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9-1편] 금강산 찿어가자 일만 이천봉 (첫날)

2021. 1. 29. 20:32☎청파산행과여행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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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산 찾아 가자 일만이천봉

 

높이 1,638m. 금강산은 동해에 임박한 태백산맥 북부의 아름다운 명승지로서,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그 이름이 알려져 있다. 최고봉인 비로봉(1,638m)을 중심으로 주위가 약 80에 이르는데, 강원도의 회양·통천·고성의 3개 군에 걸쳐 있으며, 면적이 약 160에 이른다.

 

금강산의 금강(金剛)’이라는 말은 불교 경전인 화엄경해동에 보살이 사는 금강산이 있다.”고 적힌 데서 연유되었다. 풍악(楓嶽)이라는 속칭이 있으나, 승려들이 화엄경에 근거하여 금강산이라 불렀기 때문에 이 이름이 고정된 것 같다.

 

동국여지승람에는 금강·개골(皆骨열반(涅槃풍악·기달(怾怛)의 다섯 가지 이름을 들고 있다. 이 가운데 금강열반은 불교의 용어라 하고, 이 밖의 이름은 금강산이 사계절의 변화에 따라 그 경색이 달라져 판이한 정취를 주기 때문에 계절에 따른 명칭이 있다고 하였다.

 

봄에는 온 산이 새싹과 꽃에 뒤덮이므로 금강이라 하고, 여름에는 봉우리와 계곡에 녹음이 깔리므로 봉래(蓬萊)라 하고, 가을에는 일만이천봉이 단풍으로 곱게 물드므로 풍악이라 하고, 겨울이 되어 나뭇잎이 지고 나면 암석만이 앙상한 뼈처럼 드러나므로 개골이라고 한다.

 

이와 같이 여러 가지의 호칭이 있으면서도 일반적으로 금강산으로 통칭된 것은 이 산이 불교의 영지로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개요

한반도 북부 태백산맥에 북쪽에 솟은 높이 1,638m의 세계적인 명산. 동서폭 40, 남북길이 약 60, 넓이는 약 530에 이른다. 외금강·내금강·해금강 지역으로 나뉜다. 예부터 삼신산의 하나로 꼽혔다. 신라시대 화랑도들이 심신을 수련했던 곳이며 불교도들의 순례지이기도 하였다. 일만이천봉우리들이 천태만상의 기암괴석으로 이루어졌고, 깊은 계곡을 따라 흐르는 맑은 물은 특이한 산악미와 계곡미를 이룬다.

 

계절의 아름다움과 정취가 각각 달라 봄에는 온갖 꽃이 만발하여 화려하고 산수가 맑기 때문에 금강산, 여름에는 온 산에 녹음이 물들어 봉래산, 가을에는 단풍이 들어 풍악산, 겨울에는 기암괴석의 산체가 뼈처럼 드러나므로 개골산이라 한다. 절경을 이루는 일만이천봉우리·기암·폭포·호수·(·식물·전망대 등 수많은 대상들이 천연기념물로 정해져 있다. 이 가운데 대표적인 천연기념물은 비로봉·천선대·총석정·명경대·해금강문·구룡폭포·솔섬·금강국수나무 등이다.

 

자연환경

주봉인 비로봉을 비롯하여 옥녀봉·월출봉 등이 남북으로 길게 뻗어 있으며, 주봉에서 갈라진 줄기와 봉우리들이 동서로 연이어 있다. 동쪽은 급경사로 남강·온정천 등이 흐르고, 서쪽은 비교적 완경사를 이루며 금강천과 동금강 등이 흐른다. 신생대 제3기 중신세 이후 진행된 경동성요곡운동에 의해 기본 형태가 이루어졌다. 화강 편마암 등 화강암류로 되어 있으며, 오랜 지질시대를 거쳐 융기와 풍화 및 삭박작용을 받는 과정에서 수직절벽·기암괴석 등을 형성하였다.

 

기후

기후는 동해안에 인접하여 비교적 습윤하고 따뜻하지만, 높이와 동서 사면의 위치에 따라 차이가 나타난다. 동해의 영향을 많이 받는 해금강에서 외·내금강 쪽으로 가면서 기온은 점차 낮아진다. 강수량은 동사면의 해금강에서 외금강 쪽으로 가면서 많아지고 서사면의 내금강은 적으나, 전반적으로는 강수량이 풍부한 편이다. 무상기일은 약 150일 정도이며 봄·가을에 동쪽 사면에서는 무덥고 메마른 초속 40m 이상의 바람이 분다.

 

식생

이곳은 남방·북방 계통의 식물들이 바뀌는 지대이며, 식물상이 매우 다양하고 풍부하여 대자연식물원과도 같다. 금강국수나무·금강초롱 등의 희귀식물과 고산식물 등 750여 종이 자라고 있으며, 대표적인 수종은 소나무·전나무 등 침엽수림과 단풍나무·벚나무 등의 활엽수림이다. 또한 노루·산양 등 많은 짐승류와 조류가 서식한다.

 

외금강

북쪽 백정봉에서 남쪽 은선대에 이르는 넓은 지역을 차지하며, 웅장한 산악미를 보여주는 수정봉·오봉·옥녀봉 등의 수많은 봉우리, 구룡동·한하계 등의 이름난 계곡, 크고 작은 폭포와 담소, 울창한 숲 등이 어우러져 있다.

 

구룡동계곡은 세존봉의 북서쪽 골짜기에 있는 명승지이다. 구룡폭포는 높이 74m, 길이 84m, 4m로 개성의 박연폭포, 설악산의 대승폭포와 함께 우리나라 3대 폭포의 하나이다. 옥녀봉의 아름다운 연봉을 배경으로 하여 높고 넓은 벼랑에서 떨어지는 폭포수는 매우 웅장하며 세차다. 아래에는 9마리 용이 살았다는 깊이 13m의 구룡연, 폭포 위에는 8개의 맑고 푸른 못인 상팔담이 있다.

 

구룡폭포

높이 50m의 옥류폭포, 금강산의 담소 가운데 제일 큰 옥류담, 2개의 파란 구슬을 연달아 꿰어놓은 듯한 연주담 등이 계곡을 화려하게 장식하고 있다. 한하계곡은 물과 수목이 거의 없는 곳으로 이름처럼 차가운 안개가 절경을 이룬다. 골짜기를 따라 오르면 깎은 듯한 층암절벽과 기암괴석들로 세상만물을 한곳에 모은 듯한 특이한 경치를 보여주는 만물상이 있다. 수정봉 지역은 온정천 중류 연안에 위치하며, 수정봉·바리봉·수정문·금강굴 등이 있다. 특히 수정문은 높이와 폭이 각각 10m, 두께가 2~3m로 자연돌문 가운데 가장 크다.

 

외금강 만물상

백천동 골짜기의 십이폭포는 높이 289m이며, 12번 꺾어져 떨어지는 가장 긴 폭포이다. 유점사는 신라시대에 창건했으며 53()이 안치되어 있다. 부근에 반야암·백련암 등이 있다. 이밖에도 이단폭포·금강폭포·금강못 등 수많은 명소들이 있다.

 

내금강

수많은 폭포··녹음·기암절벽이 조화를 이뤄 산세가 그윽하며 수려하다. 만폭동은 계곡미의 상징이라 할 만큼 경치가 뛰어나며, 흑룡담·벽파담·분설담 등이 있다. 백운대는 계곡미·산악미를 다같이 보여주는 명승지이며, 관음바위를 비롯해 전망대로 알려진 백운대 등이 있다. 비로봉은 일만이천봉우리와 동해의 푸른 바다를 한눈에 바라볼 수 있으며, 금사다리·은사다리로 불리는 풍경이 이채롭다.

 

비로봉 북서쪽에 있는 구성동 골짜기는 울창한 수림·기암괴석·폭포·담 등이 어우러져 있으며, 물이 유별나게 검푸르다는 가막소·옥류벽·구일폭포 등이 있다. 명경대는 울창한 수림, 우뚝 솟은 암벽이 유명하며, 거울처럼 매끈한 암벽이 벽담에 그림자를 드리워 신비로운 경승을 이룬다. 옥경담·수렴폭포·다보탑으로 불리는 기암 등이 있다.

 

금강산 찾아가자 일만이천봉 2

 

19506·25 한국전쟁 당시 내 나이 일곱 살이다. 한 밤중에 온 가족이 피난 짐을 싸들고 피난을 나와 정착한곳이, 지금의 경기도 파주시 탄현면 법흥리 약산골이다. 이 마을엔 나에 외가댁이 있다. 그런데 큰 외가댁은 6·25때 두 명의 외사촌형들이 북으로 끌려갔다.

 

그 바람에 큰 외삼촌 내외분은 생존하셨을 때, 늘 두 아들을 기다리는 마음으로 평생을 살다 돌아가셨다. 그바람에 나도 어려서부터 북한에 대한 증오심을 가슴에 앉고 성장했다.

 

2003년은 내 나이 59세 되는 해다. 그런데 마침 외사촌들과 함께하는 친목회에서 그동안 말로만 들어온 북한지역 금강산 관광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참가 여부를 고려할 필요가 없었다. 우리 부부는 결혼 29년이 되도록, ‘변변한 여행한번 못했다.’ 걱정은 두 아들을 두고 우리 부부만 여행을 떠나는 것이 마음에 걸린다. 그러자 두 아들이 말한다. ‘아버지, 어머니 걱정하지 마시고 잘 다녀오시라고......,’

 

그 바람에 열일 제치고 20031220일 아내와 함께, 현대아산 계동사옥에서 출발하는 금강산행 버스에 탔다. 나와 함께 금강산 관광을 떠나는 일행은 모두 18명이다. 고성까지 가는 관광 버스는 810분 현대 사옥을 출발했다. 같은 차에 탄 사람들 너, 나 할것없이 마음이 들떠있다. 차안은 한동안 떠들썩 하다. 그러다 한 두 사람 잠이든다.

 

그 사이 휴게소에 도착했다. 나는 일행들과 준비해간 간식을 먹으며 소주도 한잔 곁들였다. 그리고 다시 달려간다. 차안은 다시 조용하다, 왁자지껄하다를 반복하며 오후 1시반, 고성 금강산 콘도에 도착했다. 이때부터 현대아산측 통제에 따라 휴대폰은 맡기고, 소지할 수 있는 카메라, 캠코더, 쌍안경 같은 품목은 지참하고 북한으로 들어가는 출입국 수속을 한다.

 

그리고 접수처에서 발급한 인적사항이 게제된 목거리를 걸고, 다시 임시 남북출입관리 연락사무소가 있는 고성지역 최전방까지 40여분 달려, 입국검사를 받았다. 그런데 남북 출입국 관리소의 통행 검사는 의외로 까다롭고 절차도 엄격했다. 그러다 보니 여행객들 분위기가 위축됐다. 일행중 한 분은 주민등록증과 관광증의 이름자중()자를 ()로 잘못 기장한 것을 빌미로, 세관직원이 사무소로 데리고가 얼마나 면박을주고, 고압적인 자세로 통과 시키느니 못시키느니 하는 언행을 서슴치 않다가, 30여분 지나 통과 시켜 본인은 물론 일행들 마음을 조리게 했다.

 

그 모습 보며, 세관원들 두 번다시 상대못할 놈들이다란 소리가 여기저기서 나온다. 남측 세관 요원들 눈엔 관광객이 모두 범법자로 보이는 것 같다. 하나같이 불친절하고 상투적인 말투, 지시조의 언행이다. 오죽했으면 다 때려 치고 관광이고 뭐고 다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다. 하지만 참았다. 생존 처음의 금강산 관광 기회를 잃고 싶지 않았기에......, 그런 약점을 알아서 세관원들이 더 기세등등 한 것 같았다. 그 바람에 북녁 땅 밟기도 전, 모처럼의 금강산 여행 기분 잡쳤다.

 

남북출입국 관리소와 세관 검사를 마치고, 현대 아산의 금강산 운영팀 차량의 에스코드를 받으며 남방한계선을 지나간다. 현대 아산측 관광차량 가이드 길반장이 인사를 하는데, 유머스런 입담이 걸판지다. 그 바람에 주눋들었던 관광객들이 입가에 미소가 맴돌로 분위기가 활짝 펴졌다.

 

남방한계선 통과 도로 양편에는 이중 삼중으로 철조망이 설치됐다. 그 가운데로 우리를 싫은 차량이 지나고 있다. 철책엔 흰 페인트를 칠하고 철조망 사이 사이엔, 돌을 촘촘히 끼워 놓았다. DMZ 군대 생활한 남자들은 철조망에 끼워놓은 돌의 의미를 안다. 만약의 경우 누가 철책을 통과 하다 철책을 건드려 돌이 떨어지면, 침입자가 있음을 감지하는 일종의 시건장치(施鍵裝置).

 

얼마를 달렸을까? 비무장 지대다. 여기서부터는 우리를 인도 하던 금강산 운영팀 차량은 빠지고, 다시 우리나라 국군 헌병 차량의 보호를 받으며 북측 비무장 지대에 도착해, 간단한 인수 절차를 거친다. 그리고 관광객 전체가 북측에 인도 되어, 북한군 차량 호위를 받으며 금강산으로 달려간다.

 

그런데 가이드 길반장은 북측 지역을 통과하고 있는데도, 업무에 이골이난 듯, 북한군과 지역 주민들 사는 생활모습에 대해 서슴없이 흉도 보고, 안좋은 이야기도 한다. 그뿐 아니다. 능수능란하게 남과 북의 언어를 구상하며 불안한 관광객 마음을 편하게 해준다.

 

래 나도 우스게 소리로 길반장에게 혹시, 조선족 아니면 북한 여성 동무냐고 물었다. 그러자 기사님과 자기는 순수한 한국 사람이니, 주눅들지 말고 하고 싶은 대화 마음대로 하시되, 다만 북측을 향해 절대로 사진은 찍지말것과, 김일성 김정일 주체사상 구호들이나 북측 사람들을 향해 손가락질 하지 말라고, 신신 당부를 한다.’

 

북한군은 우리나라 사람들의 손가락질을 (손총질)이라 하여 철저히 금기시 한단다. 길반장은 자칭 금강산관광 가이드의 명물이라 소개 한다. 그 사이 버스는 북측 비무장 지대를 통과 북한지역을 달리고 있다. 길 왼편엔 우리나라의 방위 근무자에 해당하는 북한군, 돌격대(15~18) 인민군들이 금강산 철도공사에 투입되어 일 하는 모습이 보인다.

 

(200312) 우리가 지나갈 때 이미, 우리나라 남측구간 금강산 철도는 현대화된 장비로 완성한지 이미 오래다. 그런데 북측 구간은 아직도 암반 발파용 구멍을 재래식 공법으로 한 사람이 손으로 구멍뚫는 쇠붙이를 잡고, 또 한 사람이 함마로 쇠붙이를 때려 구멍을 뚫고 있다. 그 모습보며 북한의 현대화는 50년 후에도 쉽지 않을 것 같다.

 

뿐만 아니다. 어린 돌격대 작업자들은 가래도 아닌, 삽에다 줄을 묶어 작업을 하고있으며, 흙을 들것으로 운반을 한다. 더 어처구니 없는 것은 철도 시멘트 굄목을 흙벽돌 찍듯 수동으로 찍고 있다. 그 모습 보며 금강산 철도 완공의 날은 요원(遙遠) 하다는 생각을 했다. 한심한 것은 차라리 이럴 때 자기들 능력이 부족하면, 대한민국에 공개적으로 지원 요청해 제대로된, 금강산 철도를 만들것이지......, 그 힘든일에 동원된 죄없는 어린 북한군 돌격대원들이 측은하기 짝이없다.

 

북한지역 산림은 마치, 우리나라 1950년대 처럼 새빨간 민둥산이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금강산지역 일대는 푸르다. 길반장이 가르치는 감호(호수)엔 수 십마리의 흰 고니가 떼를 지어, 먹이를 찾고 있다. 그 모습이 마치 백조의 호수를 착각케 한다. 인근에 금강산 일만 이천봉 마지막 봉우리, 구선봉 인공 저수지(능호)도 보이는데 꽁꽁 얼었다.

 

북방한계선을 통과한 차량은 비무장에서, 북측 금강산 운영팀의 호위를 받으며, 간신히 차량 한대 교차 할 정도의 비포장도로를 희뿌연, 먼지를 날리며 달려간다. 오른편 차마당 (주차장)이 보이고, 그 옆에 연유공급소 (주유소)현대 오일벵크가 보인다. 이곳 주유소가 북한에 만들어진 우리나라 최초의 주유소 1호점 이라고 한다.

 

도로변엔 해금강영웅중학교”, 그리고 온정리, 양지마을도 보인다. 그런데 마을은 온통 우리나라 1950년대 농촌모습과 흡사한데, 지붕은 기와인데 너덜너덜 기왓장은 몇장 뿐이고 누더기 모습에 회색이다. 길 양편에선 북한군 돌격대원들이 무슨 공사를 하고 있다. 그 주위엔 온통 빨강색 붉은 깃발이 펄럭인다. 특이한 것은 공사를 하는데 차량 한 대 볼 수 가 없다.

 

그들이 입은 옷은 하나같이 누루 퉁퉁한 똥색, 얇은 동정복이다. 마을은 사람이 살지않는 텅텅 비어있는 유령의 도시같다. 거동하는 사람을 볼 수 없다. 아주 이따금 지나는 사람은 걷거나, ‘가물에 콩나듯자전거를 타는 사람을 볼 수 있다. 이 모습을 보며, 이면에는 훨씬 더 비참한 북한 사회 현실이 도사리고 있을 것 같아 측은지심(惻隱之心)이 든다.

 

이러한 북한 실정도 모르고 나는 그동안 금강산 개발도, 북측을 퍼주기 위한 일원의 정책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막상 내 눈으로 어린 북한 돌격대원들 고생하는 모습을 보니, 마음이 바뀌었다. 만약 저들 북한이 진심이 통한다면 적극 도와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우리는 같은 동포,형제 지간이기 때문이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는 사이 우리 일행을 싫은 차는 북측에서 운영하는, 출입국 관리 사무소에 도착했다. 북측은 출입국관리소는 남측보다 훨씬 까탈스럽게 검사를 할 것 같아, 여행가방 속에 챙겨 온 포겟용 소주가 걱정된다. 그런데 내 생각은 기우 (杞憂)였다. 북측 검사는 상상외로 까다롭지 않았다. 다만 한가지 흠이라면 경직되어 보이는 실무자들의 인상을 제외하곤 짐 검사, 휴대품검사 등등 오히려 남측 보다 훨 더 간단히 통과할 수 있었다.

 

그러다 보니 우리나라의 위압적이며 고압적인 출입국사무소 근무 요원들이 비교됐다. 대부분사람들이 이구동성(異口同聲) 남측 출입국 관리소 관계자들의 행태를 못마땅해 하며, 개선되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북측 통행검사를 마치고 나니, 오후 5:15분이다. 이때부터 현대 아산에서 운영하는 금강산 셔틀버스 버스가 우리를 태우고 장전항에 있는 해상 관광호텔에 도착했다. 가이드가 말한다. 여장을 풀고 기념 사진을 찍고 싶으면, 반드시 호텔 정면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을수 있으나, 측면이나 후면 사진촬영을 하게되면 제약을 받게 된다고 일러준다.

 

우리는 호텔에 여장을 풀고 다시 셔틀버스로 이동해 말로만 들어온, 그 유명한 금강산 온천에서 온천욕을 한다. 온천 이용료는 미화 10불 우리나라돈 12,500원이다. 우리나라 물가에 비하면 모든 물가가 거의 3배 비싸다. 온천은 우리나라의 온천과 유사하다. 그런데 금강산 온천의 효능에 대해 궁금하다. 다만 온천 느낌은 온천수가 매끄럽고 부드럽다. 그중에서 나는 노천온천이 더 마음에 들었다. 영하 20여도를 오르내리는 노천에서 따근한 온천욕을 하는 그 기분이란, 평생을 잊지 못할 것 같다. 흠이라면 제한된 시간에 온천을 마쳐야 하는 것이다.

 

나는 30분 정도 미리 온천욕을 끝냈다. 그리고 2층에 마련된 미술관 관람을 했다. 미술품들은 대부분 조악해 보였다. 화선지라던가 색상들이 거칠고 예술성도 다듬어 지지 않은것 갔다. 그런데 전시장 벽면에 걸려있는 대형 걸개 그림은, 수공예품으로 일일이 수를 놓아 완성한 작품으로, 관람객들 너도 나도 감탄을 한다. 인상적인다.

 

미술관 사진 찍는것도 촬영해도 되냐고 물어서 촬영을 했다. 내 생전 북한지역에서 찍은 첫 사진이다. 미술 관람을 마치고 오후 7시 온정각 (현대 아산)에서 운영하는 식당에서 부폐식으로 식사를 했다. 이곳 식사는 깔끔하고 푸짐했다. 그 어느 일류 호텔 버금갈 정도다. 일행들과 준비해간 소주를 반주삼어, 기쁘고 즐거운 식사를 할 수 있었다.

 

식사를 마치고 호텔에 도착하니 필리핀 사람으로 추청되는, 그룹 싸운드가 우리 일행을 반기듯 흥겹게 노래를 부른다. 방 배정을 받고 입실하니 배가 약간 흔들린다. 그러다 보니 일행 대부분은 약간의 어지럼증을 호소하며 모두 일찍 잠이든다. 하지만, 나 이외 몇 몇간 6명은 평생 첫 금강산 여행인데, 일찍 잠드는것이 성애 차지 않는다.

 

장전한 바닷 바람이라도 쏘이고 들어오자고 호텔 밖으로 나왔다. 수정처럼 맑은 하늘엔 헤일 수 없이 많은 별들이 은하수와 어우러져 반짝인다. 금강석 보다 더 아름다운 밤이다. 그런데 이때다. 전방 20여 미터 지점에 인민군 병사 2명이 우리 일행의 거동을 주시 하고 있다. 기겁을해 산책을 멈추고 호텔로 돌아왔다.

 

호텔 프론터(front) 맞은편에선 외국인 혼성그룹 가수들이, 우리나라 말과 외국어로 노래를 부르고 있다. 그 흥겨운 노래가 여행객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분위기에 어우러져 일행들과 생맥주를 마신다. 그런데 평소 술 안하던 아내도 몇 잔이나 한다. 가수들의 노래 분위기에 젖어 함께 손뼉치며 노래를 부른다. 그러자 가수들도 더욱 흥겹게 노래를 부르며, 우리에게 으뜸이라 엄지손가락을 세워 보인다. (생맥주 500cc 1잔에 달러 4불 우리나 라돈 5,000원이다)

 

(2편에서 상팔담 구룡폭포 여행기를 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