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1. 19. 16:40ㆍ☎파평윤씨네사랑방☎
여진정벌 위업으로 국토 확장한 "문숙공 윤관 대원수"
문숙공(文肅公) 윤관(尹瓘) 장군(將軍) 위업(偉業)
1. 문숙공 윤관은 고려시대 위인으로서 문하시중과 대원수를 역임한 한민족 역사상 전무후무한 문무겸전의 회강척지진국공신 이시다.
2. 문숙공께서는 고려태조 왕건을 도와 고려를 세우고 삼국통일을 일구어 낸 개국공신이시며 파평윤씨의 시조이신 태사공 윤신달 동경대도독의 현손으로서 1040년 음력 6월 1일 탄강하시어 1073년 진사과 1094년 대과에 급제하셨으며 왕명세자복시에 문과장원을 하시어 문관으로 벼슬을 시작, 여러관직을 역임하시며 고려조의 최고 벼슬인 문하시중에 오르시었다.
3. 문숙공은 문관으로서 서기 1097년 의천대각국사와 함께 전페의 통용을 주청하시어 1101년 숙종 6년에 주전도감을 설치하고 해동통보 15,000관을 주조하여 화폐의 통용을 실행하셨으며, 1101년에는 고려국의 수도인 남경으로 현재, 청아와대와 세종로청사 일대인 삼각산 남쪽에 적지임을 상주하여 남경궁궐을 건설하시는 등 수많은 업적을 이루셨다.
4. 문숙공 윤관은 무관인 대원수로서 고구려의 옛 강토인 북방의 실지를 회복하고 민족전성시대를 구현하겠다는 원대한 포부와 충의불굴의 정신이 충만한 문무겸전의 한민족 역사상 유일무이한 척지진국공신이시다.
5. 1104년 숙종9년의 고려국 주변 정세는 북쪽에 있던 여진족이 세력을 키워 고려의 국경 침범과 약탈, 방화, 살상을 일삼으며 고려의 백성들에게 온갖 고통을 주고 있던터라, 숙종대왕은 문숙공에게 추밀원사로서 동북면 행영병마도통사를 제수하고, 생사여탈권의 상징인 부월을 하사 하시며 여진족을 소탕토록 명령하시니, 공께서는 북방으로 출정하여 1차 여진 정벌을 하시어 매우 분전하였으나 결국에는 강화를 맺고 귀환 하셨다.
6. 문숙공께서는 1차 정벌 후 여진족이 기마병에 의한 기동성을 앞세워 전투가 매우 어려웠음을 통감하고, 여진족을 대적하려면 이를 능가하는 부대가 있어야 한다고 판단하여 신기군, 신보군, 항마군, 특수군으로 편성된 별무반을 창설하고, 훈련에 매진하여 군을 강군으로 양성하시었다.
7. 1107년에 예종2년 대원수로 명을 받은 문숙공께서는 오연총을 부원수로하여 수군을 합한 30만 대군을 이끌고 2차 여진정벌에 임하여 여진족을 소탕하며 두만강 북쪽 700리까지 점령한 후 함주, 영주, 옹주, 길주, 복주, 공험진, 동태진, 의진, 평윤진에 9성을 쌓고 공험진과 선춘령에 고려정계비를 세워 이곳이 고려의 국경임을 천명하시고, 두 차례에 걸쳐 7만 5천 4백 6십여호의 고려인들을 이주시켜 풍족한 생활을 할 수 있도록 하셨다.
8. 1108년 예종3년 여진족이 옹주성을 포위하매 문숙공께서는 3차 북정에 나가 이들을 물리치셨으며 1109년 예종4년 또 다시 여진족이 길주성을 공격하자 4차 정벌에 나가 또 다시 물리치셨다. 그러자 여진족은 고려를 부모의 나라로 섬기며 대대손손 조공을 바치겠다는, 감언이설로 고려국을 회유하자 그 술수에 속아, 문숙공 윤관대원수의 공로를 시기하는 무리와 무능하고 무력한 대신들의 거듭된 상소에 의해, 급기야는 문숙공께서 이룩하신 9성을 되돌려주고 말았으니 이 어찌 천추의 한이서린 결정이라 하지 않겠는가?
9. 서기 1110년 12월 예종은 문숙공에게 수태보문하시중 판병부사 상주국감수국사(守太保門下侍中 判兵部事 上柱國監修國史)를 제수하였으나 공께서는 이를 사양하시고 경기도 파주시 법원읍 웅담리에 있는 유허지에서 기거하시다 이듬해인 서기 1111년 음력 5얼 8일 수 72세로 서거 하시었다. 공께서는 슬하에 7남 2녀를 두셨다.
10. 예종은 공에게 문경(文敬)이란 시호를 내리셨으나 후에 예종비의 시호를 문경태후(文敬太后)라 함에 따라 이를 피해 문숙(文肅)이라 하였다. 현재도 법원읍 웅담리에 있는 상서대 경내에는 문숙공께서 심으셨다는 느티나무가 존재하고 있어 파주시 보호수로 지정 보호되고 있다.
11. 문숙공의 묘소는 본향인 경기도 파주시 광탄면 분수리에 있는 여충사에 모셔져 있으며 현재 국가사적 제323호로 지정되어 있다. 여충사에는 문숙공의 묘소와 문무석등 각종 석물, 영정을 모시고 있는 영당, 홍살문등이 있고, 문숙공께서 타고 다니시던 말과 교자의 무덤인 전마총과 교자총이 있으며 그 외 신도비와 사적비, 충효관, 재실, 관리실등이 있다.
12. 현재 종묘의 예종묘정과 서상사, 숭의전 호남사, 수벽사, 화남사, 만뢰사, 조양사, 정북사등에 배향되셨으며, 조선조에 문종, 성종, 선조, 숙종과 영조대왕께서는 문숙공의 위업을 크고 높이 평가하시어 문숙공의 후손에게는 7역(役)을 면케 하라는 전교(傳敎)를 내리셨다.
◑ 1437년 세종대왕께서는 문숙공묘우를 경성에 창건하여 노당이라 칭하셨다.
◑ 1439년 김종서장군에게 문숙공의 9성 위치를 탐지하고 고려정계비를 찾으라 하셨다.
◑ 1583년 선조는 문숙공의 묘우를 중수하고 시중대라 하셨다.
◑ 1721년 경종은 시중묘를 재건하고 문숙공묘라 하였으며, 원수대비와 시중대비를 세웠다.
◑ 1764년 영조대왕은 문숙공 묘소에 지체하신 후
◑ 1766년 문숙공의 묘비를 세웠다.
◑ 1845년 헌종은 문숙공묘의 액호를 정북사라 하였다.
◑ 1898년 고종은 만뢰사를 건축하였다.
◑ 1909년 순종은 문숙공의 묘소에 치제하였다.
◑ 1932년 문수영당을 건립하고 문숙공의 영정을 봉안하였으며,
◑ 1933년 조양사,
◑ 1946년에 호남사를 건축하였다.
◑ 1954년 이승만 대통령은 문숙공 묘소를 찾아 성묘를 하셨다.
◑ 1957년에 수벽사
◑ 1958년에 화남사
◑ 1969년에 서강사를 건축하여 문숙공의 위패를 배향하고 매년 제향을 모시고 있다.
◑ 1979년 문숙공의 표준영정과 문숙공의 노래가 제정되었다.
◑ 1980년 경제단체 주관으로 문숙공 동상이 세워졌다.
◑ 1988년 이곳 여충사가 국가사적 제323호로 지정되었다.
문숙공 윤관대원수께서는 나라와 백성을 지키는 대에만 급급하지 않으시고, 나라를 침범하고 백성을 괴롭히는 무리들에게 철퇴를 가하며, 그들의 진지에까지 쳐들어가 국토를 넓히고 백성을 기름진 평야에 이주시켜 풍족한 생활을 할 수 있도록 하시며, 국력을 탄탄하게 하신 충의불굴과 척지진국의 정신이야 말로 우리가 우러러 받들고 그 정신을 후세에 기리 새겨야 할 것이다.
이하 자료는 삭제할것임
문숙공 윤관 대원수
문숙공 윤관은 고려시대 위인으로서 문하시중과 대원수를 역임한 한민족 역사상 전무후무한 문무겸전의 회강척지진국공신 이시다.
문숙공께서는 고려태조 왕건을 도와 고려를 세우고 삼국통일을 일구어 낸 개국공신이시며 파평윤씨의 시조이신 태사공 윤신달 동경대도독의 현손으로서 1040년 음력 6월 1일 탄강하시어 1073년 진사과 1094년 대과에 급제하셨으며 왕명세자복시에 문과장원을 하시어 문관으로 벼슬을 시작, 여러관직을 역임하시며 고려조의 최고 벼슬인 문하시중에 오르시었다.
문숙공은 문관으로서 서기 1097년 의천대각국사와 함께 전페의 통용을 주청하시어 1101년 숙종 6년에 주전도감을 설치하고 해동통보 15,000관을 주조하여 화폐의 통용을 실행하셨으며, 1101년에는 고려국의 수도인 남경으로 현재, 청아와대와 세종로청사 일대인 삼각산 남쪽에 적지임을 상주하여 남경궁궐을 건설하시는 등 수많은 업적을 이루셨다.
문숙공 윤관은 무관인 대원수로서 고구려의 옛 강토인 북방의 실지를 회복하고 민족전성시대를 구현하겠다는 원대한 포부와 충의불굴의 정신이 충만한 문무겸전의 한민족 역사상 유일무이한 척지진국공신이시다.
1104년 숙종9년의 고려국 주변 정세는 북쪽에 있던 여진족이 세력을 키워 고려의 국경 침범과 약탈, 방화, 살상을 일삼으며 고려의 백성들에게 온갖 고통을 주고 있던터라, 숙종대왕은 문숙공에게 추밀원사로서 동북면 행영병마도통사를 제수하고, 생사여탈권의 상징인 부월을 하사 하시며 여진족을 소탕토록 명령하시니, 공께서는 북방으로 출정하여 1차 여진 정벌을 하시어 매우 분전하였으나 결국에는 강화를 맺고 귀환 하셨다.
문숙공께서는 1차 정벌 후 여진족이 기마병에 의한 기동성을 앞세워 전투가 매우 어려웠음을 통감하고, 여진족을 대적하려면 이를 능가하는 부대가 있어야 한다고 판단하여 신기군, 신보군, 항마군, 특수군으로 편성된 별무반을 창설하고, 훈련에 매진하여 군을 강군으로 양성하시었다.
1107년에 예종2년 대원수로 명을 받은 문숙공께서는 오연총을 부원수로하여 수군을 합한 30만 대군을 이끌고 2차 여진정벌에 임하여 여진족을 소탕하며 두만강 북쪽 700리까지 점령한 후 함주, 영주, 옹주, 길주, 복주, 공험진, 동태진, 의진 평윤진에 9성을 쌓고 공험진과 선춘령에 고려정계비를 세워 이곳이 고려의 국경임을 천명하시고, 두 차례에 걸쳐 7만 5천 4백 6십여호의 고려인들을 이주시켜 풍족한 생활을 할 수 있도록 하셨다.
1108년 예종3년 여진족이 옹주성을 포위하매 문숙공께서는 3차 북정에 나가 이들을 물리치셨으며 1109년 예종4년 또 다시 여진족이 길주성을 공격하자 4차 정벌에 나가 또 다시 물리치셨다. 그러자 여진족은 고려를 부모의 나라로 섬기며 대대손손 조공을 바치겠다는, 감언이설로 고려국을 회유하자 그 술수에 속아, 문숙공 윤관대원수의 공로를 시기하는 무리와 무능하고 무력한 대신들의 거듭된 상소에 의해, 급기야는 문숙공께서 이룩하신 9성을 되돌려주고 말았으니 이 어찌 천추의 한이서린 결정이라 하지 않겠는가?
서기 1110년 12월 예종은 문숙공에게 수태보문하시중 판병부사 상주국감수국사(守太保門下侍中 判兵部事 上柱國監修國史)를 제수하였으나 공께서는 이를 사양하시고 경기도 파주시 법원읍 웅담리에 있는 유허지에서 기거하시다 이듬해인 서기 1111년 음력 5얼 8일 수 72세로 서거 하시었다. 공께서는 슬하에 7남 2녀를 두셨다.
예종은 공에게 문경(文敬)이란 시호를 내리셨으나 후에 예종비의 시호를 문겨애후(文敬太后)라 함에 따라 이를 피해 문숙(文肅)이라 하였다.
현재도 법원읍 웅담리에 있는 상서대 경내에는 문숙공께서 심으셨다는 느티나무가 존재하고 있어 파주시 보호수로 지정 보호되고 있다.
문숙공의 묘소는 본향인 경기도 파주시 광탄면 분수리에 있는 여충사에 모셔져 있으며 현재 국가사적 제323호로 지정되어 있다. 여충사에는 문숙공의 묘소와 문무석등 각종 석물, 영정을 모시고 있는 영당, 홍살문등이 있고, 문숙공께서 타고 다니시던 말과 교자의 무덤인 전마총과 교자총이 있으며 그 외 신도비와 사적비, 충효관, 재실, 관리실등이 있다.
종묘의 예종묘정과 서상사, 숭의전 호남사, 수벽사, 화남사, 만뢰사, 조양사, 정북사등에 배향되셨다. 조선조에 문종, 성종, 선조, 숙종과 영조대왕께서는 문숙공의 위업을 크고 높이 평가하시어 문숙공의 후손에게는 7역(役)을 면케 하라는 전교(傳敎)를 내리셨다.
1437년 세종대왕께서는 문숙공묘우를 경성에 창건하여 노당이라 칭하셨다.
1439년 김종서장군에게 문숙공의 9성 위치를 탐지하고 고려정계비를 찾으라 하셨다.
1583년 선조는 문숙공의 묘우를 중수하고 시중대라 하셨다.
1721년 경종은 시중묘를 재건하고 문숙공묘라 하였으며, 원수대비와 시중대비를 세웠다.
1764년 영조대왕은 문숙공 묘소에 지체하신 후
1766년 문숙공의 묘비를 세웠다.
1845년 헌종은 문숙공묘의 액호를 정북사라 하였다.
1898년 고종은 만뢰사를 건축하였다.
1909년 순종은 문숙공의 묘소에 치제하였다.
1932년 문수영당을 건립하고 문숙공의 영정을 봉안하였으며,
1933년 조양사,
1946년에 호남사를 건축하였다.
1954년 이승만 대통령은 문숙공 묘소를 찾아 성묘를 하셨다.
1957년에 수벽사
1958년에 화남사
1969년에 서강사를 건축하여 문숙공의 위패를 배향하고 매년 제향을 모시고 있다.
1979년 문숙공의 표준영정과 문숙공의 노래가 제정되었다.
1980년 경제단체 주관으로 문숙공 동상이 세워졌다.
1988년 이곳 여충사가 국가사적 제323호로 지정되었다.
문숙공 윤관대원수께서는 나라와 백성을 지키는 대에만 급급하지 않고 우리 나라를 침범하고 우리의 백성을 괴롭히는 무리들에게 철퇴를 가함은 물론, 그들의 진지에까지 쳐들어가 국토를 넓히고 백성을 기름진 평야에 이주시켜 더욱 잘 살 수 있도록 하시며 국력을 탄탄하게 하신 충의불굴과 척지진국의 정신이야 말로 우리가 우러러 받들고 그 정신을 후세에 기리 새겨야 할 것이다.
문숙공 윤관 대원수 영정
'☎파평윤씨네사랑방☎'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18년도 파평윤씨대종회 정기총회 (0) | 2018.02.20 |
---|---|
파평윤씨 남양공파 용산동종중 재실 전기 계량기 누전확인 신청 (0) | 2018.02.01 |
파평윤씨 남양공파 용산동종중 시향제 참석 종친 거마비 지불 내역 (0) | 2017.11.28 |
2017년 파평윤씨 남양공파 용산동 종중 시향제(時亨祭) 정기총회 (0) | 2017.11.27 |
2017년 "坡平尹氏 南陽公派 龍山洞 宗中" 決算書 (0) | 2017.11.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