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3. 23. 23:22ㆍ☎청파의사는이야기☎
인천상륙 작전의 불 빛 "팔미도"100년 등대
연안부두 터미널
팔미도 등대 우리나라 최초의 등대
내 나이를 묻지 마세요. 나이가 많아서 할 일을 못하는 사람은 아니니까요? 내 나이 어언 고희를 넘어섰지만, 나는 언제 한번도 나이 때문에 나 자신이 스스로 작아지거나 주눅 들어 보지 않고 당당하게 사는 그러니까 한 마디로 저 잘난맛에 사는 사람에 속한 사람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우리네 나이되면 누가 뭐라지도 않는데 지레짐작으로 매사 소극적이고 자신감이 없이 나 스스로 한 자락을 접고 사는 것이 우리나라 노인들의 현실이 된지 이미 오래다. 그런데 내 경우는 그렇게 오래된 구태의 모습들이 내 적성에 하나도 맞지 않고, 나 마져 그렇게 주눅들어 살아야 한다는 생각을 해본적이 없는 사람이다.
비록 나이는 들었지만 아직 할 일, 배울것이 얼마나 많은데, 내가 왜 골방 늙은이로 전락해 자식들 눈치를 보며 살아야 한단 말인가? 나는 언제부터인가 그런 노인들 사는 모습이 싫었고 따라서 언제부터인가 한번밖에 없는 인생의 노년의 길을 나는 내 나름대로 뜻있게 살아 갈것이란 생가을 했다.
그래서 나는 단 하루도 언제 내가 백수라고 주눅들어 살거나 남의 눈치 살피며 사는 사람이 아니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나를 추구하고 내 발전을 위하여 100년 등대가 있는 아름다운 섬 팔미도를 취재도 하고 풍경에 담기 위하여 유람선을 타고 다녀왔다.
팔미도 등대의 빛이 우리나라를 구한 영생의 불빛이다.
1901년 일본이 우리 정부와 체결한 ‘통상장정(通商章程)’에 “한국 정부는 통상 이후 각 항을 수리하고 등대와 초표(礁標)를 설치한다”고 한 조항을 들어 등대 건설을 강권함으로써 1903년 6월1일 팔미도 꼭대기(해발 71m)에 최초의 등대로 세웠다. 소월미도 등대도 비슷한 시기에 세워졌다는 기록이 있으나 현재 이 등대는 존재하지 않는다.
미국정부의 반대를 무릅쓰고 팔미도 등대 불빛을 이용 인천상륙작전을 성공시킨 맥아더 장군
극심한 간만의 차 등 여러 악조건 때문에 인천상륙작전은 성공할 확률이 거의 없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었다. 영흥도를 중심으로 각종 첩보 활동을 펼쳤던 캘로 부대원들은 1950년 9월 10일 밤 발동선을 타고 기습적으로 들어가 팔미도 등대를 조사했다. 무슨 연유에서인지 북한군은 이 등대를 전혀 쓰지 않았는데, 조사해 보니 반사경의 전선이 끊어졌을 뿐 멀쩡하였다.
그들은 동경(東京) 유엔군 총사령부에 “필요하다면 등대를 켜 놓겠다”고 연락을 취했다. 동경에서는 “9월 14일 밤 12시 정각에 등대를 밝히라”는 명령을 내렸다. 9월14일 밤, 그들은 팔미도에 잠입해 등대에 불을 밝혔다. 이로써 수백 척의 함정들이 등대의 불빛을 이용, 팔미도 해역에 집결했고, 다음날 새벽에 곧바로 인천 상륙 작전을 감행해 성공을 거두었다.
현재 서해의 등대는 팔미도 외에도 34개의 국가소유 등대가 있다. 전국에는 611개의 국가소유 등대가 있으며 목포가 117개로 가장 많고, 마산에는 92개의 등대가 있다. 서해바다를 100년간 지켜온 팔미도 등대는 문화재로 보존 되었다.
또 얼마전부터 팔미도는 참전용사들이 찾는 전적지로 외부에 소문이 자다하다. 몇 해전엔 오후 2시쯤 팔미도 등대 탈환기념비앞에서 무슬루 알쿠살 예비역 대위(73) 등 터키 참전용사 9명이 51년만에 한국전쟁 당시의 전적지를 찾아와 감회어린 눈물을 흘렸다.
6·25당시 UN군으로 참전한 모험심 강한 터키청년들이 청천강 유역 등에서 많은 사상자를 내면서도 중공군의 공격을 3일간이나 지연시켜 한국군과 미군의 퇴로를 여는데 혁혁한 전과를 올려 맥아더장군의 인천상륙작전을 성공시키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이다. < 팔미도 홈페이지 자료 참조>
팔미도 유람선운행 관련 자료
팔미도는 생태천국
연안부두 풍경
연안부두 풍경
연안부두 풍경
연안부두 풍경
연안부두 터미널 7층 전망대에서 본 풍경
연안부두 터미널 7층 전망대에서 본 풍경
연안부두 터미널 7층 전망대에서 본 풍경
연안부두 터미널 7층 전망대에서 본 풍경
연안부두 터미널 7층 전망대에서 본 풍경
연안부두 터미널 7층 전망대에서 본 풍경
연안부두 터미널 7층 전망대에서 본 풍경
연안부두 터미널 7층 전망대에서 본 풍경
연안부두 노래비
부두 사람들의 마음 울렸던 ‘연안부두 노래비’
유람선을 타기 위하여 진입하는 입구에는 7,80년대 부두 사람들의 심금을 울렸던 인천시민의 애창곡이자 전 국민의 애창 가요였던 "연안부두" 노래비가 있다. 가사를 읽다 보니 나도 모르게 저절로 노래를 흥얼거리게 된다. 물론 우리네 같은 기성세대 사람들만이 공감 하는 노래 일지도 모른다.
‘어쩌다 한번 / 오는 저 배는 / 무슨 사연 싣고 오길래 / 오는 사람 / 가는 사람 / 마음마다 설레게 하나 / 부두에 꿈을 싣고 떠나는 배야 / 갈매기 우는 마음 / 너는 알겠지 / 말해다오 말해다오 / 연안부두 떠나는 배야.’
이 노래는 “학생시절에 전학을 와서 인천에서 살던 조흔파 선생께서 지으신 노래다.
유람선 공연에 앞서 사회자가 팔미도에
대한 안내와 지켜야 할 사안을 설명하고 있다.
선상에서 펼처지는 다양한 공연
마술쑈
중국의 변검공연
공연을 보다 인천의 명물 인천대교를 지나서야 멀리 조망을 한다. 이런때 좋은 대포 카메라가 필요한데 그랬으면 줌으로 당겨 보다 선명한 인천대교 모습을 담을 수 있었을텐데, 아쉬움이 남는다.
멀리 송도 신도시 모습
나는 우리나라 태극기 사진을 찍기를 즐기는 사람이다. 그래서 인지 나는 세계 여러나라 국기 중에서 우리나라 태극기가 가장 내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청파의 바닷 바람에 휘날리는 태극기 모습을 감상 해보세요.
유람선을 타고 45분여 달려 드디어 우리 일행을 싫은 유람선이 팔미도에 도착을 했는데 전방에 봉우리에 우뚯솟아 보이는 팔미도 등대 모습이 아름답다. 그런데 이곳 팔미도엔 민간인은 살지 않고 우리나라 믿음직스런 해군이 주둔하며 팔미도 등대를 지키고 있다. 팔미도 에티켓 절대로 군사 시설은 사진에 담지 말아 주세요.
팔미도
인천광역시 중구(中區) 무의동(無衣洞)에 있는 섬. 섬 모양은 자루 같은 4각형이다. 인천·영종도·용유도·대부도로 둘러싸여 있다. 산꼭대기에는 인천항을 드나드는 외항선을 위한 팔미도 등대가 있고, 서해안에서 바닷물이 가장 맑은 곳으로 알려졌다.
인천항에서 남쪽으로 15.7㎞ 떨어진 작은섬. 면적 0.09㎢. 사주(砂洲)에 의해 연결된 두 개의 섬이 마치 여덟 팔(八)자처럼 양쪽으로 뻗어 내린 꼬리와 같아 팔미도(八尾島)라 불려졌다고 한다. 팔미도는 "조선왕조실록"에서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익명의 섬이었다. 그러나 고산자 김정호의 "청구도"에는 "팔미(八未)"로, "대동여지도"에는 "팔산(八山)"등으로 불리어 왔고, 인천 사람들에게는 "팔미귀선(八尾歸船)", 즉 낙조에 팔미도를 돌아드는 범선(帆船)의 자취가 아름다워 인천팔경(仁川八景)의 하나로 꼽혔던 해상 경승지(景勝地)였다. <다음지식참조>
유람선에서 관광객들이 내리는 모습
팔미도 선착장에 내려서 등대를 향하고 있다.
옛날에는 팔미도엔 사람이 살지 않는 무인도였는데
지금은 해군이 주둔 하고 있다. 그러니까 지금은 무인도가 아니다.
조수간만의 차로 밀물일때는 섬이 나뉘어 진다고 한다.
팔미도 해안 풍경
우리일행을 싫고온 유람선 하모니호
팔미도 소개
팔미도 등대 오름길은 아름다운 벽화로 눈길을 끈다.
팔미도항로표지 관리소
천년의 빛 광장
100년전에 세워진 구등대 옛 사무실
구등대 옛 사무실을 지나 오름길은 아름다운 해송 숲으로 이어지며, 싱그러운 피톤치드향이 그윽해 모처럼 팔미도를 찾은 나그네의 가슴이 한껏 벅차다. 그러다 보니 떼어놓는 발걸음이 사뿐사뿐 가벼운데, 사람들이 천칭 만칭이라 어떤 어르신들은 천년의 빛 광장에서, 아니 거기까지 힘들게 올라가 봐야 등대밖에 없다며,
등대에 오름을 아예 포기하고 천년의 빛 광장에서 일행들과 어울려 덩실덩실 춤을 추고 계신 모습들이 눈에 거슬리지 않고 아름답게 보인다. 이 모두 세상을 오래오래 살아 오신분들의 깊은 터득에서 풍겨나오는 향기 같다.
해송 숲 사이로 팔미도 등대가 보인다.
'가는날이 장날'이란 속담은 오늘같은 날씨를 두고 한말 같다. 그동안 중국발 미세 먼지로 허구 헌날 조망이 흐리멍텅해 염려 했는데, 이날은 하늘이 코발트 빛으로 마치 지난해 해외 여행길에 만난 뉴질랜드의 청명한 날씨를 방불케 화창하다.
꽃보다 남자에 출연한 아이돌 배우들이
이곳 팔미도섬에 오는 관람객들을 반가히 맞이 하고 있다.
팔미도 등대
저 위에 높이 보이는 등대가 최신시설 팔미도 등대이고
그 앞에 낮으막하게 보이는 등대가 구 등대 이다.
팔미도 등대는 우리나라 최초의 등대로서 서남해에서 인천으로 들어오는 길목에 위치하여 지정학적으로 해상교통 흐름의 중심적 기능을 담당하고 있다. 1894년 공무아문이 설치되고, 1902년 5월 소월미도, 북장자서, 백암등표와 함께 건축에 착수하여 1903년 4월에 준공되었으며, 같은 해 6월 1일 국내 최초로 점등되었다.
신년 새해맞이 소원나무
조수간만의 차로 인천상륙작전이 불가한 현실임에도 팔미도 등대를 점령해, 어렵게 인천상륙 작전을 성공시킨 맥아더 장군 기념상이 동판에 새겨져 있다. 이렇게 우리나라가 북한과 중국에 패하지 않도록 위대한 작전을 수행 성공시킨 맥아더장군의 위업도 모르는 빨갱이 앞잡이들이 인천지역에 있는 맥아더 동상을 철거하려 시시때때 기회를 엿보는 현실이 너무 가슴 아프다.
팔미도 등대 전망대에서 본 100년 등대 자료
http://cafe.daum.net/salam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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