尙書臺 坡平尹氏 先祖 13位와 熊碑 春亨祭

2016. 4. 17. 07:21☎파평윤씨네사랑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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熊潭里 地名 由來 된 "尙書臺"

坡平尹氏 先祖13位와 熊碑 春亨祭








熊潭里 地名 由來가 된 尙書臺 坡平尹氏 先祖 13位와 熊碑 春亨祭

 

윤관 장군 묘역에서 발길을 돌려 법원읍 시내를 지나 적성 방면 310번 도로를 따라가다 보면 법원읍 웅담리 마을이 나온다. 웅담리 삼거리에서 우회전해 직천리 길로 접어들자마자 우측 개울물을 따라 들어서면 윤관 장군과 관련된 유적이 있는데 파주시 향토유적 11호로 지젖된 상서대(尙書臺)이다.

 

상서대는 윤관 장군이 상서(尙書) 벼슬로 계실 때 여가를 틈타 시문과 휴양을 즐기시던 별자이며, 적장의 딸인 웅단은 윤관장군이 승전후 돌아 오실 때 따라와 함께 기거하며 시중을 들다가 장군이 돌아가심에 슬픔을 이기지 못하고 상서대 옆 낙화암 연못으로 투신(投身)하였는데, 그 소()에서 유래되어 웅담(熊潭) 또는 곰소라고 불려졌으며, 상서대가 위치한 웅담리의 마을의 지명이 이곳과 관련이 있다고 전해 내려오고 있다.

 

문숙공(文肅公)은 시조이신 윤신달(尹莘達)5세이시며, 6세 윤언이(尹彦頤), 7세 윤돈신(尹惇信), 8세 유낭계(尹商季), 9세 윤복원(尹復元), 10세 윤순(尹純), 11세 윤보(尹珤), 12세 윤안적(尹安), 12세 윤안숙(尹安淑), 13세 윤보(尹輔), 13세 윤이(尹莅), 13세 윤척(尹陟), 14세 윤승순(尹承順), 14세 윤승례(尹承禮)13위와 웅비(熊碑)등 모두 14위가 모셔져 있다.

 

상서대를 끼고 흐르는 개울의 절벽에는 윤관대원수의 애첩 웅단(熊丹)이 순절했다는 전설이 담긴 웅담(熊潭)과 웅단이 몸을 던진 바위위에 낙화암비(落花岩碑)가 세워져 있었으나 2011728일 집중호우로 인하여 낙화암비(落花岩碑)는 떠내려가서 유실되고 파평윤씨 대종회의 주선으로 상서대 경내에 다시 세웠다.

 

이곳 에서는 2016416(, 310일 토)“문숙공윤관대원수(文肅公尹瓘大元帥) 춘향제(春香祭)”를 파주시 유림연합의 주관으로 모시고 전국에서 모인 파평윤씨 후손 200여 제관들이 웅담리 상서대 추원단사로 옮겨 "파평윤씨의 성산(聖山)"이 아련히 올려다 보이는 기슭에서 "파평윤씨 (6세 윤언이(尹彦頤), 7세 윤돈신(尹惇信), 8세 유낭계(尹商季), 9세 윤복원(尹復元), 10세 윤순(尹純), 11세 윤보(尹珤), 12세 윤안적(尹安), 12세 윤안숙(尹安淑), 13세 윤보(尹輔), 13세 윤이(尹莅), 13세 윤척(尹陟), 14세 윤승순(尹承順), 14세 윤승례(尹承禮)"13위와 웅비(熊碑)) 춘형제(春亨祭)를 우중(雨中)에 모셨다  




멀리 파평산 정상이 아련히 올려다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