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낭만 여행 철원 한탄강 얼음 트래킹

2019. 2. 4. 03:54☎청파산행과여행기☎

728x90

겨울 낭만 여행 철원 한탄강 얼음 트래킹





YouTuBe 영상 뉴스

https://youtu.be/yZwMkOGJvgg

카카오tv 영상 뉴스

https://tv.kakao.com/channel/2828818/cliplink/395350764

인천N방송 영상 뉴스

http://www.incheonntv.com/pmain/viewUcc.do?vodid=VOD0000000029364&ucc=uc08

네이버 영상 뉴스

https://blog.naver.com/ydk3953/221458171646

철원 한탄강 얼음트래킹 더 많은 사진을 보려면 아래 링크주소를 클릭하세요 

http://blog.daum.net/salamstory/15868417




오늘은 늘 나와 함께하는 '마음에 벗'들과 함께 철원 겨울 여행을 떠나는 날이다. 한탄강 얼음트래킹 축제가 열렸던곳으로... 새벽 645분까지 사당역 3번출구에서 일행들을 만나 함께하는 등산클럽전세버스에 몸을 싣고 달려간다. 2시간여를 달려 트래킹 코스 태봉교 들머리에 도착하니 09:00시다.


철원한탄강얼음트래킹 축제는 2013년부터 시작해, 매년 1월 중순에 '동지섣달 꽃 본 듯이'라는 주제로 강원도 철원군 한탄강 일원에서, 주상절리등 생태 가치가 우수한 현무암 협곡을 트레킹하는 지역 축제다. 코스는 태봉대교를 출발 송대소, 마당바위, 승일교를 경유, 고석정까지 6km구간에 이른다.




직탕폭포 입구다 얼음트래킹 큰 기대를 하고 왔는데 입구 현수막을 보니 트레킹 금지라고 쓰여있다. 실망이다. 철원한탄강얼음트래킹 축제는 2018년 1월 19댁(토)~2019년 1월 27일(일)까지 열렸다.

직탕폭포 가는길

직탕폭포에 빙벽이 있어야 하는데, 며칠사이 얼음이 다~ 녹아 버렸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다고 했다. 허망한 마음으로 얼음판이 아닌 우회 코스로 트래킹을 시작한다.


우회 코스가 만만치 않다. 얼음판 대신 현무암 울퉁불퉁 우회길을 따라간다.

돌고래 바위도 만나고

가다 힘들면 간식도 먹으며 간다.

우와! 우회코스 맞은편에 인공 빙벽폭포가 보인다.

실망했던 마음을 달래주는 인공빙벽폭포야 반갑다.

일행들과 함께 인증샷도 남기며 간다.


다행히 이곳은 얼음 두케가 30cm가 넘는다. 그바람에 용기를 내 얼음판에 들어가는 재미를 볼 수 있다.

인공이지만 빙벽을 보는 재미가 솔솔하다.

한탄강 주상절리다. 이 일대가 유네스코에 세계지질공원 신청을 하고 인가를 기다리는 중이라 한다.



오묘한 주상절리 절벽

강위에는 부교를 설치해 통행을 시켰다.

곳곳에 농업용수용 가압펌푸장이 보인다. 아주작은 건물인데 벽화를 그려넣어 더욱 아름답다.

버들강아지가 벌써 개화했다.


졸졸졸~~~ 얼음장 밑으로 봄이 오는 소리가 아름답다.

여행에 남는것은 인증샷 뿐이다. 일행들과 함께

얼음판위를 걷는 사람들 너도 나도 모두 다 하나같이 동심의 세계로 돌아간다.

내나이를 묻지 마세요. 겨우 6학년 16반인걸요.

자~알들 놀구 있었어요.

이쪽저쪽 보이는 인공빙벽폭포 철원군의 축제 공훈도를 볼 수 있었어요


철원 승일교 이야기

철원 승일교(鐵原 昇日橋)는 강원도 철원군 동송읍(東松邑) 장흥리(長興里)와 갈말읍(葛末邑) 내대리(內垈里)를 잇는 한탄강의 다리로 지방도 제463호선에 속해 있다. 고석정인근에 있으며, 대한민국의 등록문화재 제26호로 지정되어 있다. 교량의 노후화로 현재 차량은 1999년 개통된 한탄대교를 이용해야 한다.

 

일제 패망 직후, 철원군 일원이 소련군정을 거쳐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실효 지배 영역에 속하던, 1948년 한탄교(漢灘橋)라는 이름으로 착공되었다. 철원농업전문학교 토목과장이었던 김명여의 설계로 러시아식 공법의 아치교로 설계된 이 다리는 동송읍 쪽의 아치교각만 완성된 상태에서 한국 전쟁으로 공사가 중단되었다가 1952년 주한 미군 79공병대와 대한민국 국군 62공병대가 갈말읍 쪽 교각과 보를 완성, 1958년 개통하고 승일교라는 이름을 붙였다.

 

철원군 지역 주민들 사이에는 김일성이 시작하고 이승만이 끝냈다고 하여 이승만의 '()'자와 김일성의 '()'자를 한자씩 따서 승일교(承日橋)라 했다는 설과 '김일성을 이기자'고 해서 승일교(勝日橋)라고 했다는 설이 전해지나 현재 정설로 받아들여지는 것은 한국 전쟁 중 큰 공을 세우고 조선인민군에게 포로로 끌려간 박승일(朴昇日, 1920~ ? ) 연대장을 기리기 위해 그의 이름을 따서 승일교(昇日橋)라고 지어졌다는 것이며, 1985년 세워진 승일교 입구의 기념비에도 이를 정설로 소개하고 있다. 비슷한 사례로 같은 시기에 포로로 끌려간 고근홍 연대장의 이름을 따서 지은 경기도 포천시 영북면의 근홍교가 있다. [위키백과 참조]



멀리 얼음트레킹 현장의 상징인 대형역고드름탑이 보인다.

꽃보다 아름다워라 할베들의 미소가

멀리 얼음터널 현장이 보인다.



멋진 포즈만 보면 인즛샷 남기는 웃기를 짜장 할베들

인공이지만 그 아름다움은 가히 장관이라 할 수 있다.






인공얼음터널이다. 시기가 지나 조금은 허술해 보인다. 하지만 아직도 그 인기는 최고를 자랑한다.


고석정 가는길엔 인공부교를 설치해 안전을 도모했다.


여기도 빙벽

저기도 빙벽 철원군이 얼음트래킹 축제를 위해 공들인 그 공헌도가 상당했음을 볼 수 있다.

고석정에 본 빙벽 풍경


고석정 야외 전시장에 설치된 짚 공에작품이다. 한우 모습이 인상적이다.

6.25한국전쟁 당시 철의삼각지 전투에 출격해 혁혁한 공훈을 세웠던 전투기 전시물



임꺽정(林巨正)

 

조선의 3대 도적으로 불리는 조선 중기의 의적. 16세기 중반 몰락농민과 백정 및 천민들을 규합하여 지배층의 수탈정치에 저항, 정국을 위기로 몰아넣었던 도적으로 다른 이름은 임거정, 임거질정. 홍길동, 장길산과 함께 조선의 3대 도적으로 일컬어진다. 경기도 양주에서 백정 신분으로 태어나 황해도에서 생활했다. 1559년경 황해도, 경기도, 평안도, 강원도까지 세를 확장했고, 빼앗은 재물을 빈민들에게 나누어주어 의적으로서의 성가를 높였다. 1561년에 들어 관군의 대대적인 토벌로 세력이 점차 위축되다가 15621월 부상을 입고 체포당해, 15일 만에 죽음을 당했다.

 

16세기 중반 몰락농민과 백정·천인들을 규합하여 지배층의 수탈정치에 저항, 정국을 위기로 몰아넣었다. 홍길동·장길산과 함께 조선의 3대 도적으로 일컬어진다. 일명 임거정·임거질정.

 

경기도 양주에서 백정 신분으로 태어나 황해도에서 생활했다. 뜻을 같이하는 비슷한 처지의 농민 수십 명과 그 가족으로 집단을 이루어 황해도의 산악지대를 중심으로 도적활동을 시작했다. 날쌔고 용맹스러우며 지혜로웠던 그는 1559년경 황해도·경기도·평안도까지 활동영역을 넓혀 이 지역의 관청이나 양반·토호의 집을 습격, 이들이 백성에게서 거두어들인 재물을 빼앗았다. 또한 서울·평양 간 도로와 그밖의 주요교통로를 장악하여 정부가 농민들로부터 거두어들인 토지세·공물·진상물 등을 탈취했다. 이와 함께 관군의 방비와 토벌의 허점을 교묘히 찌르며 세를 확장하면서, 빼앗은 재물을 빈민들에게 나누어주어 의적으로서의 성가를 높이고 이들의 적극적인 도움을 받았다.

 

위기감을 느낀 정부 지배층이 여러 차례 관군을 동원하여 진압하려 했으나, 이를 번번이 물리치고 1559년에는 개성부 포도관 이억근마저 잡아죽였다. 1560년 가을에는 봉산·개성을 거점으로 서울까지 진출했으나, 같은 해 11월 참모인 서림이 체포되면서 결정적인 타격을 받았다. 정부는 서림에게서 활동의 계획과 비밀을 알아내고 선전관 정수익과 봉산·평산의 관군으로 하여금 토벌하도록 했으나 뛰어난 전투력과 농민·이서의 도움으로 위기를 모면, 세력을 보존할 수 있었다. 당시 이서와 농민의 도움은 임꺽정의 부대가 모이면 도적이 되고 흩어지면 백성이 되어 출몰을 예측할 수 없어 잡을 수가 없다고 할 정도로 적극적이었다.

 

1561년에 들어 황해도, 경기도 북부, 평안도, 강원도 지역에 출몰하여 활동했으나 관군의 대대적인 토벌이 이어져 형인 가도치가 체포되는 등 세력이 점차 위축되었다. 토포사 남치근이 이끄는 관군의 끈질긴 추격으로부터 도망하던 중 마침내 15621월 서흥에서 부상을 입고 체포당해, 15일 만에 죽음을 당했다.

 

임꺽정의 의적활동은 연산군 이후 명종대에 이르기까지 조선 전체에서 일어났던 농민봉기의 일환이며 그 집약점이었다. 이 시기 농민의 저항은, 당시의 사관이 "도적이 되는 것은 도적질하기 좋아서가 아니라 배고픔과 추위가 절박해서 부득이 그렇게 된 것이다. 백성을 도적으로 만드는 자가 누구인가"라고 기록한 바와 같이 사회경제적 모순이 격화됨에 따라서 지배층에 저항하여 전국 각지에서 자연발생적으로 일어났다.

 

비록 실패로 끝났으나 임꺽정 집단의 치열하고 오랜 활동은 정부·지배층에게는 불안과 공포의 위기의식을 심어주었으며 피지배층 일반에게는 희망을 안겨주었다. 이에 따라 그에 대한 평가도 상반되어 지배층은 그를 흉악무도한 도적이라고 했고 민중들은 의적으로 영웅시했다. 그뒤 그에 관한 많은 설화가 민간에 유포되었고, 그의 행적이 소설로 그려지기도 했다.[위키백과 참조]


임꺽정이 되고 싶은 할베들


내가 만약 임꺽정이 될 수 있다면 서슴없이 주사파정권, 앞뒤없이 종횡무진 나라망하는일만 저지르는 빨갱이 집단들, 그냥 확 쓸어 버릴 수 있을텐데...꺽정이 형님이시여. 우리 할베에게 힘과 용기를 주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