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0세 나이에 손자를 둔 할머니가 돼 뒤늦게 자신의 꿈을 키우기 위하여 중학교를 다니는 것이 말은 안하고 있었지만 상당히 힘이 드는 듯 오늘(8일)은 아내가 줄곧 시험에 신경을 쓰다 모처럼 일요일이 되어 학교를 안가게 되니 긴장이 풀린다고 자신을 데리고 어디 한적한 교외라도 다녀와 달라는 부탁을 한다.
하지만 이미 며칠 전부터 절친한 후배들과 등산 약속을 하였던 나로서는 정말 입장이 난감했다. 나는 얼떨결에 아내에게 그런 생각이 있었으면 사전에 상의를 했어야지 별안간 급작 스럽게 스케쥴을 변경하라고 하면 어떻게 하느냐고 아내에게 불만을 표시하고 배낭을 짊어지고 그냥 집을 나섰다.
하지만 등산을 가기 위하여 부평역으로 발걸음을 재촉을 하면서도 아내의 모처럼의 부탁을 뿌리친 것이 영 마음에 걸린다. 나는 가던 길을 멈추고 약속한 후배 동생들에게 전화를 하니 사실은 동생들도 사정이 있었는데 형과의 약속이었기 때문에 취소할 수가 없었다며 그럼 등산은 추석 이후에 하기로 하자고 하기에 나는 얼씨구 잘됐다 생각을 하고 즉시 아내에게 전화를 하니 아내는 이미 교회를 가고 집에 없었다. 한 시간 반 정도를 기다려 아내에게 다시 전화를 하니 아내는 웬일로 죽고 못사는 등산을 다 취소할 생각을 했느냐고 퉁명스럽게 말을 한다.
나는 아내와 전화 통화를 끝내고 어디를 갈까 아무리 생각을 해도 신통한 곳이 마음에 떠오르지를 않는다 . 곰곰이 생각을 하다 나는 경기도 파주 감악산 밑에서 목장을 운영하고 있는 친구의 농장이 떠올라 즉시 친구집에 전화를 하니 친구의 아내가 전화를 받는다.
아주머니 오늘 스케쥴이 어떠냐고 물으니 아주머니는 가을 목초 씨를 뿌리기 위해 친구는 밭에 나가 작업중이라고 한다. 내가 아내와 함께 적성읍내 근처에 가서 전화할테니 그때 친구와 함께 나와 점심식사나 하자고 말을 전했더니 친구 부인은 흔쾌히 승낙을 했다.
나는 아내를 재촉하여 아주 오랜만에 확 트인 자유로를, 정감이 흐르는 음악을 들으며 달렸다. 그 기분이 마치 어느 외국의 하이웨이 도로를 달리는 낭만적인 감정 같아 나 자신도 모르게 콧노래가 흥얼거려진다.
엄청난 수해를 동반한 태풍 '루사'가 지나간 이후 모처럼 파랗게 개인 하늘에는 무수히 많은 고추잠자리들이 한가롭게 자웅을 이루며 날고 있고 길가에 가녀린 모습으로 활짝 핀 코스모스의 아름다운 물결, 가을 바람에 하늘거리며 춤추는 자태가 아름답다 못해 화려하기까지 하다.
지금 내가 달리고 있는 자유로 차량들의 행렬에는 조금은 늦은 듯 하지만 이어지는 벌초행렬 차량들과 추석명절 전에 성묘를 다녀오기 위한 차량들의 행렬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고 있다. 들판엔 황금벌판을 예고하는 벼가 어느 정도 추수를 하여 나름대로 수줍은 듯 고개를 숙이고 있는 모습을 본다.
30여년 전 들판에서 피사리를 하기 위하여 땀흘릴 때 유난히도 키가 작은 난 항상 벼잎에 눈이 찔려 격에 어울리지 않는 썬그라스를 썼던 옛 시절이 눈에 삼삼이 떠오른다.
6.25 사변으로 인해 분단된 조국의 아픔을 달래기 위하여 노태우 대통령 시절 개발에 착수한 오두산 전망대, 망향의 동산 통일전망대에는 아직 이른 시각이 되어 사람들의 모습은 별로 많이 보이지 않는다.
노태우 대통령에서 김영삼 대통령을 지나 김대중 대통령에 이르기까지 이어오는 자유로 통일동산 조성 계획은 정치적인 세대교체를 거듭하면서 통일 동산 기본 조성계획에서 상당히 수정이 되어 지금은 웬 놈의 러브호텔들이 우후죽순처럼 즐비하게 들어서고 있다. 그 현장을 바라보는 나의 마음은 세상이 변한다 변한다 해도 어떻게 저렇게 변할 수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오두산 전망대가 건설되고 국가대표 축구연습장이 건설된 이곳은 내가 어릴적 초등학교를 다니고 성장을 한 고향 마을이다. 그런데 이렇게 퇴폐풍조 문화의 거리로 변모하고 있는 모습을 바라보며 차를 몰고 잠깐 스쳐지나고 있는 나의 마음은 한없이 착잡하고 마치 못 볼 것을 보고 그냥 스쳐 지나가는 것처럼 꺼림직한 기분이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며 임진각 방향을 향하여 달리고 있는 아내와의 모처럼 외출 기분이 조금은 우울해진다. 한때는 나도 이곳 고향마을 농촌에 꿈을 묻고 흙에 살리라고 설계를 하였던 젊은 날들의 추억이 있는 곳인데...
어느덧 고향마을을 떠나 30여년을 보내고 60의 문턱에서 바라본 고향의 변모하는 모습이 마음에 걸리고 아린 듯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잠시 우울한 기분에서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나는 이미 자유로 구간을 지나 문산에서 적성과 전곡을 향하는 도로를 달리고 있다.
자유로는 90km/ㅗ(제한속도) 도로이고 이곳은 국도로 80km/h 도로인데 자유로를 달리며 탄력을 얻은 모든 차량들이 이곳부터는 뜸하고 새로 개통한 도로가 되어 대부분의 운전자들은 속도 제한을 무시하고 보통 100km/h 이상을 달리며 쾌속 질주의 쾌감을 만끽하고 있다.
하지만 그러한 속도경쟁은 위험천만하기도 하지만 이 구간은 교통신호 위반 사진을 전문으로 찍어 보상금을 노리는 카파라치들의 겹겹 은신처인 것을 모르는 운전자들은 마치 자동차 경주라도 하듯이 엄청난 속도로 질주를 하며 80km/h 정상속도로 달리고 있는 나의 운전을 비웃기라기도 하듯 경적까지 울려댄다. 나는 속으로 당신들이 질주의 쾌감 후에는 반드시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생각하며 나 혼자 빙긋이 웃음을 지어본다.
이렇게 파주시 고향구간을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달리다 보니 어느덧 친구 부부와 만나기로 한 적성읍내가 시야에 들어온다. 아내가 친구 부인에게 우리 일행이 목적지에 다 왔으니 빨리 나오라고 재촉 전화를 하니 아주머니는 친구가 아직 목초를 심고 있어서 집에 들어오지 않았다고 우리 부부 더러 그냥 바로 목장으로 들어왔다가 함께 같이 나가서 식사를 하자는 것이다.
우리 부부가 그 말을 믿고 부리나케 달려가 친구의 목장에 차를 몰고 들어서니 친구 부부는 반갑게 우리를 맞으며 시원하게 바람이 부는 자리에 평상을 펼치고 이미 그 위에 상다리가 휘어질 정도의 진수성찬 점심상을 준비하여 놓고 기다리고 있었다.
유난히도 음식솜씨가 좋은 친구부인의 정성에 아침도 거르고 달려간 우리 부부는 감지덕지 정말 오랜만에 음식다운 음식을 대접받았다. 특히 그 중에서도 아직 손가락 크기의 열무를 솎아서 담근 열무김치 맛은 무슨 표현으로 칭찬을 해야 좋을지 모를 정도의 신비하고 상큼한 맛이다.
도심 생활에 몸담아 살고 있는 나로서는 좀체 맛보기 쉽지 않은 열무 김치를 맛있게 먹다가 울컥 지금은 돌아가시고 이 세상에 안 계신 어머님 생각이 떠오르며 코끝이 찡해오는 감정을 억지로 간신히 참는다.
6.25 사변으로 피난을 나온 나의 어릴적 생활은 배고픔을 달래기 위하여 보릿고개를 넘을 즈음이면 으례 가난이 떠나지를 않는 우리집 형편으로 줄기차게 어머님이 담그신 푸성귀 열무김치와 고추장이 최대의 성찬으로서 그 나마도 배곪지 않은 것으로 위안을 삼으며 살아야 했다.
모처럼 오랜만에 친구부부와 함께 점심외식이라도 하기 위하여 약속을 하고 170여 리를 달려간 우리 부부는 친구 부부의 따뜻한 정성이 담긴 성찬만 푸지게 얻어먹고 돌아오려 하니 너무도 맛있게 열무 김치를 먹고있는 우리 부부를 본 친구 부부가 아예 열무김치 항아리를 비워 파파통에 옮겨 담아 차에 실어주며 여러 가지 반찬거리와 직접 경작을 하여 수확을 한 농작물들을 바리바리 차에 실어주며, 겨울 김장 때는 아내에게 꼭 와서 함께 김장을 하여 싣고 가라고 신신당부를 한다.
우리 부부는 염치없이 친구 부부의 정성이 담긴 선물을 차에 가득히 싣고 와서 며칠간이나 맛있게 먹으며 세상에 어느 친정 어머니가 저렇게 지극 정성스럽게 딸을 생각할 수 있을까하는 생각을 하며 다시 한 번 친구 부부의 우정과 정성에 머리를 숙인다.
특히 항아리를 비워서 몽땅 싸 준 열무김치를 냉장고에서 꺼내 도심에서 다시 먹어보는 그맛의 의미는 너무도 환상적이어서 나에게는 친구의 우정과 어머님을 생각하게 하는 맛으로 영원히 잊을 수가 없을 것 같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