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3. 11. 12:01ㆍ☎파평윤씨네사랑방☎
이준익 감독 영화 "동주"를 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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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시 (序詩)
- 尹東株 1941.11.20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점 부끄러움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 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이 시에는 어려운 시대를 살면서도 꿈을 포기하지 아니한 한 젊은이의 신앙과 사랑과 고뇌가 배어 있습니다. 이 시를 대할 때마다 사도 바울이 연상되곤 합니다. 사도 바울은 “부끄러울 것 없는 일꾼”으로 그의 길을 끝까지 달려갔지만, 우리의 윤동주는 사도 바울처럼 살기를 원하였는데 그 길을 달려가기도 전에 생을 끝내야만 했습니다. 아마도 그가 주어진 삶을 끝까지 살았더라면 바울처럼 살지 않았을까 생각해 봅니다.
부끄러울 것 없는 삶
사도 바울은 젊은 제자 디모데에게 “그대는 진리의 말씀을 올바르게 가르치는 부끄러울 것 없는 일꾼으로, 하느님께 인정을 받는 사람이 되기를 힘쓰라”(딤후 2:15)고 권면하였습니다. 우리가 한 평생을 살면서 한 점 부끄러움 없는 삶을 산다는 것은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닙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가 악하고 그 사회가 병들었기에 그 유혹과 그 더러움에서 자신을 깨끗하게 지킨다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일입니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 이 말에서는 더할 수 없는 해맑음, 천사와 같은 티 없는 영혼의 숨결 소리가 들려옵니다. 그러나 “한 점 부끄러움이 없기를” 원하고 있는 시인은 결코 자신이 “한 점 부끄러움”도 없는 인간이라고는 생각한 것은 아닐 것입니다. 역시 자신도 한 인간으로서 부끄러움이 많은 존재임을 자각하면 할수록 “한 점 부끄러움 없기를” “하늘을 우러르며” 희구하고 그렇게 살기로 다짐했던 것이 아닐까요?
예민한 영적 감각을 지녀라
다음으로, 부끄러움 없는 삶을 살려면, 지혜와 분별력이 필요합니다. 이 시대를 분별하지 못하면 결국 그 유혹에 넘어가기 쉽고, 그 시대의 조류에 생각 없이 휩쓸려 가기 쉽습니다. 오늘날은 특히 변화가 심하고 굴곡이 많은 때이기에 더욱 정신을 차리고 똑바로 보지 못하면 속기 쉽고, 잘못 판단하기 쉬운 때입니다.
윤동주는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고 노래하였습니다. 그는 자기가 어떤 사람인가를 철저하게 인식하고 있었으며, 동시에 그가 살고 있는 시대에 대한 예언자적 통찰력이 그에게 있었습니다. “잎새에 이는 바람”이란 폭풍이 아닌 미풍(微風)에 불과합니다. 그런데도 예민한 감각을 가진 시인은 그것을 괴로워하고 아파했습니다. 마음이 가난하고 청결한 사람에게는 다른 사람들이 보지 못하고 느끼지 못하는 역사의 변화와 진행을 미리 느끼고 볼 수 있는 예민함이 있습니다.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바로 이런 영적 예민성(銳敏性)입니다. 이 시대의 변화 속에서 하느님의 역사와 그 음성을 보고 들을 수 있는 영적 예민성을 가질 때 우리는 이 시대의 풍조에 휩쓸려 가는 어리석은 자가 되지 않고, 하느님의 나라를 향하여 행진하는 의의 일꾼들이 될 것입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끝으로, 사도 바울은 디모데에게 “그대는 젊음의 정욕을 피하고, 깨끗한 마음으로, 주님을 찾는 사람들과 함께 의와 믿음과 사랑과 평화를 좇으라”고 권면하였습니다. 바울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이 시대를 예민한 감성으로 분별하여 진리의 길을 걸어갈 뿐 아니라, 한 걸음 더 나아가 나그네로 머무는 이 땅에서 서로 사랑으로 봉사하고 섬길 것을 명하였습니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반대하는 사람을 온화하게 바로잡아 주어야 한다”고도 하였습니다. 적대자들을 사랑으로 대할 때 하느님께서 저들을 변화시키실 것이며, 악마의 올무에서 저들을 건져내실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윤동주는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 가는 것을 사랑해야지”라고 노래하였습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이란 결코 낙심하지 아니하고 희망을 갖고 사랑하는 마음이라 하겠습니다. 별은 밤하늘에서만 빛납니다. 시인이 살던 시대는 억압과 고통이 있는 역사의 밤이었습니다. 그러나 시인은 바로 그 역사의 밤에 별을 바라보면서 희망을 노래하였습니다. 그는 그 밤을 절망하지 않고 오히려 모든 죽어 가는 것을 사랑하겠다고 다짐하므로 그 밤에 빛나는 별을 노래하였습니다.
윤동주를 회상하고 추억담을 쓰는 것만으로도 넋이 맑아진다고 고백하였던 고 문익환 목사님은 그의 따뜻한 성품을 다음과 같이 회고하였습니다.
“그에게 와서는 모든 대립은 해소되었었다. 그의 미소에서 풍기는 따뜻함에 녹지 않을 얼음이 없었다. 그에게는 다들 골육의 형제였다. 나는 확언할 수 있다. 그는 후꾸오까 형무소에서 마지막 숨을 몰아쉬면서도 일본 사람을 생각하고는 눈물을 지었을 것이라고. 그는 인간성의 깊이를 파헤치고 그 비밀을 알 수 있었기에 아무도 미워할 수 없었으리라. 그는 민족의 새아침을 바라고 그리워하는 점에서 아무에게도 뒤지지 않았다. 그것을 그의 저항 정신이라 부르는 것이리라. 그러나 그것은 결코 원수를 미워하는 것일 수는 없었다.”
윤동주는 확실히 요즈음 말하는 운동권에 속한 학생은 아니었습니다. 그는 누구보다도 그 시대의 고난을 아파하면서도 사랑으로 그것을 참고 견디며 극복하려 하였습니다. 우리가 윤동주를 사랑하는 것은 바로 이런 조용하고 겸손한 그러면서도 확고부동한 신앙을 가지고 살았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는 삶을 위해 자신을 깊이 성찰(省察)하고, 그리고 이 시대를 꿰뚫어 볼 수 있는 영적 통찰력을 가지고 하느님의 역사를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오늘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우고 있지만, 결코 노래를 멈추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새벽이 올 때까지 노래를 부르면서 새역사를 창조하기 위하여 준비하는 여러분의 생활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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