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서대 (추원단 12位) 선조님 춘향제 [사진&동영상]

2010. 4. 24. 21:41☎청파의사는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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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4월 23일(음 3월 10일)은 경기도 파주시 천현읍 웅담리에 위치한 상서대 추원단에 모신 선조 ① 6世 문강공 언이(文康公 彦?)  ② 7世 시랑공 돈신(侍郞公 惇信)③ 8世 유수공 상계(留守公 商季) ④ 9世 녹사공 복원(錄事公 復元) ⑤ 10世 어사공 순(御史公 純) ⑥ 11世 문현공 보(文顯公 珤) ⑦ 12世 대언공 안적(代言公 安 ?) ⑧ 12世 양간공 안숙(良簡公 安淑) ⑨ 13世 사령공 보(寺令公 輔) ⑩ 13世 판서공 리(判書公 ?)⑪ 13世 영평군 척(鈴平君 陟) ⑫ 14世 충간공 승순(忠簡公 承順)님들에 대한 춘향제 일이다.


나는 마침 이날 경기도 파주시 광탄면 분수리 여충사에 모신 "문숙공 윤관장군"님 춘향제에 참석하여 제를 모시고 다시 상서대로 이동하여 이곳에 모신 열두분의 선조님들에 대한 춘향제에도 참석을 할 수 있었다. 그런데 상서대 입구 오른편 산 기슭 암릉 자락에는 3천궁녀가 낙화하였다는 부여의 낙화암과 같은 이름을 쓴 아주 작은 비석이 보여 이상하다 생각하며 상서대 춘향제에 참석하신 파평윤씨 현종님들께 낙화암 비석에 대한 사연을 여쭈어 보니


문숙공(윤관장군)께서 여진 정벌을 마치고 개선할 때 여진국인(女眞國人) 웅단(熊丹)이란 여인이 따라와서 정성껏 시중을 받들다가 문숙공께서 서기1111년 5월8일에 하세하신 후 못 옆 암상(岩上)에 올라가 통곡하고 못에 투신 순사한 사실이 있어 이곳을 그 후 웅담(熊潭)이라고 명명하고 동명(洞名)도 웅담리(熊潭里)라고 하였으며 그 바위를 낙화암(落花岩)이라고 하였다고 한다.


이날 상서대 춘향제에는 여충사 문숙공 춘향제에 전국 각처에서 참석하셨던 파평윤씨 종친들께서 대절 버스를 타고 승용차를 타고 참석하시어 예년에 비해 월등히 많은 종친 (약 200여명)이 참석하신 가운데 파평윤씨 대종회 주관으로 엄숙하게 봉양되었다. 이날 상서대 춘향제 실황 모습을 사진과 동영상으로 소개를 합니다.

 

 

 

상 서 대(尙書臺) 문숙공 유허지



상서대(尙書臺)는 파평산 동편 파주시 법원읍 웅담리 330번지에 있는데 문숙공께서 수양정(修養亭)으로 쓰신 별저(別邸)가 있던 유서 깊은 유허지(遺墟址)로써 파주 향토유적 제11호로 지정되어 있다.


문숙공께서 여진 정벌을 하시고 개선하셔서 별저로 쓰시던 곳이며, 장내(墻內)에는 친히 식수하신 괴목 수주가 있었다고 하며 상서대 옆에는 연못이 있어 공께서 독서와 낚시를 즐기시며 심신을 휴양하시던 곳이기도 하다.


문숙공께서 여진 정벌을 마치고 개선할 때 여진국인(女眞國人) 웅단(熊丹)이란 여인이 따라와서 정성껏 시중을 받들다가 문숙공께서 서기1111년 5월8일에 하세하신 후 못 옆 암상(岩上)에 올라가 통곡하고 못에 투신 순사한 사실이 있어 이곳을 그 후 웅담(熊潭)이라고 명명하고 동명(洞名)도 웅담리(熊潭里)라고 하였으며 그 바위를 낙화암(落花岩)이라고 하였다.


파주군사(坡州郡史)에 보면 거수명목사기(巨樹名木史記)에 둘레가 11척 수고(樹高)가 30척이나 되는 괴목 2주가 있는데 웅담리의 괴목은 상서대 장내의 정목(亭木)이니 고려왕조의 공신이신 윤문숙공이 식수하였다고 기록되었다. 이 두 나무는 임진왜란때 병화(兵火)로 죽었던 것인데 1주만 다시 소생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는 것도 밝히고 있다.



장내(墻內)에는 상서대라고 각한 비석이 있고 종중에서 그 장내에 墻을 설치하고 문강공이하 5위 등 6위의 비위(碑位)를 모시고 추원단(追遠壇)이라고 하였으며 그 후 상서공(尙書公)과 충간공(忠簡公) 2위를 추배(追配)하였으며, 현재는 文康公(諱 彦?), 侍郞公(諱 惇信), 留守公(諱 商季), 錄事公(諱 復元), 御史公(諱 純), 文顯公(諱 珤), 代言公(諱 安적), 良簡公(諱 安淑), 寺令公(諱 輔), 判書公(諱 ?), 鈴平君(諱 陟), 忠簡公(諱 承順) 등 12位의 선조님들의 碑를 모시고 있다.


고종때 연천에 사는 박경선(朴慶善)이란 者가 단소 위 삼리허(三里許)에 작답(作畓)하고 인수로(引水路)를 개설하려고 괴목 1주를 벌목하려 하였으나 우리 종중에서 이를 금지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박경선은 그때 우리 종중을 무시하고 인부를 시켜 강제 벌목하려 하였으나 성사하지 못했다. 박경선은 그래서 우리 문중을 모해코자 尹家들이 역모를 꾀하여 허설제천(虛設祭天)하고 있다고 당국에 밀고하였다.


당시 영의정인 김좌근(金佐根)이 포장(捕將) 김병국(金炳國)을 시켜 조사한 바 문강공(文康公)의 제단(祭壇)임이 판명되어 무사히 넘겼다. 영의정 김좌근은 박경선을 무고죄로 흑산도에 귀양을 보냈던 것이다. 박경선의 아들 박원중은 그 후 원한을 품고 상서대를 봉퇴시키려고 단하에 또다시 수로를 개설하려 하였는데 파주군내 유림들이 상소하여 영의정 김좌근이 박원중을 함경북도 경원으로 귀양을 보내 무사했던 것이다.


그 후 1960년(庚子年) 4월 추원단을 광축(廣築)하고 낙화암 위에 비석을 세우고 초혼(招魂)해서 웅단(熊丹)할머니의 혼을 위로하고 위령제를 행하고 있는 것이다.


추원단 제향(祭享)은 매년 음10월2일에 거행하였으나 태사공묘소 추향일과 문숙공묘소 추향일이 변경됨으로써 1979년부터는 음10월6일로 제향일을 정하였다가 음력 3월10일에 행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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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평윤씨 상서대 추원단비

 

 

 

坡平尹氏 尙書臺 追遠壇


이곳은 우리 始祖 太師公의 玄孫이신 高麗拓地鎭國功臣守太保門下侍中 文肅公 諱 瓘께서 尙書時節에 書院과 亭子를 지어 놓고餘閑을 틈타 高朋賢友와 더불어 詩文과 休養을 즐기시던 別邸로 尙書臺라 불러 왔으며 그 후로 屢代에 걸쳐 學問을 硏磨하며 忠君報國하신 列先祖의 靈魂이 서린 곳이며 또한 忠孝傳家로 後學의 標本이 되었으니 後世에 와서도 坡州儒生 李集秀 辛師魯等 많은 선비들이 聯名하여 判書 金相休의 撰으로 文肅公書院을세우려고 請願한 上疏文은 句句節節이 公의 偉 業을 明明羅列하였으니 後孫으로써 感歎不己며 이곳을 元體復古하여 聖址로 永久保存하여야 될 일이다.


애석하게도 六世 文康公 諱 彦? 七世 侍郞公 諱 惇信 八世 留守公 諱 ?季 九世 綠事公 諱 復元 十世 御使公 諱 純의 五位 墳墓를 失傳하여 寓慕하지 못하매 一八三八年 戊戌에 鈴原君行直과 楊州宗人 之豊이 相議 끝에 列先祖의 靈魂이 서린 이곳을 擇하여 臺址를 改修하고 古禮追遠儀로 壇을 모아 五位를 奉享하다가 後에 羲培秉軾이 臺上에立石하고 禮判 滋承의 撰과 德一의 序文 및 各 宗中의 獻誠으로齊室과 豊碑 및 諸般器物을 구비하였으며 之豊秀植外 諸宗人이 奉先?를 設立하여 惇의 序文과 規約을 遵守 位土를 마련 漸次 盛大히 奉享하였다 壇邊에 文肅公께서 手植하신 四生四死의 千霜槐木 數株中 一株를 朴慶善의 伐採와 誣告로 起訟되어 判書 定鉉 ?判 敎成?承旨 行福 堉行模 秉昇 等 公人 五十六人과其外 多數宗人 및 坡州 儒生들의 總蹶起로 八年만인 一八五八年 戊午에 勝訴하여 慶善은 黑山島에 其子元中은 慶興으로 流配했으니 참으로 近祖의 心靈까지 結集된 由緖깊은 곳이다


6?25動亂으로 壇所와 齋室이 파괴된 후 宇景 奭勳 周旋下에 齋室을 再建하고 壇所를 擴張하여 五位外에 尙書公 諱 宗?과 忠簡公 諱 承順을 立碑하였으며 後에 尙書公은 移碑하고 落花岩 碑竪하여 招慰熊靈하였으며 後에 南儀 準模 熙炳의 주선으로 齋室 重修와 壇墻을 改築하였으며 太尉公 上護軍公 忠景公 派宗과 中央親睦會의 祭器奉納 等 其外 協力 宗人이 不可勝數다 歲月이 흐름에風雨로 字刻이 磨滅되었으므로 中央親睦會에서 前封位碑 改竪와 同時에 墳墓在北하여 望祭로 모시던 十一世 文顯公 諱 珤 十二世 良簡公 諱 安淑 十三世 鈴平君 諱 陟과 烈婦熊碑도 亦竪하고 壇外에 立石하여 上書臺와 追遠壇의 由來를 略記하여 願永世不忘하노라 (파평윤씨 대종회 카페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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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원단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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忠簡公(諱 承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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鈴平君(諱 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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判書公(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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寺令公(諱 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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良簡公(諱 安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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代言公(諱 安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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文顯公(諱 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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侍郞公(諱 惇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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錄事公(諱 復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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留守公(諱 商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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侍郞公(諱 惇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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文康公(諱 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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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티나무 (보호수) 수령:43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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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화암 (落花巖)

 

 

낙화암 (落花巖)전설

 

상서대에 있는 추원단 밖에는 시냇물이 흐르고 그 시냇물이 펑퍼짐하게 작은 못을 이루고 있고 그 못 옆에는 그리 높지 않은 절벽이 있는데 그 바위를 낙화암이라 한다. 문숙공께서 여진 정벌을 하실 때 진중에서 시중을 들던 웅단(熊丹)이라는 여진 여성이 있었는데 문숙공을 따라 이곳 상서대까지 와서도 시중을 들었다. 그 후 문숙공께서 서거하시게 되자 웅단은 바위 절벽위에 올라가 연못으로 뛰어 내려 사망하니 문숙공을 향한 일편단심은 천년이 지나는 오늘날까지도 문숙공의 후손들의 마음을 숙연하게 한다.


그런 연유로 꽃같이 떨어져 순절한 바위라 하여 낙화암이라 하였고 웅단이 순절한 못이라 하여 웅담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파평윤씨의 후손들은 이러한 웅단 할머니의 혼백을 위로하기 위하여 바위 위에 낙화암이란 표석과 상서대 내에도 비석을 세우고 매년 추원단 단제시에 제사를 모시고 있다. 웅은 곰이고 담은 소(沼)와 같다하여 곰소라고 부르게 되었고 이것이 후에 곰시로 변하게 되었다. 또한 동네의 이름도 이 못의 이름을 따서 웅담리가 되었다.이 못은 옛날에는 매우 깊었다고 전하지만 지금은 메워져서 그리 깊지 않은 웅덩이처럼 보인다. (파평윤씨 대종회 카페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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웅단(熊丹)할머니의 제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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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서대 담장가에 핀 우리꽃 야생화 금낭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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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잔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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