없이 " 바쁘게 사네요

 

그런데 마침 오늘은 (일요일) 도영이 애비도 삼촌도 모두 휴일이 되어 쉬는 날인데도 일요일은 어린것이 늦잠도 맘대로 한 잠 늘어지게 자지 못하고 또 할머니 등살에 떠 밀려 교회를 갔다가  오전 11시경 되어야 돌아 온 아이를 이번에는 할아버지가 손자 아이를 살살 꼬셨지요 도영아! 할아버지가 용산국립박물관에 데리고 가서 역사 공부를 좀 시켜줄까? 하고 물었더니 그렇치 않아도 답답해 하던 아이가 아주 신바람이 났지요

 

이렇게 시작된 도영이와의 용산국립박물관 견학길에는 도영이와 할머니 그리고 나 이렇게 셋이서만 아주 콧노래를 부르며 부평역에서 출발하는 전철을 타고 용산역에 도착 다시 그곳에 구리행 전철을 갈아타고 한 정거장을 더가 이촌역에 하차하여 용산국립박물관에 도착을 하지요 정문에 들어 일단 매표를 하고 돌아본 용산국립박물관의 겉모습을 보면서 나는 일단 그 엄청남 규모에 있어서 입을 헤 벌리고 놀라게 되지요

 

건물의 규모나 대지면적은 상당한데 아직 이곳 박물관을 개관한지 일년이 채 안 되어서 일까요? 주변 시설은 너무 아니었어요 무엇 보다도 그 넓은 대지위에 녹지 조성이 제대로 되어 있지 않은채 바닥이 모두 대리석으로 된 광장들이 왜 일까요? 아직 나의 눈에는 낮설고 조금은 격에 맞지 않는듯한 느낌이 드네요 이렇게 엄청난 시설 앞에 조경공사가 너무 빈약한것이 아닌가 생각을 하게 되지요

 

그러나 어쩌겠어요 일단은 손자 아이 손을 잡고 박물관 관람을 시작 하지요 작년도에 처음 개장을 하였을때는 1일 수만명의 관람 인파가 몰려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다는 소식을 접했었는데 어느사이 일년이 거의 가까워 오고 분명이 이날이 일요일인데도 그다지 많은 사람들이 붐비지를 않네요 서둘러 아이와 함께 전시된 국보급 유물들을 돌아 보지만

 

아직 도영이가 어려서 일까요 자신을 위하여 이 무더위에 데리고 왔는데 손자녀석은 문화재 관람에는 아랑곳도 하지 않고 오직 휘황찬란한 시설물에만 신경을 쓰며 몸을 비비꼬고 싫증을 느끼기 부터 시작을 하에요 그러니 한편 마음으로 더워 죽겠는데 정작 손자넘으 좋아 하지도 않은것을 괜히 온것이 아닌가 생각을 하지요 하지만 차마 그말은 목구멍에서 맴돌 뿐 말은 못하지요 그래도 미우나 고우나 내 손주 녀석인데 그럴 수 없지... 간신히  아이를 달래서 1,2,3층 박물관 전관을 돌아 보며 관람을 했지요

 

문화재에 대하여 해박한 식견도 없지만  도영이란 넘의 성화에 못이겨 제대로된 관람이나 감상을 하지 못하고 그져 수박 겉 핥기 식으로간신히  박물관 전관을 다 을 돌아 본것만 그나마 다행이라는 생각을 하지요 하기사 이제 5살된 아이에게  이렇게 재미없는 문화재 관람을 델구 온 할아버지 할머니가 바보로 아이들 세계를 너무 몰라도 한참이나 몰랐지요 그러니 어른인 나도 날씨가 후덥지근 하니 짜증이 나는데 어린것이 싫증을 내는것은 너무도 당연 하지요 이날 용산국립중앙박물관을 관람하며 디카로 직은 사진들을 편집 소개를 합니다

 

 

 

 

 

 

 

 

 

 

         

 

 

 

 

 

 

 

 

 

 

 

 

 

 

 

 

 

 

 

 

 

 

 

 "신라진흥왕순수비"가 지금의  박물관으로 옮겨지기전에 모습 영상자료

 

       

 

 

 

 

 

 

 

임금의 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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